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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의 책장
이다혜 작가가 추천하는 『칸트의 동물원』 읽으며 여행하기, 혹은 마크 피셔 선집 함께 기다리기.
글: 이다혜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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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저 | 민음사

 

첫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반복해 읽은 작가가 꾸준히 좋은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큰 힘이 된다. 이근화 시인의 첫 시집 『칸트의 동물원』은 몇 번이고 선물했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온 책으로, 뾰족함과 다정함이라는 이근화 특유의 정서가 도드라지는 책이다. 다름과 닮음을 끝말잇기 하듯 발견하며 국경을 넘고, 언어와 비언어의 레퍼런스를 단어로 절묘하게 빚어낸다. 만일 당신이 유럽 여행에 동반할 책을 찾는다면 『칸트의 동물원』은 제법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이근화의 요즘 시집과 산문집도 천천히 따라잡으시길. 첫 시집의 힘은 이런 것이다. 


 

 

<크라임씬> | 예능

 

<크라임씬>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다른 일 하면서 그냥 틀어놓는 일도 잦은데 유튜브에 12시간 묶음으로 올라온 영상도 자주 틀어둔다. 시트콤 보듯 하고 있다. TVING에서 방영한 <크라임씬 리턴즈>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크라임씬 제로>도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JTBC 시절의 2~3 시즌을 좋아한다. 장진, 박지윤, 김지훈도 중요한 멤버들이지만, 홍진호와 하니, 양세형이 출연한 회차를 특히 좋아한다. 추리게임계의 <전원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서로 익숙해진 출연진들이 설정과 현실을 오가며 서로를 괴롭히고 놀리는 부분이 재미있다. 내게 있어서는 누가 범인인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추리게임 프로그램. 

  


『k-펑크 1』

마크 피셔 저 / 박진철, 임경수 역 | 리시올

 

마크 피셔의 책은 다 좋아한다. 그중에서 한 권만 골라야 한다면 『K-펑크 1』이 좋겠다. 동시대의 대중문화에 대해 징그러운 것 취급하는 비평가들도 세상에는 없지 않은데 마크 피셔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장르적인 콘텐츠들을 즐겁게 분석해 낸다. 마크 피셔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만족감의 근간에는 그가 글감으로 삼는 문화 생산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믿음이 있다. “<샤이닝>이 제기하지만 대답하지는 않는 불길한 물음은 다음과 같다. (잭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이 일이 대니에게 일어날까?”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그에게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 작품과 정치를 연결 짓는 글들은 특히 좋다. 마크 피셔 선집은 원래 4권으로 출간될 예정이었고 올해 3권까지는 나와야 했는데 아직 1권뿐이다. 부디 이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져서 후속작들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다.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저 / 이동철 역 | 이산

 

『장안의 봄』은 당나라 수도 장안의 풍속과 역사를 다룬 책으로 1941년에 일본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철학 공부를 하던 시기에 선생님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았는데, 그 이후로 종종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할 때 왜인지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 나는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의 여성향 웹소설(흔히 언정소설이라고 부른다)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런 중국사와 중국문화를 다룬 책들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과 무관하지만 개인적 관심사의 영역에서 꾸준히 신간을 들여다보는 키워드가 내게는 #당나라 그리고 #전쟁사 이다. 외우는 내용은 없고, 그저 읽는 일을 좋아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차에 탄 사람들이 대화하는 장면 | 영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다른 승객 없이, 자동차 운행 중에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좋아한다. 가장 모범적으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자동차 안 대화 장면이다. 이런 대화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자주 인물들의 성격을 엿보게 한다. <기생충> 같은 자동차 안 대화도 있겠다. 운전석과 뒷좌석의 계급차가 느껴지는. 사실 자동차라는 영화적 공간을 좋아한다. 카메라는 움직이기 힘들고, 관객은 눈 돌릴 곳이 없다. 어딘지 연극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영화는 연극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방식으로 차 안 사람들의 대화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최근에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보여준 차 안 대화와 사람들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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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출판사 | 민음사

k-펑크 1 (마크 피셔 선집 2004-2016)

<마크 피셔> 저/<대런 앰브로즈> 편/<박진철>,<임경수> 공역

출판사 | 리시올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저/이동철,박은희 공역

출판사 |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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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 영화와 책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는 『출근길의 주문』, 『아무튼, 스릴러』,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이 있다. 2025년 겨울에 고전 읽기에 대한 책과 영화에 대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