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네무루바카』의 실사영화 〈잠자는 바보〉 스틸컷
내겐 나와 너무 다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친구는 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담임에게 소개 ‘당하기’ 위해 교탁 위에 서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했다’고 표현한 것은 교탁 위에 서 있던 친구의 모든 것이 교실과 너무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잔머리 한 올 허용하지 않은 살벌한 똥머리에, 너무 말라서 벙벙하게 큰 교복을 입은 친구는 뒤통수를 치면 굴러떨어질 것같이 큰 삼백안으로 마치 학급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친구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발레를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런 머리를 하고 있었던 거다. 삼지창 앞머리에 볼륨머리를 하고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저 머리 스타일은 뭐냐, 발레하던 애가 왜 인문계에 전학 온 거야 하며 어딘가 다른 계열의 사람처럼 보이는 친구를 조금 경계했다. (애가 좀 오해 살 만큼 싸가지 없게 생기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는 며칠 뒤 무릎 위로 훌쩍 올라올 만큼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입고 나타났고(당시 교칙으론 치마 길이가 무릎의 반 이상을 덮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복장으로 나타난 덕에 전학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생활지도부로 직행 ‘당했다’. 남들처럼 머리하고 교문에서 안 걸릴 정도로만 교복 줄여 입고 다니던 나에게 친구의 등장과 행적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본인처럼 하고 다니는 애 아무도 없는 거 안 보이나? 좀 피곤하게 사는 애군.” 그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뒤 친구와 나는 학교 밖에서 교칙과 아무 관계 없는 사복을 입고 만날 만큼 가까워졌다. 친구가 이질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머리 모양이나 발레를 했다는 이력 때문이 아니었다. 걘 그냥 이상한 애였다. 살벌하게 생긴 얼굴로 누군가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거나 성대모사를 하는데, 그걸 본 다른 애들은 ‘…뭐 따라 한 거야?’라고 물었다. 나만 혼자 얘 미친 거 아니냐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게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투썸플레이스 같은 프렌차이즈 카페를 가보았고 크림이 올라간 커피와 허니브레드 따위를 시켜둔 채 카페의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온갖 수다를 떨며 헤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왜 우리가 처음부터 친해질 수는 없었는지 느꼈다. 우린 웃긴 거 말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문과 반이었던 우리는 2학년으로 진급할 때 과학탐구 과목을 하나 정해야 했는데, 같은 과학탐구 과목을 고르면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다. 즉 말 맞추어 같은 과목만 고르면 무조건 한 반이 될 수 있었던 건데, 서로 아니면 친구도 없는 주제에 친구는 무조건 지구과학이었고 나는 생물이었다. 뜻을 굽히는 일은 절대 없었고(이런 점만 통했다.) 우린 결국 다른 반이 되기로 갈라섰다. 또 친구는 등교할 때 1.5리터짜리 콜라를 사 와서 심심할 때마다 마셨다. 덴마크 민트초코우유를 좋아했던 나는 하루종일 옆구리에 패트병 끼고 콜라 마시는 친구가 좀 미쳐 보였다. 하루는 새우깡을 먹고 싶다고 해서 편의점에 갔다. 그래도 우리 둘 다 새우깡은 좋아하는구나, 새우깡 싫어하는 사람은 잘 없지, 싶었는데 나는 매운 새우깡을 골랐고 친구는 쌀 새우깡을 골랐다. 나는 그날 친구 때문에 처음으로 쌀 새우깡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내가 만화를 좋아하고 장르 구분 없이 웬만하면 재밌게 보니까 만화로는 좀 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친구가 좋아하는 만화는 이러하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죠죠 시리즈를 진정 즐길 줄 아는 자들은 하늘에서 점지해주신 챔피언들뿐이라 생각한다.) 『도로헤도로』(싫어하진 않지만 하야시다 큐의 만화가 내게 ‘재미’ 있지는 않다…) 『두더지』(오타쿠가 아닌 이상 후루야 미노루 만화 중엔 보통 『이나중 탁구부』를 꼽지 않나?) 『이 멋진 세상』(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사노 이니오 만화를 재밌게 읽은 적이 없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친구의 인생만화다. 이 만화에 대해선 그냥 “너나 많이 봐라”라는 말만 해줬다.) 물론 우리도 『헌터×헌터』 같은 만화는 공통적으로 재밌게 읽기는 한다. 그러나,
“『헌터×헌터』 개미 편은 진짜 세기의 로맨스물 아닐까? 온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초인적 존재(메르엠)와 눈이 먼 소녀(코무기)가 있었는데, 그 소녀를 사랑한 초인적 존재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 대신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장기를 두기로 한 에피소드지. 눈 감으면 개미 편 마지막 장면이 눈에 훤히 그려지지 않니? 아무 배경 없고 말풍선으로만 대사가 이어지는 그 장면 있잖아? ‘코무기, 거기 있느냐?’”
