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혁명적인 『붉은 별』(Красная звезда)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Александр Богданов, 1873-1928)의 1908년도 작품인데, 지구의 혁명가 레오니드가 화성인에게 초대받아 화성의 혁명 역사에 대해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저자 보그다노프는 어떤 사회든 일정한 단계에 따라 발전을 이룩하게 되며 그 최고의 단계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라 상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화성인들은 지구인들보다 훨씬 더 높은 발전 단계를 완성했기 때문에 이미 공산주의를 실현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노동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보그다노프의 이러한 관점은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다.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로 대표되는 유럽 사회과학자들이 이러한 단계적 발전론을 주장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이러한 단계적 사회발전론을 이어받아 『공산당 선언』에서 사회발전의 필연적인 최고 단계는 공산혁명과 노동자 유토피아라 주장했다. 『붉은 별』은 보그다노프가 살았던 시대의 주도적인 사회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적 상상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단계’에 초점을 두는 이론의 문제는 유럽 백인들의 사회가 최고로 발전한 가장 우월한 사회라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론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유색인종 사회는 열등하여 마땅히 이루어야 할 발전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관점의 근거가 된다. 보그다노프는 이런 식민주의적 관점을 정반대 방향에서 활용하여 침략자가 아니라 침략당하는 입장에서 바라본다. 『붉은 별』에서 화성인들이 지구에 찾아온 이유는 사회 발전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화성에 에너지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구를 식민지화하여 에너지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화성인들 사이에서도 지구 식민지화에 반대하는 파와 찬성하는 파가 갈라진다. 주인공 레오니드는 이런 사실을 지구에 알리기 위해 화성 우주선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작품인 『엔지니어 멘니』(Инженер Мэнни, 1912)에서 보그다노프는 앞서 지구 식민지화에 반대했던 화성인 ‘멘니’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그리하여 지구인 통역을 거친 멘니의 진술을 통해 화성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룩했는지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화성의 급속한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룬 결정적 계기는 대규모 운하 공사이다. 그러나 유토피아 건설 과정은 매끄럽지만은 않다. 대규모 공사가 언제나 그렇듯 진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발생하며 멘니는 그 책임자로서 수난을 겪는다.
『붉은 별』과 『엔지니어 멘니』는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집필된 작품이지만 이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4년 소련의 공식 문화예술 사조로 공표되었는데, 문화예술은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문학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혁명적인 사회 분위기와 대규모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에서 ‘혁명적 과업’은 건설공사다. 실제로 혁명 직후에 레닌이 소련 전체에 전기 설비를 한다는 야심 찬 기획하에 발전소 등 기간시설 공사를 많이 진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21세기 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거대한 환경 파괴가 결국 화성을 자원이 부족하고 지속 불가능한 행성으로 만들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보그다노프 본인이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 안에는 여러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사회 발전 단계론의 문제, 식민주의와 약탈, 대규모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지속 불가능성의 문제까지, 『붉은 별』과 『엔지니어 멘니』는 발표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한국에서는 『붉은 별』과 『엔지니어 멘니』가 한 권으로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된 듯하여 아쉽다.
저자 보그다노프의 본명은 말리노프스키(Малиновский)이다. 그는 혁명가이고 공산주의 활동가이며 소설가였고, 의사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수혈을 통해 젊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스스로 자기 몸에 실험하다가 수혈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불로장생은 진시황 때부터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고 하지만, 보그다노프의 죽음을 그저 잘못된 회춘의 열망으로 치부하기 전에 그가 사망한 연도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1928년은 공산혁명 10주년이었다. 혁명 이후 러시아-소비에트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유토피아였다. 새롭게 건설된 이상 사회에 걸맞은 인간, 구시대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소비에트적 인간’을 어떻게 해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소비에트 사회 전체가 열띠게 집중하고 있었다.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낸다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인간성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란 무엇인가? 보그다노프는 그것이 ‘피’라고 믿었다. 자가 생체실험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물질은 호르몬이라는 이론이 대두된다. 역시 의사이자 작가였던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 Булгаков, 1891-1940)의 중편소설 『개의 심장』(Собачье сердце, 1925)이 바로 이런 이론과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위험하거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설도 많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주장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20세기 초는 동유럽에서 혁명의 시대였다. 이 시기 러시아 소비에트 SF는 거의 대부분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 유토피아/디스토피아 SF는 막연한 상상 속의 이상사회나 독재국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실제로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경험에서 온 자신감, 혁명이라는 이름의 피바다를 목격한 충격과 트라우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다양한 희망과 고뇌가 이 시기 작품들에 담겨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공산당 선언 (개정판)
출판사 | 책세상
개의 심장
출판사 | 열린책들

정보라
SF와 환상 문학을 쓰고 번역도 한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지은 책으로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등의 장편 소설과 『저주토끼』 『왕의 창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