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 세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을 위해 바로 목숨을 건다는 거예요.”
- 토머스 핀천, 『바인랜드』 중에서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의 소설을 두 번 영화로 만들었다.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가 그 작품들이다. 방대하고 난해하며 복잡한 토머스 핀천의 작품들, 그중에서도 영화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던(어떤 소설들에 있어 이 표현은 지극한 칭송의 말이다) 『바인랜드』를 영화화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영화와 느슨하면서도 견고한 관계맺음을 하고 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핀천에 대한 애호(혹은 집착)에는 특별한 데가 있다. 한 작가의 영화를 두 번이나 영화화하면서 첫 번째 시도에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두 번째 시도에서는 극호의 비평을 얻어냈다는 점은 그렇다 쳐도 첫 번째는 소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영상화하는 시도를 한 그가 두 번째는 ‘영감을 얻은(inspired by)’ 정도로 구석구석 뜯어내 재조합해서 원래의 형상에서 상당히 멀리 나아간 형태의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토머스 핀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1966년에 발표되었으며 60년대가 그의 시대로 흔히 언급된다는 점, ‘고유의 결함’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인히어런트 바이스』(2009)와 『바인랜드』(1990)는 비교적 덜 언급되는 핀천의 후기작들이라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핀천 문서에서 『바인랜드』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핀천의 네 번째 소설 『바인랜드』는 1990년에 출간되어 몇몇 팬들과 비평가들을 실망시켰다.”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매그놀리아〉를 비롯한 작품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오페라처럼 웅장하게 담아내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들 중에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일단 규모면에서도 스펙터클을 달성했다. 그의 영화 중 최대의 제작비를 들인 작품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토머스 핀천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대중성이 있으리라고는 감독 자신은 물론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며, 자본의 투입(보도마다 다르지만 1억 3,000만 달러(한화 약 190억) 이상으로 추정된다)과 캐스팅(어쨌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펀치라인(납치된 딸을 구하러 아버지가 나선다. 〈테이큰〉 아니냐고), 제목(계속 이어지는 전투신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은 일종의 눈속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평범한 의미에서 재밌을 것 같다는 연기를 피우는 것이다. 결론은 비범한 의미에서 재밌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 될 예정이다. 그 비범함은 핀천에서 기인하는 동시에 핀천에 미친 폴 토머스 앤더슨의 것이다. 토머스 핀천이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도 『바인랜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비슷한 무엇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인랜드』 없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있을 수 없었다. 영화의 손실액은 1억 달러(한화 약 140억)에 육박할 예정이다. 미래에는 그 사실마저 이 영화의 전설에 포함될 것이다. 내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대해 들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본 국내외의 영화감독들이 폴 토머스 앤더슨에 경탄하는 동시에 ‘부러워한다’는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돈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자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뜻에서. 관객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결과물이 이렇게나 극장에 영원히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취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기분이 좋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바인랜드』는 토머스 핀천이 『중력의 무지개』 이후 17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토머스 핀천은 철저하게 은둔하는 작가인데 1937년생인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뜨는 사진은 50년은 족히 지난 것 같은 흑백이미지 뿐이다. 『중력의 무지개』가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던 때 그는 수상을 몇 차례 거절하다가 결국 대리인을 보내 상을 받은 전력이 있을 정도다. 제국으로서의 미국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웨스턴이나 누아르, 과학소설 같은 장르와 엮어 역사, 정치, 문학, 철학을 비롯해 음모론과 종료, 화학과 수학, 다양한 대중문화의 코드를 집어넣는 글을 쓰는 그의 소설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읽기 쉽다고 평할 수는 없다. 소설을 즐기는데 필요한 지식이 많을수록 어쩔 수 없는 접근성 낮음의 문제는 당연하게도 토머스 핀천의 세계가 고평가되는 원인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바인랜드』이 받은 비판도 그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가벼운’ 핀천 소설이라는 평을 필두로, 주류문학의 냄새가 난다든가 내적 긴장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말들이 나온 것이다. 이 평가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폴 토머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에서 ‘대중성’의 태그가 붙을 수 있을 희소한 작품이라는 사실과도 연결 지어볼 수 있다. 평론가들의 비판으로부터 『바인랜드』를 지지한 이는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인데, 그는 신간 서평에서 “우리가 토머스 핀천이 쓰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책이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재선에 성공한 1984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1985년에 시작되었으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개봉한 2025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한 해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임기의 시작. 남아 있는 히피들, 60년대 활동가들,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이 검거되는 최후의 타이머가 작동을 시작했다.
