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성수 “차별금지법이 지향하는 것은 평화, 안전, 그리고 공존”
차별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홍성수 교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안합니다.
글: 신연선 사진: 표기식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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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혐오와 차별의 시대다.”(23쪽) 

 

2018년, 『말이 칼이 될 때』로 혐오표현 문제를 다루며 왜 어떤 표현은 금지해야 하는지 따져보았던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가 2025년,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으로 차별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쓴 문장입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문장을 오래 들여다 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언어, 진실을 은폐하는 발화, 여전히 공고한 차별의 구조를 생각하면서요. 

 

더 이상 차별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홍성수 교수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습니다. 차별금지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조차도 못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23-24쪽)고 말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가운데 두고 이 중요한 문제를 지금,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극우화의 경향 속에서 

 

책머리에’에서 2017년 『말이 칼이 될 때』를 출간하고 “이제 일단락되었다고”(9쪽)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적으셨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요.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쓰기까지, 어떤 변화와 필요를 느껴왔던 것인가요? 

 

차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혐오표현, 차별, 그리고 혐오범죄 세 가지거든요.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을 다뤘으니까 다음에 차별에 대한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다만 그 이후 생각보다 걱정스러운 장면이 많았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잘 안되고요. 2019년쯤 거의 제정될 뻔하다 안 됐잖아요. 또, 혐오와 차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제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된 측면이 있었어요. 한국에서도 차별에 관한 문제가 더 중요하게 대두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이 책을 빨리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을 목격한 뒤 혐오와 차별 문제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극우화와 맞닿는 건데요.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어떻게 보면 지난 50~60년 동안 혐오와 차별에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왔던 역사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혐오와 차별에 맞섰던 역사가 있던 거죠. 그래서 이것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지만, 극우화 경향이 2010년대에 들어 생각보다 빠르게 가속화되었어요. 그동안 유지해 온 혐오와 차별에 대한 여러 규범, 국민들의 인식 등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10년 전만 해도 차별과 혐오 문제를 논할 때,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측면이 있었거든요.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곤 했고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표현이 의미 없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살 길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 같기도 합니다. 『말이 칼이 될 때』를 쓸 때만 해도 해외 사례를 많이 활용하고, 해외 규범도 소개했는데요. 이번에는 ‘지금의 미국이나 유럽은 잘하고 있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쓰기 어려웠어요. 

 

워낙 여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 문제가 폭탄처럼 터지는 중이잖아요. 그러니 한국 사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시급할 것 같아요. 교수님은 “아직도 제정되지 못한 차별금지법 때문”(10쪽)에 책을 썼다고도 밝히셨는데요. 더 많은 대중이 차별금지법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기를 바란 마음이었겠죠? 

차별금지법에 대해 여러 오해가 있어요. 일단 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라는 대표적인 오해가 있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안 듣는 거지, 반론이 없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반론을 하더라도 단순히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이야기다” 정도로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책에 차별금지법의 근본적인 원리를 다룬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차별에 어떤 해악이 있는지, 얼마나 중대한 문제고 왜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지 말하면서 오해에 답하는 책을 쓰려고 한 것이죠.

 

한편으로 이 법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상징이자 단계,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로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또한 강조하고 싶었어요. 

 

14장 제목이 ‘법이 열고 사회가 완성한다’예요. 모든 것을 법으로 결정하는 방식도 위험하지만 법이 움직여줘야 하는 일도 있는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일일 텐데요. 특히 지금과 같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법이 일단 문을 열어주는 것이 너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맞습니다. 굳이 도식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전체 차별 문제가 100이라고 할 때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10 정도밖에 안 돼요. 나머지 90은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측면이 있어요. 바꿔 말하면 법이 10밖에 관할하지 않지만 이 부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나머지 90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법으로 10의 문제를 해결해도 90이 꼼짝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법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려고 해요. 

 

 

 

공존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은 결국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는 것”(233쪽)이라는 부분을 모두가 공유한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사회의 일원으로서 안전함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기본이니까요. 

