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솜에게 반하면』을 읽고 자란 독자들에게 건네는 색다른 사랑 이야기, 『영의 상속』
이 땅에 사는 모든 여자들이 안전하고 다정한 사랑을 하길 바라요. 서로에게 충실한 꿀벌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요.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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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제갈화랑이 아끼는 조카 오영에게 기막힌 제안을 한다. “출간 기념 파티에 모인 다섯 명의 마음을 모두 훔치면, 너에게 이 저택을 줄게.” 자신의 삶에서 연애를 가장 먼저 가지치기해버린, 스물 아홉 모태 솔로 오영에게 평생 유일하게 짝사랑해온 대상이었던 저택의 주인이 되는 일은 너무나도 유혹적이다. 화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주한 다섯 명의 손님들 앞에서 오영은 난생 처음 타인의 마음을 손에 넣는 법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피어날 것 같았던 저택에서 협박문이 발견되고, 소설은 순식간에 로맨스에서 미스터리 장르로 탈바꿈한다. “사랑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작가의 말 중에서) 장르문학으로 여성 서사를 풀어낸 소설 『영의 상속』을 출간한 허진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다섯 명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저택을 가질 수 있다"라는 설정이 굉장히 독특하고 재밌습니다. 마치 오영이 된 것처럼, 5명의 캐릭터의 얼굴을 떠올려보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발상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 설정에 착안하게 된 계기나 영감을 준 사건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작 『악의 주장법』을 탈고한 뒤 조금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쓰고 싶어졌어요. 『악의 주장법』이 희망을 그린 소설이긴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지라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마침 밀리의 서재에서 청탁을 주시면서 저의 첫 장편소설이자 청소년 소설인 『독고솜에게 반하면』을 읽은 독자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름다운 저택과 저택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코지’ 하게 써 봐야지 하고 있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냥 ‘코지’ 하게 써지지 않더라고요. 갈수록 소프트한 고딕풍이 더해졌어요. 그러는 편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고요. 『독고솜에게 반하면』도 마녀와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편안하게만 그린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영의 상속』 역시 기존 독자님들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다섯 명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저택을 가질 수 있다"라는 설정은 저택에 모여든 인물들을 상상하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저택의 주인인 로맨스 미스터리 소설가 제갈 화랑과 화랑이 사랑했던 친구의 딸 오영이었지요. 이 둘의 관계가 선명해지면서 저택을 가지기 위해 로맨스로 뛰어드는 오영과 주변 인물들이 또렷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저택'은 단순히 글이 전개되는 무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글 곳곳에 저택의 아름다운 부분에 대한 묘사가 드러나는데요. 저택이라는 공간이 작품에서 상징하는 바와 이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작가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평소 공간에 관심이 많은데요. 어떤 공간은 특별한 오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짧은 시간 동안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동시에 작동하게 하려면 그만큼 특별한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갈 화랑의 저택은 그런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고요. 저택이 품고 있는 비밀은 앞의 질문에서 답한 ‘소프트한 고딕풍’이라는 표현에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저택의 비밀이 풀리면서 비로소 사랑의 은유가 드러나길 바랐어요.

 

주인공 오영은 '고양이와 책으로 이뤄진 작은 세계'를 지키던 인물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먼저 가지치기한 것은 연애"라고 할 만큼 직접 경험하는 사랑과 멀리 있던 존재였는데요. 주인공에게 이러한 설정을 더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오영은 주어진 상황 내에서 지키고 싶은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고양이와 책은 오영이 자신의 힘으로 가장 지켜내고 싶어 하는 두 가지고요. 어쩌면 이 순위가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금 순진해 보일 수 있겠죠. 그런 순진함이 오영의 매력으로 돋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방영한 <모태 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는데요. 여자 출연자분들을 보면서 자꾸만 오영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어영부영 모태 솔로가 되어 버린 게 아니라 저마다 지키고 싶은 게 있기에 연애를 미뤄 둔 분들처럼 보였거든요. 소설을 탈고한 지금에도 저는 그런 마음들이 여전히 퍽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영의 상속』은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결합한 장르인데요. 두 장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흥미로웠고 또 어떤 부분이 어려웠는지 여쭙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는 미스터리’를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하하…) 하지만 꼭 해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살인 사건이 나오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으실 거예요.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살인 사건 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요. 그런 점에선 로맨스가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미스터리의 텐션이 떨어질 때 로맨스의 텐션을 높이는 식으로 작업했거든요. 물론 미스터리와 로맨스의 밸런스를 맞추는 건 또 다른 도전 과제였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작가님께서 특히 공들여 구현하신 사랑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며,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사랑의 형태를 발견하길 바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영의 상속』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그린 사랑의 형태는 ‘자칫 시시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순정’입니다. 밀리의 서재 연재 당시 “오영의 짝은 누구일까요?”라는 설문을 한 적이 있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을 선택해 주셔서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지요. 어쩌면 독자님들이 오영의 최종 선택을 지루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모쪼록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오래도록 좋은 것들은 결국 다 조금은 시시한 것들’이라는 문장에 잠시 머물며 한 번쯤 미소를 지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전 사랑에는 분명 위험한 속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도 무한한 흥미를 느껴요. 언젠가는 처절하게 망한 사랑 이야기도 꼭 써 보고 싶습니다!

 

책의 후반부 "발칙해져라!"라는 강렬한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 대사를 넣게 된 이유와, 이 소설에서 '발칙함'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설 속에서 ‘발칙함’의 의미는 앞서 말한 ‘지루하고 시시한 것’의 반대편에 자리합니다. 사랑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모든 여자들이 마땅히 발칙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저는 이 장면을 쓰면서 이상하게 슬퍼졌어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연민이 느껴졌거든요. ‘발칙해져라!’라는 말이 일견 도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목소리로 전해지니 씁쓸하면서도 공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느끼실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영의 상속』은 사랑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여성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독자들이 이 책을 덮었을 때 어떤 감정을 품기 바라시는지 여쭙습니다.

어쩌다 연애가 이렇게 위험한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요즈음은 사랑을 다루는 글을 쓸 때 좀처럼, 이 부분을 모르는 척하기가 힘들어요.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반영하려고 애쓰죠. 아무리 설렘을 주기 위한 로맨스를 쓴다고 해도요. 이 땅에 사는 모든 여자들이 안전하고 다정한 사랑을 하길 바라요. 서로에게 충실한 꿀벌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요. 부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신다면 좋겠어요. 아무도 죽지 않음에, 기어코 사랑임에, 그리고 야릇한 해피 엔딩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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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상속

<허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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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