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SNS에서 웹소설 작가가 되겠노라 열심히 창작하면서 노력하는 지망생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데뷔를 못 한 것에 대해 크나큰 분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였으나 출판사 측에서 해당 원고가 상업적이지 않다고 몇 차례 반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예술가의 창의력을 인정하지 않고 유행하는 코드만 좇는 현재의 출판 생태계는 불건전한 생태계라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이건 웹소설의 유행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오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입니다. 웹소설의 코드는 특정 시기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후 장기간 연재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출될 뿐, 생각보다 특정 코드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무척 짧고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유행이 길게 보이는 건 일종의 착시 현상이란 소리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청년 세대를 일컬어 ‘n포 세대’라 부르는 명명이 유행했습니다. 지독한 취업난 속에서 성공적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사랑, 연애, 결혼, 친구와의 관계, 취미생활 등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것들을 버려야 함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명칭이었죠.
이성과 감성, 사회적 성공과 관계의 대립 속에서 사랑이 내 앞길을 망친다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깊이 자리합니다. 웹소설에서 구현된 환상은 독자들의 이러한 비애감을 충족시키며 대리만족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이혼물’이라는 장르의 유행이었지요. 30~50대 남성들이 주축 독자인 M 플랫폼에서는 『이혼 후 코인 대박』,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 『이혼 후 각성하다』, 『이혼하고 인생역전』, 『이혼 첫 날에 와이프가 생겼다』, 『이혼하려다 역대급 재벌』, 『이혼 후 S급 여배우와 동거함』, 『이혼 후 돈벼락!』 등 주인공이 악처와 이혼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서사의 웹소설이 우후죽순 출간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두의 지망생분이 한 한탄처럼 웹소설은 거기서 거기인 뻔한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거기서 거기인 작품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최초 연재되었던 플랫폼으로 가서 작품들이 최초 연재된 날짜를 찾아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혼 후 코인 대박> : 2022.03.20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 : 2022.03.21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 : 2023.03.31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 2022.03.09
<이혼 후 각성하다> : 2022.02.10
<이혼하고 인생역전> : 2022.03.03
<이혼 첫 날에 와이프가 생겼다> : 2022.11.20
<이혼하려다 역대급 재벌> : 2022.04.20
<이혼 후 S급 여배우와 동거함> : 2024.06.25.
<이혼 후 돈벼락!> : 2022.04.02.
보이시나요?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은 2022년 2월부터 4월까지의 창작이 집중되어 있지요.
작가들이 대중의 욕망을 포착하고 그것으로부터 창작을 시작하는 시기를 A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럼 이 A의 순간은 특별한 천재 작가 한 명에게만 찾아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늘 소재에 굶주린 작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A의 욕망을 포착하고 이것을 소설로 창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먼저 창작된 소설의 제목이나 패턴을 상호참조하면서 증식하게 되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은 최소 200편 이상의 분량이 연재됩니다. 주 7회 연재라고 해도 200일, 주 5회 연재라면 약 280~300일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 동안 웹소설이 꾸준히 연재되다보니 비슷한 소재가 오랜 기간 동안 유행하는 것처럼 착시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웹소설의 유행이란 트랜드 보다는 패션에 더 가까운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극단적으로 빠른 속도의 텀으로 3~4개월마다 아이템이 전환되지요.
다시 처음의 아마추어 지망생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결국 출판사가 요구했던 것은 랭킹에 랭크되어 있는 소설의 소재를 가져다가 글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대중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연출되는지, 동시대의 다양한 소설을 교차해 읽음으로써 대중을 어떻게 만족시키는지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연출에 집중하란 조언이었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많은 지망생들은 웹소설이 무엇인지 공부하며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특정한 작품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 폭발적으로 나오는 작품들을 횡적으로 교차하면서 이리저리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대여] [세트] 이혼 후 코인 대박 (총10권/완결)
출판사 | ㈜인타임
이혼 전 무한 캐시백 당첨
출판사 | 문피아
[세트]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 (총11권/완결)
출판사 | 스토리위즈
[세트] 이혼 후 각성하다 (총10권/완결)
출판사 | 고렘팩토리
[세트] 이혼하고 인생역전 (총8권/완결)
출판사 | 제이플러스
[세트] 이혼 첫 날에 와이프가 생겼다 (총15권/완결)
출판사 | 문피아
[세트] 이혼 하려다 역대급 재벌 (총12권/완결)
출판사 | 문피아
이혼 후 돈벼락!
출판사 | 크로커스

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 연구,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연
2025.05.16
패드 = 한시적, 한정적인 유행. 일시적인 유행 = 붐
즉, 패션을 단기적인 유행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으셨다면
"웹소설의 유행은 패드(일시적, 붐)이다"가 더 적합하다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