『바인랜드』는 1984년 캘리포니아 북부 어딘가에 있는 가상의 지역 바인랜드를 무대로 한다. 한때 히피였던 조이드 휠러는 10대인 딸 프레리와 둘이 살고 있다. 아니, 사실 조이드 휠러는 1960년대에 급진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운동(?) 집단 24fps에 속해있었고, 혁명을 꿈꿨다. 지금은 해마다 지급되는 정신장애 생활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보조금 수령을 위해 그는 술집의 유리창을 깨고 소동을 벌인다. 프레리의 엄마 프레네시 게이츠는 ‘24fps’의 창립 멤버였는데 프레리가 두 살이던 해에 사라졌다. 그냥 사라지기만 한 게 아니라 동지들을 배반했다. 동지들을 밀고한 프레네시는 은밀한 관계였던 연방검사 브록 본드가 관리하는 연방수사국의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미국 전역을 떠돌며 살게 된다. 보조금 수령을 위한 광란을 연출하던 어느 날, 조이드를 담당했던 전직 마약단속반 엑또르가 찾아온다. 전처인 프레네시가 브록의 감시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관련 정부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프레네시에 집착하는 브록은 프레네시를 끌어내기 위해 딸인 프레리를 찾기 시작했다. 프레리는 위기에 처하고, 엄마의 오랜 친구들을 만나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브록은 마리화나 박멸 운동을 내세워 프레네시가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인랜드를 대대적으로 공습한다.
급진적인 전통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다. 토머스 핀천은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예컨대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한 레이건의 시대에 이르면 청년 세대가 이미 브록 본드가 원하던 대로 자라나 좌파 재교육 시설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소설에서 브록 본드는 이렇게 묘사된다. 핀천의 아름다운 통찰. “브록 본드의 비범함은 60년대 좌파의 활동들 속에서 질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미처 의식하지 못한 질서에 대한 욕망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모든 부모들에 맞서는 청년세대의 혁명을 선포하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안, 브록은 국가라는 이름의 확대가족 속에 영원히 어린아이로, 안전하게 남기만을 바라는, 만약 그 자신도 느껴봤더라면 가끔은 감동적이었을, 숨겨진 욕구를 보았다.” 그러니까, 1960년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를 그리운 눈길로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다룬다는 것이다. “가장 잘 놀았던 아이들”이라고 히피세대를 말한 크리스티안 생-장-폴랭Christian Saint-Palais은 그의 책 『히피와 반문화』에서 “반문화는 딱딱함의 문명에 대립하여 부드러움의 문명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태도는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세상의 근본적인 폭력마저도 외면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쾌락주의는 결국 시간이라는 절대군주 앞에 굴복하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청년세대는 부모세대의 양 극단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아 자라난다. 그리고 제도에 직접 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배제적인 태도를 취할 때 저울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어버린다. ‘바인랜드’라는 제목도 다시 생각해보자. 토머스 핀천의 데뷔작은 『브이(V).』다. ‘바인랜드’는 ‘브이(V)-랜드’아닌가? 역사적 위기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브이’라는 여성과 『바인랜드』의 사라진 엄마를 찾는 모험은 알파벳 V의 생김새처럼 같은 높이로 튀어오르지만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두 개의 선을 연결짓는다. 콜럼버스 이전에 바이킹이 발견한 나라 빈란드(Vinland), 즉 미국 자체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바인랜드』를 읽지 않았으며, 폴 토머스 앤더슨도 읽으라는 권유를 하지 않았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장면
폴 토머스 앤더슨은 『바인랜드』의 영화화를 아주 긴 시간 동안 생각해왔다. 20여 년간 『바인랜드』는 그의 책상 위에 있었으며 그 사실을 할리우드에서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여러 차례 이 작품을 쓰고 또 썼다. 수십 차례에 이르는 시나리오 개고는 영화계에서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영화화를 시도하면서 심지어 그 사이에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 영화의 수많은 줄거리를 20년이라는 시간대에 접속시키며 여러 대통령을 경험한 결과 얻은 그의 결론은 “똑같은 똥, 다른 해”라는 것이었다. 그는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파편적으로 훔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에스콰이어〉에서 다음 세대와의 긴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로서 다음 세대가 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중년을 피할 수 없다. 자기만족을 피할 수 없다. 그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다음 세대를 경멸하기를 피할 수 없다.” 젊었을 때 아무리 자유주의적이고 열성적이었더라도 까칠해지고야 마는 일. 일상의 전투에 맞서 긴 시간을 싸워, 한없이 지쳐버리는 일. 영화가 설교하면 듣기를 멈춘다고 말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은 온전히 현재적인 정치영화를 만들면서 시간과 장소를 탈각시켰다. 