“야 근데”
“?”
“나 코무기 성대모사 할 수 있어.”
“……”
“비염1 있어서.”
“……”
“와다스2(킁).”
“하지 마.”
같은 만화를 좋아해봤자 세기의 사랑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두고 갑자기 자신의 질환을 이용해 코흘리개 주인공의 성대모사를 하는 녀석은… 뭐랄까, 인간적으로 의심이 된달까? 일부러 시비 거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남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는 게 말이 되나?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이러면 욕먹는다고 나무라니까 다행히 나한테만 이런다고 한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한테만 이러는 거면 더 열받는다.) 놀라운 사실은 아직도, 심지어 며칠 전에도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호불호나 감상을 나눌 때 정확히 반대인 취향을 가졌음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 봤어? 다 좋은데 △△가 너무 별로지 않아?” “난 다 별로였고 △△만 좋던데?” 도대체 너랑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일지 감도 안 잡힌다…
친구와 내가 너무도 다르다고 생각하는 점은 단순 식성이나 취향 때문은 아니다. 나는 평범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고, 또 평범하게 국문과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해 일하고 있다. 예고에서 발레를 하던 친구는 독일어과에 진학한다. 교수의 부름을 받을 만큼 진지하게 독일어를 공부했던 친구는… 돌연 일본의 대학교로 학적을 옮겨 전시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은 도쿄에서 영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친구가 신기하다. 그러니까, 발레를 열심히 한 것은 그 애의 독일어 공부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고, 마찬가지로 그 애가 독일어를 열심히 한 것은 일본 대학에 진학하고 영화 일을 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해온 게 아까워서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이다. 근데 그 애는 무언가를 열심히 해 일정의 성취를 이루고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어버린다. 습관적으로 Ctrl+S를 누르며 저장하는 인생을 살아온 나에 비해, 친구는 냅다 리셋 버튼을 눌러 여태까지의 인생을 뒤집어 엎어버릴 줄 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새로운 것을 하며 처음부터 그걸 하려던 사람처럼 살아간다.
다 좋다 이거다. 다만 나는 친구가 나와 같은 나라에 살았으면 좋겠다. 친구는 내게 있어 가장 친한, 아니 그냥 나의 가족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어쩌다가 내가 도쿄로 갈 때, 혹은 친구가 서울로 올 때면 시간이 얼마 없으니 부리나케 보고 헤어질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보고 싶을 때 좀 더 편하게, 일상적으로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애초에 평생 써온 언어, 살아온 환경, 함께해온 사람들을 뒤로하고 모르는 곳에서 혼자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나는 너랑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넌 아니야?
