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김그루, 또뚜야, 김다솜, 박신, 최석환,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저 | 한겨레출판
살고, 입고, 먹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세상을 이루는 것 중에서 노동이 닿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 어떤 삶도 남의 노동에 빚지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어떤 노동은 고귀하지만, 어떤 노동은 천대받는다. 2023년 5월, 부당한 노동 탄압과 혐오 정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함께 건설 노동자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공권력은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공갈과 협박으로 몰아세웠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양회동 열사의 죽음 2주기를 맞아 건설 노동자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조명한 책이다. 원청과 하청, 또 하청... 건설 산업의 착취 구조 속에서 하도급의 아래로 갈수록 노동자의 권리는 멀어지고 위험은 커진다. "세상을 짓는 그 수고로운 노동 없이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도 없으며, 배움의 공간인 학교도 없고, 도로를 달리며 살아갈 수 없다"(8쪽)는 말처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몰랐던, 사회가 등한시한 건설 노동자의 투쟁과 연대의 이야기.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사람답게 일하는 당연한 세상을 꿈꿔야 한다는 현실에 슬프면서도, 이 책을 깃발 삼아 모일 수많은 동지들을 생각하면 든든해진다. (이참슬 에디터)
최태규 저/이지양 사진 | 사계절
동네에서 밤산책을 하다 족제비를 마주치고 까무러치게 놀란 적이 있다. 집 앞에서 족제비를 보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놀라움이 가신 뒤, 낯선 동물이 도시를 활보하는 장면이 안겨주는 날카로운 배반감이 좋았다. 그러니 『도시의 동물들』을 보자마자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든 도시라는 거대한 인공물이 인간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목에서부터 못 박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족제비의 출현이 그랬듯, 『도시의 동물들』은 도시 인간의 얄팍한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근현대사를 치밀하게 훑으며 그 과정에서 너구리, 비둘기, 까치, 제비, 여우와 같은 동물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사살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구체적인 정책과 인간사의 풍경을 면밀하게 파헤치다가도 문득 주어의 자리에 동물이 등장하는 순간순간이 섬뜩하게 빛난다. 도심에서 러브버그가 창궐하는 장면을 러브버그의 관점에서 짜릿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박소미 에디터)
엘렌 식수 / 황은주 역 | 을유문화사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서 시작하건 엘렌 식수에서 시작하건, 둘 중 한 작가에게 푹 빠져 책을 한 권씩 읽어 나가다 보면 멀지 않은 때에 곧 나머지 한 작가도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면, 당신은 조만간 『리스펙토르의 시간』에도 손을 뻗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 말함으로써 멀어지고 싶지 않은 여자들, 사물을 비껴 나가는 말로 말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9쪽)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리스펙토르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었던 식수의 사랑이 검붉은 용암처럼 흘러 넘친다. 식수가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에서 논한 리스펙토르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책 역시 다음의 질문을 곱씹는 책이라는 점이 반가울 것이다. “그녀는 어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혀 깊숙한 곳, 숨결들이 합쳐지는 끓어오르는 중심에 이르렀을까?”(31쪽) (박소미 에디터)
설송아 저 | 봄알람
굳게 닫힌 문 뒤에 있는 북한이라는 미지의 세계. 그곳의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북한에도 페미니즘이 있을까? 『여자는 죽지 않았다』는 북한에서 태어나 독재와 가부장제로부터 살아남은 여성, 설송아가 전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고 '왕두살이'(드센 여자)라 불리며 장마당의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도 저자의 숨통을 조인 것은 경제난보다 가부장제였다고 한다. "여성들이 받들도록 교육받은 많은 것이 죽었으나 여성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는 저항하고 생존하였다." (11쪽) 갈 수 없기에 더 알고 싶은 북한, 그리고 각자의 앞에 놓인 문턱을 넘어가는 여성들. 언제나 궁금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참슬 에디터)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 오월의봄
기다렸던 책이다. 『작가노동 선언』 출간 소식을 듣고 지난 메일함을 뒤적였다. 작가노동 준비위원회의 뉴스레터를 구독한 것은 작년 봄이었다. “어문노동이 싼 값일 수 없는 까닭”, “나는 어떻게 작가를 그만두고 안정을 얻었는가”, “시인과 노동, 짜치지 않기 위한 전전긍긍“ 등등의 제목을 단 글들이 이삼일에 한 번씩 메일함으로 도착했다. 한 달간 총 열다섯 개의 글을 발행한 작가노조 위원회는, 24년 6월 26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에 행사장인 코엑스 앞에서 <작가노동자 선언: 글쓰기도 노동이다>라는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일 년 뒤, 다시 한번 봄의 한복판에서 『작가노동 선언』을 읽는다. 글쓰기는 노동이고 작가는 노동자라는 자명한 명제를 세상에 바로 세우기 위해 모인 이들의 목소리를, “굶어 죽는 작가, 혼자서 싸우다 조용히 사라지는 작가, 글 쓰는 노동을 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의 병을 크게 얻은 작가들의 곁에 서겠다는 선언”을, 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도 권한다. (박소미 에디터)
스타니스와프 렘 저/정보라 역 | 현대문학
비영어권 SF 작가 중 가장 많이 번역되어 읽히는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두 단편집을 하나로 묶은 책. SF 장르의 과학 기술적 상상을 넘어 문학과 철학 인류학까지 아우르는... 놀랍도록 놀랍고 대단히 대단한 설명보다도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실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 16편을 모은'(『절대 진공』), '가상의 이론을 소개하는 가상의 책 서문 5편(그리고 발췌문 1편)'(『상상된 위대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재하는 책을 실제 만나보지 못한 채 실재하는 무언가를 써야 하는 나의 처지와 정반대인 이야기가 아닌가! (아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이 책은 존재하지 않는 책을 비평하는 형태로 문학, 예술, 사회 문화, 종교, 기술 전반을 패러디하는 메타픽션이다. 이를테면 인류의 사상적 발전은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1급 천재를 찾는 원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매사추세츠주 이타카 출신 오디스에 관한 가상의 책 『이타카 출신 오디스』(『절대 진공』)에 관한 서평을 쓰는 식이다. 농담을 입고 무뎌진 칼끝이 향한 광범위한 주제의 이야기가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읽힐지 기대가 되는 책. SF 소설가이자 폴란드 문학을 공부한 정보라 작가가 번역을 맡았다. (이참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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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출판사 | 한겨레출판
도시의 동물들
출판사 | 사계절
리스펙토르의 시간
출판사 | 을유문화사
여자는 죽지 않았다
출판사 | 봄알람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출판사 | 현대문학
작가노동 선언
출판사 | 오월의봄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출판사 | 밤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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