
일상에 새로운 공기가 필요할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시공간을 바꿔 우리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어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괴로웠던 일들이 괜찮아지는 것만 같은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되죠. 이것만이 여행의 유익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로움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무수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여행을 수없이 한 이병률 시인이 여행그림책 『좋아서 그래』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그로부터 여행 에세이를 건네받고, 그것을 읽으며 배운 세월은 성인 한 명을 키워낼 만한 것이었지요. 그렇기에 그의 첫 그림책이자 여행 산문집인 『좋아서 그래』에 대한 반가움은 쉬이 감춰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그 사람이 만난 아주 작은 이야기와 그림들”이라는 기획으로 출발한 이 책은, 이병률 시인의 파리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파리를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그는 최근에 한 여행으로부터 이 책을 쓸 결심이 섰다고 하는데요. “파리에 처음 온 사람을 따라다니며 자잘한 쇼크를 받은” 것으로부터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파리를 품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글과 아름다운 그림을 함께 실어냅니다. 그는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이들로 “(쉽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을 꼽습니다. 그가 파리에서 만난 “자기 스스로를 디자인하고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을 적게 하면서 유명해지고, 부유해지”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고 싶어섭니다. 줄곧 사랑에 대해 노래해 온 시인은 이제 “인류를 향한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립니다.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그가 채워온 온기가 아닐까요.
파리에 대해 쓸 결심
오랜만의 산문집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3년 만의 산문집이지만, 시인님과의 인사가 오래된 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지난해 일곱 번째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덕분일 텝니다. 이토록 왕성히 글을 쓰시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요?
저는 점점 혼자 있는 게 좋아져서 큰일이에요. 너무 좋아서요. 혼자 있는 게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을 좀 더 가지려고 해요. 그러니까 제게 여행은 이런 거예요. 사람들로부터 숨는 것. 어느 순간 내 얼굴이 두꺼워졌다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지내는 것에 둔감해졌다고 느낄 때, 혼자 떠나 혼자 돌아오게 돼요. 그렇게 혼자 있는 게 꽤나 좋고, 사부작거리며 걷는 일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쌓인 것들이 결국 쓰이는 것 같고요. 여전히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커요. 매번 즐겁죠. 마치 제게 그런 기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배터리를 계속 갈아 끼울 수 있는 것처럼 사람 보는 일도, 글 쓰는 일도 지치지 않아요. 물론 글을 쓸 때의 집중력은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무엇을 쓸까’에 대해 막막해진 적은 없어요. 쓰려고 할 때는 쓰게 돼요. 이상하죠.
『좋아서 그래』 또한 시인님 최근 작품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이어받는 산문집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도시 ‘파리’에 대한 책이에요. 시인님께서 경험하신 파리가 켜켜이 담겨 있고요. 이번 책에 담은 이야기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여행을 망라한 것인지요.
20대 후반에 가출해서 떠난 파리 이야기부터 작년 파리 여행 이야기까지 담겨 있어요.
가출을 하셨어요?
네. 2년 동안 파리에서 살 계획을 하고 떠났어요. 제 주변의 누구도 모르게 하고요. 마치 누군가와 모의하듯 떠났는데, 그래도 집에는 연락했어요. 전화도 하고, 편지도 했죠.(웃음) 그렇게 떠난 파리였고, 처음부터 한계를 알았어요. 아마도 원하는 건 쟁취하지 못할 거라는 걸요. 2년 정도 살 수 있을 돈을 챙겨 떠났는데, 책에도 썼지만 정말 “거지처럼” 지냈거든요. 아무래도 돈이 부족하니까요. 문화 예술의 도시에서 가난하게 지냈으니 이 도시의 아름다움 같은 걸 볼 여유가 없었어요. 누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할까 봐 전화도 안 받았어요. 나가서 누굴 만나면 커피값이라도 드니까요. 교통비 아끼려고 내내 걸어 다니기만 했고... 그런데 오히려 가난하니까 제가 보이더라고요.
그때 신춘문예 당선을 통보받고 상금을 미리 받아서 표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 파리에 가서는 볼 수 있게 됐어요. 돌아올 때만 해도 내가 다시 파리에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여러 번 파리로 떠났고, 그제야 비로소 이곳 사람들이 가진 삶의 형태를 보게 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파리에 대해서 글을 쓸 수는 없을 것만 같았는데요. 가장 최근에 한 파리 여행에서 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뭐가 달라졌나요?
