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넷 윈터슨 저/허진 역 | 현대문학
밖에서 주워 온 아이를 업둥이라고 부른다. 나는 업둥이가 업어 키운 아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심청의 엄마가 죽자 심봉사가 아기를 업고 젖동냥을 다녔듯, 아이를 기르기에 형편이 마땅치 않으면 여기저기 업고 다녀야 할 테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업둥이는 업을 지닌 아이라는 의미였다. 무속에서 업은 신의 이름에 붙곤 하니, 업둥이는 범상치 않으며 상서롭기까지 한 명칭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불교에서 업은 곧 모든 언행과 선악의 총합이고, 과거의 업이 미래의 인과에 영향을 미친다. 업둥이가 어떻게 자랄지, 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안다. 지넷 윈터슨의 소설 『시간의 틈』은 업둥이를 데려오는 데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업을 지닌 아이가 전체 이야기의 시작,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맡는다.
『시간의 틈』을 읽기 전에, 이 책이 셰익스피어의 후기 희곡 『겨울 이야기』를 재창작한 소설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소설은 친절하게도 도입부에서 『겨울 이야기』의 내용을 요약하여 알려준다. 레온테스 왕은 아내 헤르미오네가 자신의 친구인 폴릭세네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믿는다. 모든 정황이 왕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가리키지만, 질투에 미친 왕은 전혀 믿지 않는다. 이 와중에 헤르미오네는 딸을 출산한다. 레온테스 왕은 아기를 사생아라고 매도하며 딸과 아내와 친구를 다 죽이려 한다. 아기는 머나먼 해안에 버려지고, 가난한 목동과 그 아들이 아기 페르디타를 데려다 딸처럼 키운다.
윈터슨의 소설에서 페르디타는 퍼디타, 목동(shepherd)은 솁이 된다. 솁은 집에 돌아가던 중 어떤 남자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남자는 죽기 전 바로 근방에 있던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숨겨두었다. 솁은 흑인이고 경찰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살인자들은 자리를 떠났다. 베이비박스의 아기는 그대로 두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솁은 기로에 선다. 그는 연명치료 상태이던 사랑하는 아내를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이다. 솁의 삶은 상실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아기를 만난 순간 그는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상대를 발견한다. 솁은 이렇게 받아들인다. “내가 빼앗은 생명 대신 새로운 생명이 온 것 같다. 내게는 이것이 용서처럼 느껴진다.” 그는 감히 자신이 퍼디타를 데려가기로 한다.
소설의 내용은 『겨울 이야기』와 흡사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희곡과 달리 소설은 인물의 내면과 경험을 훨씬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희곡의 레온테스 및 폴릭세네스에 해당하는 리오와 지노는 학창 시절부터 긴밀한 사이로 자랐다. 둘 사이의 유대에는 성적 긴장감, 경쟁심, 비밀과 죄책감이 녹아 있다. 리오가 허마이어니, 즉 미미와 결혼하는 과정에도 지노가 있었다. 격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리오와 달리 지노와 미미는 예술가 기질의 사람들로, 둘은 서로를 친밀하고 편안하게 느낀다. 지노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리오는 미미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노는 리오가 이길 수 없는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자극하는 사람이다. 세 사람은 감정적으로 단단히 엮여 있다. 그렇기에 리오는 미미와 지노의 불륜을 의심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분노한다. 소설이 살을 덧댄 덕분에 인물의 감정 변화는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고, 세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전반부의 파국은 퍼디타가 성장한 다음에야 전환을 맞이한다. 『겨울 이야기』의 페르디타는 우연히 폴릭세네스의 아들 플로리젤을 만난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정확히 모른 채 연인이 된다. 『시간의 틈』의 퍼디타는 동네 카센터에서 일하는 젤을 만나고, 점차 가까워진다. 여기서 퍼디타와 주변의 인물들은 생기가 넘친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하루하루 지내는 리오, 지노, 미미와 달리, 퍼디타와 젤은 이제 처음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퍼디타의 감정 묘사는 정말로 풋풋하고 강렬하다. “내 이런 기분은 뭘까? (...)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사적인 것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의 영혼이 이와 똑같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비밀을 가질 수 있을까? / 나의 이런 느낌은 새롭거나 낯설거나 놀라운 것은 전혀 아니다. / 하지만 나는 새롭고 놀라운 기분이다.” 이들 어린 연인은 말하자면 이제 막 출항한 상태다. 그들은 친부모와는 다른 경로로 항해하고자 한다. 특히나 업둥이인 퍼디타는 리오와 미미가 침몰한 자리와는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다. 솁은 퍼디타에게 진정으로 가족이 되어주었다. 본래의 부모와 연결이 끊어진 업둥이라 해도, 다른 식물에 접붙인 가지처럼 생생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모두가 회복된다는 해피 엔딩이다. 당연히 퍼디타는 자신의 과거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과거의 속박에서 끄집어내 생기를 불어넣는다. 퍼디타가 성장하는 동안 어른들에겐 스무 해에 가까운 시간이 쌓였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찾을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이야기에 가능한 결말은 세 가지뿐이다. 복수, 비극, 용서. 셰익스피어는 업둥이에게 이야기를 용서로 끌고 가는 역할을 맡긴다. 소설은 이를 한층 자연스럽게 손질해서 보여준다. 회복과 재생, 그것이 퍼디타의 업이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와 달리 소설에는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주인공이 등장한다. 줄곧 이야기를 들려주던 화자다. 저자인 지넷 윈터슨은 자신도 입양된 업둥이라고 밝힌다. 그렇기에 『겨울 이야기』는 자기에게 아주 개인적인 글이었다고. 그렇다면 『시간의 틈』은 저자가 업둥이인 자신에게 다시금 들려주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어떤 상처라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마법처럼 회복될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을 새로운 시간으로 내던졌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시간의 틈’에 맡겨진다.” 작중 시간의 틈에서 퍼디타를 발견했던 솁은 탐험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 퍼디타에게 말한다. “예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래도 집에는 갈 수 있잖니.”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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