지난여름에 『네무루바카』를 출간했다. 디스토피아를 무대로 한 SF 만화 『천국대마경』을 연재중인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초기작으로 어딘가 엉거주춤, 미적지근 살아가는 청춘을 그린 담백한 만화다. 올해 초 일본에서 꽤 유명한 아이돌그룹 출신의 배우가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실사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시구로 마사카즈 만화를 너무 좋아하고 만화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에 그의 만화를 한 작품이라도 정발해보는 것이 위시 리스트 중 하나였기에 즐겁게 편집했다. (일이 이렇게 즐겁고 신나면 왠지 양심에 찔리기 때문에 티를 많이 못 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네무루바카』 실사영화 〈잠자는 바보〉3의 국내 개봉을 기획해 진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만화 원작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흥행몰이 중인 것과 비교했을 때 『네무루바카』 실사영화의 반응은 썩 크지 않았지만 친구는 하고 싶으니까 일단 해보겠다며 내가 잘 아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전했다. 책이 영화보다 빨리 나와 있어야 했던 터라 인쇄 데이터 언제 보내냐, 공식 포스터는 언제 뜨냐, 초판 특전은 무엇이냐, 영화 특전은 무엇이냐, 그런 이야길 나누며 나는 원작 만화의 국내 출간을, 친구는 실사영화의 국내 개봉을 함께 준비했다.
『네무루바카』는 음악으로 먹고살겠다는 원대하고 낭만 가득한 꿈을 가진 현실주의자 쿠지라이 루카와 그런 선배를 쫓는 한량 대학생 이리스 유미가 주인공인 캠퍼스 청춘물이다. 이리스에겐 나름 인기 있는 인디밴드로 활동 중인 루카가 조금 멀리 있는 사람, 세상과 맞물려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루카의 자작곡 중 가장 호평인 〈네무루바카〉는 사실 이리스가 잠자는 동안 잠꼬대로 부른 멜로디를 따와서 만든 노래인지라 곡이 좋은 평가를 받을수록 심란하긴 루카도 마찬가지다. ‘꿈이 있어서’ 고민인 선배 루카와 ‘꿈이 없어서’ 고민인 후배 이리스를 보고 있으면 꿈의 유무와 관계없이, 마치 방황 총량의 법칙처럼 젊은 날엔 일정량의 고민하는 시간을 이수해야만 정신을 차리든 포기하든 깨달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건가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루카와 이리스를 보면서 자꾸만 나와 친구가 대입되었다. 내가 이리스, 친구가 루카. 나는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한 학기 단위로 인생을 살기 바빴다. 이리스처럼 꿈이나 하고 싶은 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장 코앞의 시험과 사건들 너머 좀더 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펼쳐지진 않는 타입이었다. 그런 내게 있어 친구는 항상 먼 도착지를 설정하고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하던 것이나 제대로 하는 게 인생 사는 법이라고 아는 사람이었는데, 친구는 새로운 것을 하는 데 있어 두렵거나 귀찮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덕분에 나는 친구를 따라서 많은 처음을 경험하기도 했고 친구의 배포나 담대함 같은 것을 동경했던 것 같다. 친구가 다른 나라에 간다고 했을 때도 나는 아무런 말을 안 했다. 그러니까 못 봐서 아쉽다 같은 말 따위 할 수 없었다.