지난해에 파리를 여행했는데, 동행이 있었어요. 제가 시를 가르치거든요. 동행한 이는 시 창작 수업의 반장인데, 제가 파리에 간다니까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아마도 저의 여행 방식을 통해 자극받고 싶은 거였죠. 그는 직장인이고 남성인데, 저를 따라다니면 무엇을 써야 할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나 봐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친구가 가고 싶은 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면서 같이 가재요. 그럴 줄 몰랐는데 놀랍게도 가는 곳마다 저는 죄다 처음이었어요. 파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죠. 파리에 처음 온 사람을 따라다니며 자잘한 쇼크를 받은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써도 되겠다’ 했어요.
그럼, 작년에 이 책을 쓰겠다는 결심이 서신 거네요. 이 여행을 통해서요.
그렇죠. 사실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1년 전부터 갖고 있었어요. 다만 그림책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제가 1번이 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기획 아이디어를 에디터들과 나누는데 다들 “대표님이 1번 하시면 되겠네요”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럴 수는 없으니 섭외를 해보자”고 했고, 정세랑 작가, 천선란 작가가 함께해주시기로 했어요. 저도 참여한다고 하니 “그럼 (제가) 1번은 아니니까 다행이네요”라는 말을 덧붙이시면서요.(웃음) 그러다 먹은 마음도 있겠다, 조금은 빨리 쓸 수 있는 제가 1번이 되었어요. 나태주 선생님께서도 함께하시는데,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시고 손수 그림을 그리고 계세요.
책의 맨 뒤로 향하면 ‘파리에서 낭만을 이야기하기 좋은 곳’이라는 목록(108쪽)이 등장해요. 이 목록, 혹시 동행분의 추천 장소 아닌가요?
어떻게 알아요? 다는 아니지만, 두어 군데가 있어요. 사실 다 알려진 유명한 곳들일 텐데, 그가 가자고 한 곳은 제게는 다 처음이었던 곳이었고 좋았어요. 먼저 시뉴섬부터 말하면, 정말 기가 찼어요. 너무 좋아서요. “여길 어떻게 갈 수 있어? 메트로가 안 다니는데?” 했더니 그 친구가 걸어서 가면 된다는 거예요. 저야 걷는 걸 너무 좋아하니 기꺼이 함께 갔고요. 도착했는데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잊을 수 없죠. 그리고 제가 늘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들어가기에 두려운 곳이 있었는데, 동행이 있어 용기를 냈던 곳이 있어요. 카페 라 벨 오르탕스인데요. 주인과 손님이 대화를 나누며 같이 술을 막 마시는 곳이거든요. 저는 말하는 것이라면 너무 자신이 없는 사람인데, 그 친구는 그런 응수도 참 잘하더라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그 친구가 “파리에서 간 곳 중 여기가 제일 좋았다”고 꼽기도 했어요.
혼자서 완성한 여행이 아닌데요, 시인님.
그러니까요. 기분 나쁘게. 그것도 남자 둘이.(웃음)

여행의 순간을 그림으로 포착하면
시인님과 여행은 이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여행할 시간을 만드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일정을 비워둬요.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예요. 저라는 사람이 언제쯤 너덜너덜해질지 스스로 알기 때문에 대비하는 거죠. 보통 그 주기가 2~3개월 정도니까 그 리듬에 맞춰서 보름 정도 시간을 내겠다고 정해요. 2주니까 달력에 블록으로 표시하게 되는데, 보기에도 좋아요.(웃음)
『좋아서 그래』는 시인님의 산문을 그림과 나란히 경험하는 첫 책입니다. 시인님의 사진이 없는 산문집이 낯설기도 하지만, 출판사 달의 ‘여행그림책’ 시리즈 출발이라는 의미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에요. 이 기획의 출발은 어디인가요?
제 사진이 있는 책들을 조금 피곤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예요. 여행기마다 또 산문집까지도 제가 찍은 사진을 넣었는데, 이번엔 글과 함께 실릴 그림이라는 요소를 정함으로써, 글 이외 영역의 작가를 달리 두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협업의 결과로써, 누군가는 “이병률의 여행책에 그림이 들어간 것뿐인데 많이 다르게 느껴지네” 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로 달라요. 그림이 넉넉한 만큼 글과 그림의 균형이 잘 느껴져 그런 것 같고요.
