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본래의 마음을 아는 법
우리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교의 다섯 가지 핵심 개념으로 마음을 추적하는 책,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글 : 변지영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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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한자경 저 | 김영사

 

타인의 마음은 물론이요, 내 마음도 알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마음이 관계와 일상을 좌우하고 삶을 만들어간다. 마음을 더 잘 아는 법은 없을까? 

 

지눌은 본래의 자기 마음을 깨닫는 가장 간단한 방법 하나를 제시하였습니다. 지눌이 본래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제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재차 묻자 지눌은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 그렇게 묻고 있는 그 마음이 바로 본래마음입니다.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135쪽)

 

“한자경의 일체유심조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그리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유식을 공부한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 교수가 다섯 번에 걸친 강연 내용을 다듬어 엮은 것으로, 불교의 가장 어려운 핵심내용을 가장 쉬운 말로 설명해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담긴 작품이다. 공, 연기, 무명, 일체유심조와 같이 자주 들어봤지만 오해하기 쉬운 개념들을,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이 책 하나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풀어놓은, 매우 친절하면서도 그 깊이가 만만치 않은 책이다.    

   

나 아닌 것을 통해 내가 되는 것

 

너와 나는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사람과 강아지는 다르다. 우리는 이렇게 무언가가 제각각 존재한다고 여긴다. 착한 사람은 좋은 특성을 갖고 있고 나쁜 사람은 못된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적 사유는 이원적이며 실체론적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한데 있을 수 없으니 둘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이원적 사유이며, 각각 자기 본질이나 고유의 특성을 갖고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실체론적 사유다. 불교의 존재론은 정확히 이것을 뒤집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체론이 이 세상 만물은 각각 독립적인 개별적 실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불교는 이 세상 어느 것도 각각 그 자체만으로 자기 자성을 갖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만물은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불교는, 존재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 그것 아닌 것에 의거해서 비로소 그것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일체는 다른 것을 인연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 다른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것, 연기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연기론입니다. 연기론은 실체론의 부정입니다. 

연기론에 따르면 인간이든 물질적 사물이든 모두 자신 안에 각각의 개별적 실체성, 자기 본질, 자기 자성, 자아, 아트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아이지요. 따라서 연기론은 곧 무아론입니다. 일체가 자기 본질이 없는 무아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자기 아닌 것을 통해 비로소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51쪽)

 

인연으로 일어나는 순환고리 

 

이원적 사유에 익숙한 우리들은 ‘누가 무엇을 했는가?’의 논리를 당연시한다. A가 B를 때렸으면 A는 가해자, B는 피해자가 된다. C가 D를 사랑한다고 하면 C는 주체고 D는 대상이다. 그런데 석가는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그것이 일어나는가?’를 물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가 강조하는 유업보 무작자有業報 無作者입니다. 업과 보 즉 행위와 결과는 있지만, 업을 짓는 자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는 업은 업을 짓는 자인 내가 따로 존재해서 그 가 짓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인연을 따라 일어난 것이라는 말이지요. (87-88쪽)

 

인연의 연기고리는, 존재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무명’으로 시작된다. 저자의 비유대로, 화가가 그림 속에 자기를 그려놓고는 자신을 그림 속 자아로 착각하는 것이다. 제7말나식의 작용으로 인해 ‘나’를 실체처럼 여겨 집착하면서 업을 짓고 그 업력으로 인해 생사윤회를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명은 어떻게 해서 있게 된 것일까? 무명은 태어나고 늙고 죽는, 윤회적 삶에서 비롯된다.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여 계속 순환하는 것이다. 이를 끊는 법이 수행이다. 이 책은 수행의 두 가지 길, 알아차림과 견성의 원리에 대해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상화해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든가 ‘이런 사소한 것에도 무너지는 걸 보면 역시 멘털이 약해.’와 같이 마치 밖에 있는 대상을 관찰하듯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는 마음과 보이는 마음으로, 주와 객으로 이원화된다. 그러면 마음 자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된 마음만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는 대상지로는 결코 본래마음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은 자기지(자기자각성)가 있으므로, 마음에 낀 먼지(번뇌)와 상관없이 마음 자신을 스스로 압니다. 그러니까 마음인 것이지요. 마음이 스스로를 아는 그 마음이 바로 본래마음, 번뇌 없는 마음, 마음 자체입니다. 그렇게 마음은 번뇌와는 다른 차원의 마음, 번뇌가 범접할 수 없는 마음이기에 본래무일물이라고 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마음을 가리는 번뇌와 무관하게 자기 마음 자체를 직접 자각하는 자기지의 마음, 무구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번뇌 없는 마음의 눈이 있어서 그 눈으로 자신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니까, 비로소 자기 마음에도 번뇌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번뇌를 알아차리는 그 마음 자체는 번뇌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207쪽)

 

인정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우리는 이따금 마음에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과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방을 위로하기 위해, 응원하기 위해 약간의 거짓말이나 아첨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돌아서서 뭔가 찜찜하다. 이처럼 가짜를 가짜로 아는 마음이 진짜의 마음, 곧 진심眞心이다. 가짜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가짜를 가짜라고 알면 그것이 이미 참된 마음이다. 진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상을 가상으로 알아보고, 가짜를 가짜라고 느끼는 것은 본래마음의 빛 덕분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두가 이미 깨달은 자, 마음을 이미 아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문제 삼고 있다면 그 문제 삼는 마음 그 자체를 본다. 문제가 있고 없음, 먼지가 있고 없음 너머의 바탕이 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깨닫는 견성은 마음속에 번뇌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고민이 없어야 수행이 잘 되는 것이 아니고, 괴로움이 없어야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실체로 바라보는 표층의식의 분별과 분열이 고요해진 바로 그 자리가 심층마음의 본래자리이며,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백지와 같은 텅 빈 마음,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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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한자경>

출판사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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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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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서양철학(칸트)을 공부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하였다.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아의 연구: 서양 근·현대 철학자들의 자아관 연구』, 『자아의 탐색』, 『유식무경: 유식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 『동서양의 인간 이해』, 『일심의 철학』, 『불교철학의 전개: 인도에서 한국까지』, 『불교의 무아론』, 『칸트 철학에의 초대』, 『나를 찾아가는 21字의 여정』, 『명상의 철학적 기초』, 『한국철학의 맥』, 『불교철학과 현대윤리의 만남』,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대승기신론 강해』, 『화두: 철학자의 간화선 수행 체험기』, 『선종영가집 강해』, 『심층 마음의 연구』,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공적영지』, 『성유식론 강해 I: 아뢰야식』, 『실체의 연구: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일체유심조』 등이 있고, 역서로는 피히테의 『인간의 사명』, 『전체 지식론의 기초』와 셸링의 『인간 자유의 본질』, 『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 『자연철학의 이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