만화 속에서 루카는 인디밴드가 아닌 유치하고 심심한 대중가요를 부르는 솔로 가수로 데뷔한다. 이후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단독 투어를 열고 이리스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는데, 그곳에서 오직 후배만을 위한 헌정곡을 바친다. 당연히 곡명은 ‘네무루바카’. 인디밴드 시절 거칠게, 신나게, 즐겁게 불렀던 곡. “작곡(잠꼬대) 이리스 유미, 작사 쿠지라이 루카”의 그 곡. 솔로 데뷔 후 다시 부를 일 없을 것 같았던 곡의 가창을 마친 루카는 마지막으로 이리스에게 무언가 할 말을 건넨다. 그러고 나선 엉망이 된 공연장에서 도망쳐 그 길로 사라져 버린다. (아마 어딘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하면서 살고 있겠지 뭐…)
영화 〈잠자는 바보〉
친구가 무사히 국내 영화관에 걸어준 『네무루바카』의 실사영화를 보러 갔다. 만화와 비슷하고도 다른 점을 비교하면서 보고 있는데, 만화에선 나오지 않았던 루카의 마지막 말이 영화에선 나왔다. 루카는 ‘네무루바카’를 완창한 후 조용해진 객석을 향해, 가깝고도 먼 곳에 앉아 있을 이리스를 향해 말을 건다. “잘 지내.” 평소 같았으면 이런 연출에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원작에서 굳이 감춘 말을 영화에서 해버리다니, 산통 깨는 짓이라며 말이다. 그런데 저 “잘 지내”는 어째선지 싫지 않았다. 심지어 꽤 좋았다. 별 대단치 않은 말이라서 좋았다. 왜냐하면 “잘 지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 말이잖아? “또 보자”처럼 가까운 기약이나 가벼운 이별 인사를 나눌 수 없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 그러니까 이를테면 일 년 중에 많으면 하루나 이틀 정도 만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친구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나도 정말 진심으로 하니까.
친구가 보고 싶을 때면 잘 지내냐고 메시지를 보낸다. 마지막 연락이 기껏해야 바로 사나흘 전일 때도 말이다. 저녁이면 높은 확률로 친구는 마라샹궈를 먹고 있다고 답한다. 나는 마라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넌 얼마 주면 나와의 우정을 팔 수 있을 것 같냐?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면 팔 수 있을 것 같다. 서울도 넓지 않느냐, 강남 아파트랑 외곽 아파트 중 어디가 기준이냐.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친구가 좀 더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친구와 처음 갔던 해외여행이 기억나기도 하고, 친구와 과제를 한답시고 카페에서 만나 온종일 떠들기만 하다 돌아온 날들도 생각나고 그렇다. 일 년 중 고작 하루이틀, 어떤 해에는 한 번도 친구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시절이 끝나고 세월이 쌓여간다. 가끔은 그 사실이 너무 서글프고 야속해서 시간을 모아둔 다음에 친구를 만나는 날에 와르르 풀어서 쓸 수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구과학과 생물을 배워서 우린 그런 물리학적 차원의 가능성에 대해선 모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이니까. 먹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성격도 사는 방법도 뭐 하나 맞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네가 여기를 떠나서 사는 것도, 내가 여기서 사는 것도 너무 다른 우리가 각자 내린 선택이고 삶이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나름대로 죽을 똥 살 똥 사는 것처럼 너도 이제 거기서 너만의 언어와 환경과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었겠지? 그건 우리가 아무리 달라도 틀림없이 같을 거야.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너와 내가 더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한 번도 내 가족이 아니었던 적은 없어. 그러니까 너는 거기서 “잘 지내”. 그거면 돼.
이 글은 너무 늦지 않게 친구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연재 중인 웹진에 너에 대한 깊은 글을 썼다고 서프라이즈로 보여주기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제법 썼기 때문이다. (살면서 친구가 나를 열받게 한 일이 너무 많아서 왜곡되고 과장된 기억을 쓴 것이 아닌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도…) 애초에 친구는 그런 낯간지러운 짓을 해봤자 별로 반색하거나 감동받는 타입도 아니다. 그 녀석은 이 글을 읽고 보나마나 이런 소리나 할 것이 뻔하다.
“야 근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진짜 명작임.”
1 작중에서 코무기는 코흘리개 설정이다.
2 코무기가 자신을 칭할 때 쓰는 인칭. ‘ワダす(와다스)’.
3 ‘네무루바카(眠るばか)’를 그대로 번역하면 ‘잠자는 바보’다. 만화책은 작중에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음차 번역한 제목으로 정식 발행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네무루바카
출판사 | 문학동네
김해인
만화 편집자. 출판사 스위밍꿀에서 에세이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2024)를 냈다. 집 가서 만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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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3663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