작가님께 죄송했어요.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려주셨거든요. 덕분에 저는 행복했지만요.
글과 그림을 함께 담아내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최산호 작가님과의 그림책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초고를 먼저 보내드렸어요. 초고이지만 내용이나 분량이 크게 바뀌지 않을 원고였고, 그림이 들어갈 자리나 크기 같은 것에 대한 의견을 작가님께 먼저 전했고요. 더불어 작가님께서 더 좋은 의견을 주시기도 하고, 저희 미술부에서도 멋진 아이디어를 주었어요. 그렇게 함께 만들어서 그런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어려운 작업이 되었어요.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쉽게 말했지만, 보통 작업은 아니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거든요. 작가님께서 워낙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려주셔서 분량도 알맞게 그 만듦새를 갖출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말 원화가 좋았어요. 읽는 동안 ‘표지가 될 만한 그림들이 제법 있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표지는 제가 좋아하는 ‘예술의 다리’ 건너편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에요. 작가님께서 주로 표현하시는 환상적인 그림을 생각하면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인물이 그림 안에서 거닐 수 있는 장면을 그려주십사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리고 그림을 받았는데, 보자마자 표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바로 시안 작업을 했어요. 큰 고민 없이 이 책의 장정이 정해진 거죠.

어째서 사랑하지 않나요
“파리에서의 사랑은 길목 어딘가에서 마법처럼 시작되고 테이블 건너에서 환하게 차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이별할 수도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접수한 상태로 발진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어려서부터 꽤 많은 사랑의 형태와 사랑의 지도를 경험하기 때문.”(32쪽) 이 대목을 읽으며 어떻게 여행하면, ‘낯선 도시의 어떠함’을 포착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됐어요. 아마 대부분의 여행이 이토록 내밀한 발견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SNS 인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인님은 무엇을 보고 저장하시고, 무엇을 봤지만 지워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SNS가 나쁘네요.(웃음) 어떤 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제 카메라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찍는 일이 직업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찍을 수 있고, 또 결과물을 당장 확인하지 않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요즘은 가끔 필름 사진을 많이 찍는데요. 보통 필름을 1~2년쯤 묵혔다 한꺼번에 작업을 거친 후에 보는데, 그렇게 기록한 것을 천천히 보는 과정에서의 감동은 사진적 요소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으로 완성된 아름다움으로부터 와요. 파리 골목에서 제가 본 장면들은 그들의 자연스러움이에요. 부모가 백인이지만 아이는 흑인인 가족, 남성 부부와 아이로 이뤄진 가족 등 이들 문화에서는 무척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이죠. 그걸 이상한 시선으로 봤다면, 저 역시 쓸 것이 따로 없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 넘치게 아름다운 이들을 제 안에서 소화하는 거죠.
또 이런 것도 있어요. 저는 흡연을 하는데, 주로 성냥으로 불을 붙이거든요. 하루는 골목 안으로 부는 맞바람 때문에 담배에 불이 안 붙고 계속 꺼지기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고는 그냥 자기 갈 길을 막 가는 거 있죠.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바로 감사 인사를 건네려는데 그는 그냥 휙 가버렸어요. 비슷한 일화가 또 있어요. 저는 주로 짐을 잔뜩 이고 지면서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해요. 짐이 너무 무거우면 짐을 하나씩 차례차례 옮기는데요. 지나가는 어떤 이가 전화를 받으면서 도와줘도 되냐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제 짐을 옮겨주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막무가내로 짐을 들어줘요. 그러고는 또 인사도 없이 자기 갈 길을 가버리죠.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 제가 포착하는 장면들이에요. 제게 파리 사람들은 묘하고 묘한 사람들이에요. 이들에게는 이런 무심한 친절이 질서화되어 있어요. 세계 시민의 자격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파리 사람들을 보며 이런 것 아닐까 자주 생각했어요.