차별‘금지’법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뭘 금지하고, 처벌하는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나온 법안에서는 ‘평등법’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죠. 이렇듯 워낙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해서, 이 법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요. 결국 차별금지법이 지향하는 것은 평화, 안전, 그리고 공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어요. 

 

이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고요. 지금은 그 정체성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드러내면서 사는데요. 만약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어딘가에서 차별을 받거나 폭력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면 어떻겠어요. 너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면 안 돼, 너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폭력을 당할 수 있어, 이런 인식이 있는 사회가 과연 공존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차별금지법은 공존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법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중요한 기점”(171쪽)으로 2013년의 국회를 꼽으셨죠. 일부 개신교계의 항의로 법안이 철회되었고, 그 학습효과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요. 

노무현 정부 때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뻔한 적이 있어요. 결국 안 되긴 했지만 그때는 한 번 정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후에도 법 제정 시도가 멈추지 않았고요. 반면 2013년은 법안 철회를 계기로 이후 입법 시도가 사실상 멈췄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장면라고 생각하죠. 어떤 법안을 철회했다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하다가 안 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뭔가를 뒤집은 것이니까요. 이후 유사한 입법들이 그런 식으로 철회됐는데요. 반대 진영에 굉장한 용기를 줬다고 할까요.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던져준 셈이 됐어요. 같은 맥락에서 국회의원들에게는 이런 법을 추진하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주었고요. 그 탓에 거의 5년 넘게 입법 시도 자체가 멈춰버렸어요. 너무 아까운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린 거죠. 2019년에 들어서야 다시 시도됐으니까요. 2013년의 경험이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시간이 굉장히 많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상상해보게 돼요. 만약 그때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요.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그런 상상을 교수님도 해보셨나요? 

사실 법이 안착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법이 빨리 제정되었다면 차근차근 후속 조치를 했을 것이고, 지금쯤은 법이 안정적으로 집행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후속 입법으로 필요한 것들도 마련됐겠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에요. 그러나 아예 법 자체가 제정되지 않으니까 후속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또,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법을 우회해서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증진시킬 방법도 있거든요. 하지만 2013년의 경험으로 그런 방법까지 다 멈춘 겁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암묵기가 시작되었던 것이고요. 와중에 혐오나 차별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잖아요. 너무나 중요한 시기를 놓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로 법이 제정된 이후 일어나야 할 후속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지자체에서는 어떤 식으로 차별을 금지해 나갈 것인지 관련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이는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 기업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도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요. 이것은 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차별이 금지되는 것은 기업이나 학교도 같으니까요. 기업에서는 내규를 만들어야 할 테고요. 학교에서는 학칙을 개정해야 할 거예요. 

 

최근 문제가 된 ‘노차이니즈존’ 관련해서도 생각해보면요. 지자체나 행정당국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후속 작업이 필요할 텐데요. 영업 허가를 내거나 영업 지도를 할 때 차별에 해당하는 영업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정해야죠. 혐오 표현이나 집회 시위도 마찬가지고요. 차별 금지법에 따라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지, 내용이 필요하거든요. 그밖에 방송법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전체적으로 다듬어져야 해요. 일종의 차별금지법 체계라는 것을 이루는 것인데요. 그런 것들이 지금은 전혀 안 된 상황이고, 이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말씀하신 ‘체계’ 때문이겠죠. 사실 지금도 각 법조항에 차별금지에 대한 내용이 없진 않잖아요. 흩어져 있는 규제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기본법’을 만드는 것이라는 부분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일종의 우산 역할을 하는 법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 후속 입법이 가능하게 하는 기본법이기도 하고요. 현실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유를 다루는 법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규율하고, 노동과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는 그 영역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을 만드는 식으로 전체 체계를 짜는 것이 옳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주 일부 영역에 대한, 일부 사유에 의한 차별만 금지되어 있는, 아주 애매한 법 체계인 상황이죠. 

 

영국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국가기구를 두고, 효율적으로 차별문제를 관리하는 사회라는 점이요. 

