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달 큐레이터 정한아, 박소란 시인으로부터 “절대성에 대한 의심, 전복에의 의지로부터 출발한 자기 관점을 확고히 지켜가며 마침내 세계의 균형감을 찾아가는 시”라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하게 된 시인 이새해의 첫 시집 『나도 기다리고 있어』. 안온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용기를 갱신해온 시인의 언어가 51편으로 담겼다. 약속한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작은 모험을 선사하는 시인의 시들을 곁에 두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이곳에 담았다.
그동안 써온 시들을 한 권의 시집 원고로 묶어 보았을 때, 어떤 방향성이나 주제 의식이 느껴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후 박소란 시인의 큐레이션을 통해 무엇을 시도했고 검토하셨는지, 또 무엇은 끝내 지키려고 하셨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원고를 묶기 전에는 어떤 방향도 갖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다만 제 시가 신체 감각과 구체적인 일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려 했어요. 일상성을 벗어난 시편들 속에서도요. 원고를 묶은 이후에는 제 시 속에 뭔가를 보려는 의지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시적 화자의 필터링을 최소화한 채,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하면서, 보이는 것들을 더 세세히 보려 했던 것 같아요. 화자 자신을 포함해서요. 큐레이션 과정에서는 박소란 시인님이 제가 간과했던 부분을 일깨워 주셨어요. 시집 한 권으로서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의 중요성을요. 그래서 배치에 신경을 썼고요. 주제의식이 담긴 시편들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어떤 주제’를 이 시집의 화자가 과도하게 대표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서로 피부로 맞닿아 발생하는 표현들, ‘본다’라는 측면에서 벌어지는 장면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한 발 물러 서 있는 화자의 위치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도된 부분이 있거나 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표현된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뭔가를 믿는 데 취약한 사람 같아요. 그 무엇도 온전히 믿기가 어려워요. 제 감정조차도요. 큰 기쁨이나 슬픔 속에서도 질문하게 돼요. 감정의 윤리성 같은 것을요. 늘 작동되는 의심이 일종의 거리감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더 과감하게 말하고 행동할 용기를 막아서기도 하고요. 시 속에서는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거든요. 긴 시를 쓴다거나, 일상적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거나, 감히 타자를 돌보려 한다거나요. 의심과 용기 사이에서 후자 쪽으로 발을 디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 안의 자기 의심을 깔끔하게 떨쳐내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운이 물러서는 듯한 화자의 위치를 만드는 것 아닐까요.
‘일상의 모험성’으로 이 시집을 읽어나갈 때, 화자는 자신의 반경 안에서 변화나 위기를 감지하는 데 있어 굉장히 능동적인 것 같아요. 또 적극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고요한 역동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번 시집이 지니는 에너지나 운동성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지적해 주신 것처럼 시집 속 화자는 변화에 민감해 보여요. 자신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라고요. 외부의 자극이나 접촉이 불러일으키는 균열을 위기로 인식하고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는 폐쇄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 화자에게 다가오는 타자들이 있어요. 화자의 반경을 흐트러뜨리고, 무심히 망치는 방식으로 어떤 변화를 촉구하는 존재들이요. 저는 제 시의 화자가 그들을 향해 몸을 열고 있기를 바라요. 버거울 수 있겠지만 상호 간의 접촉이 발생시킬 예측 불가능한 작용에 호기심을 느끼거든요. 화자가 눈에 띄게 바뀔 거라고 기대하진 않아요. 다만 변화의 여지는 늘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좁은 여지에서 비롯된 미량의 운동성을 '일상의 모험성'으로 보아주신다면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기거나 주거지에 대한 변화 등 시를 쓰는 동안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던 일상의 변화들도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시를 계속 쓰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있거나, 어떻게 시 쓰기를 유지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에 저는 결혼을 했고, 배우자와 함께 1년 정도 여행도 다녀왔어요. 이후에는 두 살 아이를 데리고 뉴욕에서 1년 가까이 체류하기도 했고요. 상상해본 적 없던 변화의 연속이었어요. 결혼, 여행, 육아로 이어지는 조건들이 쓰기를 멈추게 만들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시의 보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쓸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생활 감각은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거든요. 육아를 하면서 저에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비일상적인 장면들이 제 시 속에 들어오기도 했고요. 일요일 저녁마다 한 편 분량의 시를 쓰는 습관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4년 가까이 서로의 시를 지켜보며 응원해 주었던 '도모' 동료들에게서 받은 힘도 컸고요.
필리프 자코테 산문을 읽다가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것에서 이제 가장 덜 보이는 것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계시적이고, 가장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이새해 시인의 시들이 떠올랐어요. 잘 보이는 것을 간추리면서, 눈에 덜 띄는 것들로 향해가는 시들이라 여겨졌거든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네. 하지만 저는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만 그 믿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번번이 절망스러운 생활의 경험을 통해서만요. 관념적인 언어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제 삶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언급하신 문장처럼 저 역시 '가장 잘 보이는 것'에서 '가장 덜 보이는 것' 쪽으로 움직이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가장 계시적이고 진실한 것'을 목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것은 제도의 바깥으로, 기록된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 이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신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지키려는 이들에게 다가오고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들의 뒤에서, 제가 선 위치를 주시하면서 제가 봐야만 하는 것들을 계속 알아차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보려고 이곳을 빌렸다”(「땅에 사탕을 심으면」)라는 문장처럼, 시집 『나도 기다리고 있어』가 시편들을 경유해 마침내 보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독자 분들마다 다르게 정의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시뿐만 아니라 평소에 무엇을 보거나 발견하는지 궁금합니다.
희망이 씻겨나간 장소에 놓인 존재들의 희미하고 한시적인 연결. 저는 그런 것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요.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어떤 여자들〉의 세 번째 에피소드예요. 미국 몬태나주의 목장 노동자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톤)'가 자신에게 유일한 설렘이었던 변호사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만나러 밤새워 달려가던 새벽의 도로를, 기대와 달랐던 베스의 반응에 실망하고 다시 목장으로 돌아가는 길의 풍경을, 졸음을 못 이긴 제이미의 차가 도로를 이탈해 초원 위에서 멈춰버린 장면을 자주 떠올려요. 그 장면들이 저에겐 원형적 기억처럼 남아 있어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시를 통해 가닿고 싶었던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평소에는 가까운 이들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들의 물건과 옷가지 같은 것도요. 정리정돈할 타이밍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새해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대답과 함께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작년에 박소란 시인님의 ‘위트 앤 시니컬 낭독회’에 참석한 적이 있거든요. 아마도 계획을 묻는 질문이었을 텐데, 시인님이 '열심히 시를 쓰고 싶다'라고 대답하시는 거예요. 이상하게도 그 말이 종종 떠오르곤 했어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시를 써오신 분께 들은 말이어서 그랬나 봐요. 저도 시인님처럼 새로운 시를 열심히 쓰고 있을 저의 미래를 기다리게 되었어요. 두 번째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끝으로 제 시 쓰기의 울타리였던 ‘도모’ 동료들의 첫 시집도 제가 기다리는 것 중 하나입니다. 제 인터뷰를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인사를 전해요. 제 시집 속에서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를 희미하게라도 발견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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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다리고 있어
출판사 | 아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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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happyyeji
2025.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