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책장
뮤지션 요조가 요즘 애정하는 『포옹』, '하다 보면 된다' 부적, 《우후雨後》, <해피엔드>,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나미비아의 사막>, 『밤의 신이 내려온다』.
글 : 요조
2025.05.19
작게
크게


『포옹』

필립 빌랭 저 / 이재룡 역 | 문학동네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를 읽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하 연인이 아니 에르노와의 연애에 관해 쓴 소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구하게 된 책이 필립 빌랭의 『포옹』이었다. 검색해 보니 대체로 혹평이었다. 여러모로 아니 에르노에게 쨉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좋았다. 33살 연상의 인기 많은 작가 애인을 둔 20대의 혈기왕성한 작가지망생 남성이 질투와 선망, 피해의식이 뒤엉킨 사랑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텐데, 그걸 어떻게든 포장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못나게 그려 내 주어서. 그리고 유명세에 기대고 싶은 건지 미련이 남은 건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쨉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면서 기어이 아니 에르노를 따라 하는 일을 감행해 주어서.




‘하다 보면 된다’ 부적


작업을 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무척 괴롭다(다들 그렇겠지만). 하루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잠시 유체이탈한 상태로 ‘하다 보면 된다, 수진아’라고 써서 모니터 밑에 붙여 놓았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하나둘 나에게 ‘하다 보면 된다, ㅇㅇ아’라고 적어 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다가 잠깐 그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사인회 때 거의 모두가 ‘하다 보면 된다, ㅇㅇ아’라고 적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또 행복한 수고로움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계속 부적을 써 주는 일이 이어져 최근에는 아예 스티커로도 제작하게 됐다. 서울로 이전해 새로이 오픈한 저의 책방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갑자기 존댓말). 그리고 효과 있음.




전진희 리사이틀 《우후(雨後)》 | 공연


얼마 전 보았던 음악가 전진희의 공연이 너무 좋았다. 음악가에게 사로잡혀 아무것도 안 보이는 황홀이 아니라 음악가 덕분에 모든 게 보이는 황홀을 체험했다. 일단 공간이 보였다. 공연장으로 사용된 서울대학교 안의 한 폐공장이 보였다. 높이 나 있는 창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보였다. 그 공간을 조심조심 가르며 조명이 움직이고, 연기가 채워졌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연출한 사람이 보였다. 무대 단차가 크지 않아 전진희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 보였다. 연주와 목소리가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가시성을 위해 음향을 연출한 사람도 보였다. 앵콜곡이 흐르던 순간, 나는 어둠 속에서 진희 씨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공장의 콘크리트 기둥과 푸른 나뭇가지들이 다 행복해하고 있다고. 이상하게 그게 다 보인다고 적었다.




<해피 엔드>,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나미비아의 사막> | 영화


미팅을 나가서 ‘쟤만 빼고 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꼭 그 애랑 짝이 된다는 DJ DOC식 머피의 법칙이 있다면, 나의 머피의 법칙은 늘 극장에서 이루어진다. 여유가 생겨 극장에 가려고 하면 보고 싶은 영화가 없고, 할 일이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면 보고 싶은 영화가 우르르 극장에 쏟아진다. 요즘 매일같이 이 세 영화를 한 번씩은 검색하고 있다.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꼭 보고 싶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
장자샹 저 / 김태성 역 | 민음사

(25.06.10. 출간 예정)


대만의 뮤지션이자 작가인 장자샹의 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원제: 『야관순장』)는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다. 대만 남부의 작은 시골에서 자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대만의 토착 신앙과 역사적 순간들이 엮여, 마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듯 현실과 꿈이 잘 구분되지 않는 환상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게다가 책을 발표하기 전에 발매한 동명의 앨범까지 있어서, 말 그대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나는 며칠간 음반을 들으며 소설을 읽었는데 오싹하면서도 후끈한, 그러면서도 시종 슬픔에 마음을 내어 주는 이상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저/<윤석헌> 역

출판사 | 레모출판사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안정효> 역

출판사 | 문학사상

Writer Avatar

요조

뮤지션, 작가. 2015년부터 책방무사를 운영하고 있다.

Writer Avatar

아니 에르노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Writer Avatar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현실과 환상, 역사와 설화, 객관과 주관이 황당할 정도로 뒤섞여 있지만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현실을 보다 날카롭고 깊이있게 드러내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대중적 인기, 상업적 성공을 함께 거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아라카타카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마르케스는 12남매 중 장남이었으며, 태어난 후 8년 간을 외조모부의 집에서 살았다. 1946년에 마르케스는 보고타 근처의 시파키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국립대학에서 잠깐 동안 법학을 공부했다. 그 후 1950~1965년까지 콜롬비아, 프랑스, 베네수엘라,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다. 보고타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유럽에 체재하였다. 그 후 멕시코에서 창작활동을 하였고, 쿠바혁명이 성공한 후, 쿠바로 가서 국영 통신사의 로마 · 파리 · 카라카스 · 아바나 · 뉴욕 특파원을 지내면서 작품을 썼다. 1955년, 카리브해에서 10일 간 표류한 콜롬비아인 선원의 고통스런 체험에 대해 기사를 쓰며 그가 콜롬비아 해군을 비판했기 때문에 신문사는 문을 닫게 되었고, 그는 파리에서의 외국 통신원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쿠바 혁명이 끝난 후 그는 쿠바 통신사인 '프렌사라티나'에 들어가 보고타,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일하는 한편, 광고 회사에도 다니고 영화 대본도 썼다. 마르케스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였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는 이런 일들도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시작한다. 당시 그가 좋아했던 작가들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와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이었다. 마르케스의 청년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카탈란의 현자'로 묘사되기도 했던 학자 라몬 비녜스였다. 이 문학적 스승이 주재하는 소모임에서 그는 현대적인 작가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존 스타인 벡, 테어도어 드라이저,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영미작가들이었다. 마르케스의 주제와 본질적 기교는 그의 성장 배경과 삶의 과정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마르케스는 기괴한 것을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주의와 결합시키는 자신의 서술 방식과 지역 신화 및 전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모두 외할머니 덕분으로 돌린다. 한편 외할아버지는 1890년대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내전에 참가했던 인물로서 외손자인 마르케스가 위대한 등장 인물을 창조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또한 그를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Cervantes)라고 일컫게 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20세기 전반기의 콜롬비아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마르케스는 금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에서 중남미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신화적인 수법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현대의 중남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혈육들의 모습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1981년에는 『신고된 사망자 연대기』가 라틴아메리카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1982년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 이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95년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의 불어판을 파리에서 출간하였다. 1999년 림프암 진단을 받았고, 2014년 4월 17일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중·단편소설 「낙엽 La hojarasca」(1955)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1961)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 Los funerales de la Mam Grande」(1962) 「암흑의 시대 La mala hora」(1962) 등과, 장편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 Cien a os de soledad』(1967) 『예고된 죽음 이야기 Cr nica de una muerte anunciada』(1981)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