영국은 인종 차별에 관한 기구 따로, 성차별에 대한 기구 따로 있으면서 근거법도 저마다 따로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것들을 합치면서 평등법을 만들었어요. 우리로 치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해요.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가 있는데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떤 차별을 당했다고 했을 때 정확하게 무슨 사유로 차별을 당했는지 불분명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가령 피해자가 여성이자 이주자이자 흑인이라면 세 가지 사유 중 무엇으로 차별을 당했는지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만약 피해자가 특정한 법에 근거해 별도의 기구에 가서 구제 받아야만 한다면 문제가 되겠죠. 이곳에서 안 되면 다른 곳을 가고 거기서도 안 되면 또 다른 곳에 가야 할 테니까요. 이런 문제가 있으니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단일 기구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야 피해 구제도 훨씬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복합 차별’이라고 해서 어느 한 가지 사유로는 차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몇 가지 사유를 합쳐서 보았을 때 차별이 맞다고 판정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피해를 구제받고자 하는 피해자의 입장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는 것이 유리합니다. 

 

앞으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이 계속 가시화될 것”(75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많은지도 생각하게 돼요. 

그렇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다원화될 거예요. 이주자도 많아지고요. 그러면 종교도 다양해지고, 인종도 다양해지고, 출신 국적도 다양해질 거예요. 또,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소수자들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지금은 채식주의자들이 당당하게 채식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주장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게 될 거예요. 그러니 서로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잘 설계해야죠. 차별금지법은 가장 중요한 준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법을 제정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성이 더욱 증진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낸다면 얼마나 혼란이 있겠어요. 제대로 대비해놓지 않으면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될 겁니다. 

 

지금도 치르고 있는 비용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이대로라면 더 심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요. 심지어 차별을 넘어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사전에 완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해요. 미리 준비가 되어야지, 문제가 터진 후에 해결하려면 쉽지가 않습니다. 이번에 노차이니즈존이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미리 규범을 정비했다면 깔끔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우왕좌왕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구청장이 설득해보겠다고 말하는 상황이 되고요. 구청장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마 관련 법규를 검토했겠죠. 검토해도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까 설득이라도 해보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자체장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을 막을 근거가 되는 법률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제정 이후에 할 일들 

 

표현의 자유, 라는 말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어요. 교수님은 이를 ‘괴롭힐 자유’로 연결하셨잖아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권위주의 시절이 있었죠. 그 시기 나온 담론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불가침인 것처럼 얘기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얘기를 했었고요.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절대 무제한이 아닙니다. 따져보면 지금도 명예훼손이나 모욕, 사생활 침해 등을 규제하고 있잖아요. 표현에 대한 규제가 지금도 많은 거예요. 그런데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고요. 어떤 표현이 그동안 금지해 왔던 기준에 부합한다면 규제를 해야죠. 지금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면서 존중해왔던 영역에 속하는 표현이라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지, 표현이기 때문에 무조건 규제하면 안 된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혐오표현이 특히 교육이나 고용 영역에서 발화가 되었을 때, 또는 영향력이 있는 매체를 통해 발화됐을 때 그 해악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규제할 것인가를 빨리 합의해서 조치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봐요. 

 

흔히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아무 말도 못한다, 무슨 얘기를 하면 처벌받게 될 거다, 하면서 반대해요.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권고와 재발 방지 조치 쪽에 더 방점이 있다고 하셨죠. 

차별금지법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참 묘해요. 그러니까 스스로 한계를 잘 알고 있죠. 이 법에서 강한 수단만을 동원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거나 차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거든요. 때문에 유연한 수단을 쓰되 그 수단이 무력해지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한국이 개발한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인 경험을 통해서 축적되었어요.

 

그 방법이라는 것이, 차별 시정 기구가 피해자의 진정을 받으면 일단 권고를 하는 것이에요. 국가의 권고가 영향력이 없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약 권고로 시정이 안 됐을 때는 소송으로 가죠. 소송이 쉽지 않으니까 차별 시정 기구가 소송을 일정 정도 지원하는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하고요. 나아가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제한적이니까 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를 얻어낼 법적 근거 마련하는 시스템으로 전체적으로 설계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죠. 모두 소송으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차별 시정 기구를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 두 가지가 잘 돌아갈 때 차별금지법이 잘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을 들으니 정말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어려운 장면이 많이 나타날 것 같네요. 