“파리에 와서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완성한 예술가들이 몇천만 명은 될 겁니다.”(26쪽)를 통해, 시인님께서도 파리에 계셨기 때문에 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싶었어요. 당선 결과만을 파리에서 들은 것이지만, 그렇기에 당선이 되었다고 믿으시는 것 같았달까요. 헨리 밀러가 그러했고, 시인님께서도 느끼셨을 “파리가 가진 에너지”(27쪽)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자유일 거예요. 이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냥 혀를 깨물 거예요. 그래서 침해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식하지 않는 편이고요. 두 번째는 욕구인데, 이들의 욕구는 과거에 화려하고 엄청났던 문화유산을 이어받음으로써 갖게 되는 풍요로움인 것 같아요. 이러한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요. 앞서 말한 “세계 시민”의 반열에 자신이 들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죠. 게다가 이들에게는 토론 문화, 살롱 문화라는 것도 있었잖아요? 그런 공동의식 안에서 개개인이 자기답게 성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은 하나로 얘기할 수 없으니까 더듬거리면서 말하고 불확실성으로 발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세계일보 인터뷰)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요. 이토록 복잡하고 어쩌면 불완전한 ‘사랑’을 끝내 묘비명에도 떠올리셨는데요.(43쪽) 시인님께 사랑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요?
사랑을 해서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않나 싶어요. 저에게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순간이 선명하게 남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어떤 수준까지 해봤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제게는 기준이 있어요. 사랑했던 그때의 에너지, 그때의 총력을 떠올리면서 그 정도까지는 쏟아야 한다는 게 기준으로 서 있는 거예요. 누군가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최고점을 한번 찍고 나니, 웬만한 어려움 앞에서도 대체로 의연해질 수 있게 됐고요. 그 정도의 사랑을 해야 사람이 기본적인 온기도 가질 수 있고, 남에게 베풀 수도 있고, 누군가와 싸우고 난 후에 얻은 상처도 잘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덕에 안으로나 밖으로나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곧 또 봐요(À bientôt).”
『좋아서 그래』가 어떤 분들께 가닿기를 바라시는지요. 함께 읽고 싶은 이들을 떠올려주셔요.
1번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 2번 (쉽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요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리고 젊은 세대가 가장 원하는 것이 “일을 많이 안 하면서 유명해지고 부유해지는 것”이라더라고요. 그런 이들에게 파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싶어요. 이들은 개성 없음을 무척 자존심 상해하거든요. 자기 스스로를 디자인하고 가꾸는 것이 이들의 삶이니까요.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관심을 끌어와서 그 지갑을 열게 하거나 그 시간을 쉽게 가져갈 수 있겠어요? 이 책에 담긴 파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런 분들께 도움되는 면면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출간 기념 북토크 등으로 독자분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가 쭉 이어지지요? 오랜만의 산문집으로 독자분들과 재회하는 마음은 어떠하신지요?
저는 늘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대상의 개념이 넓어졌다고 할까요. 인류를 향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저 스스로도 좀 겁나는데, 점점 더 이 방향으로 제 몸이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 까닭으로 오랜만의 북토크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지만, 인류를 뒷받침하는 일, 인류에게 빛을 쏘게 하는 일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건넬 수 있기를 희망해요. 요즘 전 세계가 한국을 참 좋아하잖아요. 그만큼 우리를 향한 마음이 열려 있고요. 그런 이야기와 더불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연구의 대상인지 알자는 것,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을 꺼내서 강력한 우리, 그러니까 ‘어느 한 대륙을 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보자’는 말도 건네고 싶어요.
현재 시인님의 화두를 나누는 북토크 자리이기에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곧 연말입니다. 서울을 떠나기 좋은 때이지요. 이제 다시 어디로 떠나시나요?
어디로든 떠날 건데,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요. 다만 11월 말부터 12월에 이르는 이 기간은 저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분위기거든요. 사방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때문만은 아니더라도요. 그런 이유로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연말을 보낼 것 같아요.
그렇게 떠나 계시는 동안 회복해서 돌아오시나요?
글쎄요. 회복을 위한 여행은 아니거든요. 제 여행은 돌아오는 것이에요. 대부분 오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매번 이렇게 돌아오는 거죠. 돌아오기의 달인인 것 같아요, 저는. 떠나기의 달인이 아니라요.(웃음) 그러면 여기서 “왜 여행을 가나요?” 하는 질문이 저에게 던져질 수 있잖아요. 한마디로 정리돼요. 병이에요. 병. 여행을 떠나도 떠나도 낫지 않는, 그러고도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저의 불치의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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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그래
출판사 | 달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염은영
읽고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만든 책으로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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