『바인랜드』에서는 레이건을 레이건이라고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는 백인 남자들의 회동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으로 은유된다. 구체적인 시대의 코드를 쓰는 대신 차를 몰고 서부로 향한다. 결투는 그곳에서 벌어질 것이며, 결투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직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딸이 치르게 될 것이다. 체이스 인피니티가 연기하는 윌라 퍼거슨에게는 두 아버지가 있다. 두 아버지는 각기 양극단의 정치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한 아버지는 딸을 구하는데 거듭 실패한다. 다른 아버지는 딸을 죽이는데 실패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그 아버지 세대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한없이 구체적인 이야기는 “가족이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해묵은 질문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스타워즈〉 식의 “내가 네 아빠야”의 순간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 아버지는 총을 쏘아 딸을 구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내내 거기 있어준 사람이다.
『바인랜드』는 1960년대의 히피와 급진주의자 세대의 쇠락을 1980년대 레이건 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1990년의 소설이다. 소설의 1960~1980년대 히피 이야기와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2000~2020년대는 흑인 인권 운동의 메시지와 이민자 단속이라는 광기를 단단히 묶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동시에 시의적절하다. 베네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가 연기한 세르지오 센세이는 소설 속 두 사람을 합치고 변형한 결과물이다. 소설 속 동양 전통 수련자들인 D. L. 과 다케시는 유머러스하고 여유롭지만 지켜야 할 것들 앞에서는 철저하고 매서운 (그리고 다시 여유롭게 파도를 탈 줄 아는) 세르지오 센세이로 완성되었다. 또한 폴 토머스 앤더슨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길 스콧-헤론Gil Scott-Heron의 곡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혁명은 TV로 중계되지 않는다)’를 끌어들인다. 길 스콧-헤론은 재즈, 솔, 펑크를 아우르는 자유로운 음악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발표한 흑인인권운동가이자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암구호로 등장하는 “그린 에이커스, 베벌리 힐빌리즈, 후터빌 정션(Green Acres, The Beverly Hillbillies, and Hooterville Junction)”은 바로 그 곡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에서 엄마 프레네시는 푸른 눈의 백인이었지만 영화의 엄마 퍼피디아는 흑인 여성으로 나온다. 이 과정은 당연하게도 영화의 악당인 록조의 욕망과 쾌락을 더 비틀린 것으로 표현해낸다. 흑인 여성을 갈망하는 인종차별주의자. 그렇게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는 있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최종 보스 자리가 마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은 철저히 우스꽝스러워진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악당의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벗겨낸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야말로 ‘대중적’으로 영화가 소구되지 못하고 큰 적자를 기록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록조는 작은 체구를 상쇄하기 위해서인지 어깨로 걷는 것 같은 우쭐거림을 지닌 파시스트 광대로 보인다. 이 아버지는 딸을 죽이고자 하지만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하며, 딸을 죽이게 다른 악당에게 꺼넘기지만 그 과정 역시 실패하며, 길 위에서 갑작스럽게—허무할 정도로 갑작스럽게—죽음을 맞이한다. 악은 철저하게 악이지만 멋있지도 신비롭지도 않다. 핀천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옮기고자 집착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았던 〈인히어런트 바이스〉 때와 달리 『바인랜드』는 원작과 몇몇 캐릭터, 상황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후기 핀천의 세계를 2025년에 완전한 방식으로 이식해낸다. 같은 똥, 다른 해. 하지만 파도를 상상하며 심호흡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면, 바라건대 우리는 다음 전투까지 살아 전진할 것이다.
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소설로 만화로 영화로 드라마로 무대로. 텍스트가 영상이 되고 영상이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이야기들, 이야기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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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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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호 품목의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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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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