너무 많죠. 심플하지가 않습니다. 보통 법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일단 만들어지면 무엇이 금지되고, 어기면 처벌되는 식인데요. 차별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복잡한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권고를 다 무시하는 상황도 사실은 가능하고, 소송을 한다고 다 구제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차별 문제에 충분한 인식을 가져야겠죠.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확실히 지지할 때 법이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거듭 강조하지만 법은 차별에 대한 계기를 마련해 주는 정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비용이 들거나 개인 입장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거예요. 만약 정말로 개인 입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권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공적 지원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도록 해야겠죠. 지금처럼 당사자가 지키기 힘들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원을 배치하는 방법을 설정해주는 것 또한 차별금지법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해보자, 하고 제안하는 차원으로도 차별금지법이 작동할 거예요. 

 

이 대목에서 노키즈존 생각을 하게 돼요. 지금은 그야말로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내버려 두고 있는 거잖아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더 이상 이 차별을 사회가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신호가 될 거예요. 

물론 노키즈존을 차별이라고 얘기하는 데 있어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을 거예요. 어린이가 가기에 정말 위험한 공간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준이 잘 설정되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 수 있는 카페조차도 느닷없이 노키즈존을 선택한단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화두를 던질 수 있겠죠. 일단 어린이라는 이유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할 수 있고요. 다만 예외에 해당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자고 얘기할 수 있게 돼요. 지금은 이러한 논의보다는 영업의 자유냐 아니냐, 하는 일도양단식의 해법으로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꼬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영업의 자유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영업의 자유만으로 다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적 영업도 공존의 조건을 만드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은 배제해버리는 게 쉬우니까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렇죠, 가장 편리한 방법이니까요. 어느 공공기관에서 직원 연수를 하는데 남녀를 따로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런 면이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도 의심을 해봐야 해요. 성별에 의한 분리를 왜 해야 되는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하고요. 거기에 충분히 합당한 사유가 없다면 분리하지 않는 게 맞아요. 모든 문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동안 사람을 분리하는 것에 대해 손쉽게 생각해 왔던 경향이 있었는데요. 차별 금지 사유는 그런 면에서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바뀔 것  

 

이런 비관적 장면들 속에서도 희망의 요소를 발견하고, 가능성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교수님께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반전의 잠재력’은 무엇인가요?

양면적인데요. 영업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 같은 입장도 강하게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대명제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합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한국 사회의 역사를 보면 무언가를 해야겠다 생각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인식을 바꿔온 경향도 있거든요. 차별 금지에 대해서도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봐요. 일단 법이 빨리 제정되길 바라고요. 법에 맞게 기존의 관행들을 차근히 바꿔 나가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에 관한 정치권의 언어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요. 교수님은 이미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높아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인 정치 기술이다.”(196쪽)라고 하셨어요. 

엄청난 책임 방기죠. 차별금지가 안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점점 더 다원화되는 사회에 대책이 필요하고, 잘못하면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데 답이 없잖아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법 없이도 할 수 있는 뭔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말은 기만일 수밖에 없죠.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정치인들은 “잘 검토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하지 사회적 합의를 핑계대는 일은 별로 없어요. 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실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죠. 국회에서 공론화를 해보라고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도 했지만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 등을 종합해보면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그 이상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차별금지법 후에 와야 할, 관심을 갖고 계신 법이나 정책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법으로 한정해 이야기하면 혐오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법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도 중요한 법이기는 한데 모든 차별 문제를 다 관할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가 하면 혐오범죄는 그 해악이 아주 분명하기도 하고요. 한 사회에서 혐오,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요. 현재도 혐오범죄라 할 수 있는 범죄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법이 시급하죠. 차별금지법은 논의라도 있지만 혐오범죄에 대해서는 논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차별금지법과 마찬가지로 혐오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법에서도 ‘성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라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여기에 성적지향을 뺄 수가 없어요. 그것 때문에 일부에서 또 반대를 하는 상황이고요. 지금은 모든 게 패키지로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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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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