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예프레모프(Иван Ефремов, 1908-1972)는 공산혁명 당시 열 살이었다. 예프레모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유복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혁명 직전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이 해체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예프레모프는 혁명군을 따라다니며 ‘붉은 군대의 아들’로 자랐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예프레모프는 혁명의 이상뿐 아니라 소련 정부와 공산당 노선 또한 신뢰하게 된다.
예프레모프는 레닌그라드 광산학 대학교에서 지질학을 전공하고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했다. 고생물학자로서 그는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반토사우루스’라는 공룡을 발견하고 화석의 생성과정을 연구하여 ‘화석 보존학’이라는 분야를 창시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소련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여러 차례 받았고 서구에서도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1941년에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자 예프레모프는 참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프레모프는 당시 모스크바 고생물학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귀중한 지질학 표본과 화석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고 카자흐스탄으로 대피해야 했다. 이곳에서 그는 심한 열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서 지루한 날들을 보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작품들을 예프레모프는 1944년에서 1945년에 걸쳐 잡지에 발표하여 크게 호평을 받았다. 『아엘리타』의 저자이자 소련 SF 문학계의 대가였던 알렉세이 톨스토이가 직접 예프레모프를 찾아와 계속 글을 쓰라고 격려했을 정도였다.
예프레모프의 초기 단편들은 러시아 전래의 영웅담을 현대적이고 소비에트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모험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1943년 단편 「산 귀신들의 호수」에서 주인공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호수의 비밀을 추적한다. 그는 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추리하고 목숨을 걸고 검증하여 결국 이 호수가 물이 아니라 수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결말에서 주인공은 “조국에 바치는 수천 톤의 금속 자원”을 얻게 되어 기뻐한다. 1944년 단편 「하얀 뿔」에서 소련 지질학자 우솔체프는 중앙아시아 고대 영웅이 산꼭대기에 칼을 꽂았다는 신화를 좇아 목숨을 걸고 험한 산을 오른다. 우솔체프는 위구르인에게서 들었던 현지 전설을 떠올리고 거센 바람을 싸워 이기려 하지 않고 등으로 맞으며 바람을 이용한다. 그리고 우솔체프는 마침내 정상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여 그곳에서 예상대로 귀한 광물자원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우솔체프는 전설 속의 고대 보검을 산꼭대기에서 실제로 발견하는 과학적, 문화적, 역사적 성취를 이룩한다.
이런 초기 단편의 주인공들은 예프레모프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과학자이며 탐험가이다. 이들은 현대적인 소비에트 러시아를 떠나 중앙아시아, 몽골, 시베리아 지역을 누비며 현지인들의 전설과 신화를 귀담아듣는다. 그리고 이러한 설화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광물자원을 얻거나 지질학적 비밀을 밝혀낸다. 이렇게 얻어낸 자원과 지식은 소련 전체의 현대화, 국가와 민중의 발전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 주인공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프레모프 초기 작품들에서 소련은 탐험해야 할 자원과 찾아내야 할 보물 같은 지식으로 가득한 유토피아이다. 그리고 과학자는 국가 발전의 최전선에서 현대의 신화를 이끄는 영웅호걸의 역할을 한다.
대표 장편 『안드로메다 성운』(Туманность Андромеды, 1957)에서 예프레모프는 이런 유토피아관(觀)을 더욱 발전시킨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공산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과학지식과 기술이 더욱 발전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예프레모프는 이 작품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따라 인류 발전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당연히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 전제했다. 『안드로메다 성운』의 다양한 주인공들은 국적이나 인종 구분이 없이 지구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세계에서 산다. 이들은 취업을 하거나 자기 집을 구하려 애쓸 필요 없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살며 직업이나 거주지를 바꾸고 싶을 때 어디로든 떠나고 어디서든 정착할 수 있는 삶을 누린다. 주인공들이 겪는 여러 위험과 모험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더 넓은 세계와 접촉한다는 순수한 목적을 위해 『안드로메다 성운』의 주인공들은 깊은 바다 밑바닥과 땅속은 물론 우주 저편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발표 당시 독자와 비평가 양쪽의 찬사를 받았으며 예프레모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소비에트 유토피아 작가”로 인정받았다.
예프레모프는 고생물학적, 지질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유토피아를 인류 진화의 최종 단계로 상정하였다. 예프레모프적 유토피아론의 핵심 개념은 ‘균형 있는 발전’이다. 예프레모프는 인류가 유토피아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기술적, 과학적인 측면과 함께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발전하고 정신이 그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면 이 불균형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생겨 인류가 결국은 이상사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프레모프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편리하고 풍요로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며 인간도, 주변 환경도 아름다운 사회라 묘사한다.
그리고 예프레모프는 인류가 지구에서 지금과 같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생물학적 조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믿었다. 두뇌가 발달하고, 두 발로 서서 걷고, 양손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신체 형태로 인해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으며, 그러므로 다른 행성에서도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 인류와 접촉할 정도의 문명을 발달시킨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 예프레모프는 상상했다. 중편 「뱀의 심장」(1958)이 이런 신념을 소설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뱀의 심장」에서 우주여행을 하던 주인공들은 뱀자리 한가운데에서 외계 우주선과 마주친다. 지구인들도, 외계인들도 모두 반가워하고, 서로가 안전하게 접촉할 방법을 과학적으로 궁리하여 성사시킨 뒤 각자 기뻐하며 떠난다.
불행히도 소련은 디스토피아였다. 예프레모프가 서유럽 과학자들과 교류하고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KGB는 그를 스파이라고 의심했다. 1972년 예프레모프 사망 직후 KGB가 그의 아파트를 수색하고 원고를 압수했다. 예프레모프는 사후에 출간 금지당하고 소련 문학사에서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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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omeda Nebula
출판사 |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정보라
SF와 환상 문학을 쓰고 번역도 한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지은 책으로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등의 장편 소설과 『저주토끼』 『왕의 창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