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역사 동화로 세계사 만나기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사 동화 깊이 읽기.
글ㆍ사진 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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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던 세계사는 이름과 지명이 낯선 데다 외울 게 너무 많아 아찔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학처럼 빨리 포기했다. 십 대가 역사를 만나려면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사실 역사에 재미를 느끼려면 연륜도 필요하고 공부의 중요성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역사책 읽기를 권하기 전에 우회하는 법을 택하는 편이 더 낫다고 늘 생각한다. 이를테면 역사 동화 읽기부터 시작하는 거다. 역사 동화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야기성이 강해 읽기가 수월하다. 한 가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이 살짝 더해지면 좋다. 어린이의 호기심이 충만해진 김에 동화 속에 등장한 사건과 인물에 대해 함께 알아보는 거다. 말하자면 팩트 체크다.    

 

바르톨로메와 대항해시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저/박종대 역 | 사계절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국내에서 청소년용으로 소개되었지만 읽기 능력이 있는 고학년도 도전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동화니까. 주인공 바르톨로메에게 감정이입하는 순간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다. 불쌍한 바르톨로메가 어떻게 될지 가슴을 졸이며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역사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섞인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사실은 에스파냐(지금의 스페인)의 실제 인물인 펠리페 4세와 마르가리타 공주, 그리고 당대에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다. 이런 실존 인물 사이에 가상의 인물 바르톨로메를 등장시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열 살인 바르톨로메는 난쟁이다. 우연히 마르가리타 공주의 눈에 띄어 궁정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를 만나 화가의 꿈을 키워간다. 하지만 난쟁이 바르톨로메는 궁전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작가가 상상해낸 허구가 얼마나 그럴듯한지 작품을 읽고나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그림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열어 젖힌 대항해시대에 대해 읽어두면 좋다. 그래야 당시 펠리페 4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으니까. 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살피면 소설이 훨씬 더 재미있어진다. 동화를 읽고 나면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4권에 소개된 에스파냐의 황금시대 이야기를 함께 읽는다. 펠리페 2세 치하부터 펠리페 4세 무렵,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둔 유럽 최강의 국가로 군림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성냥팔이 소녀와 산업혁명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

엠마 캐롤 글/로렌 차일드 그림/노지양 역 | 다산어린이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냥을 켤 일조차 없는 요즘 어린이가 맨발로 차가운 거리에서 성냥을 파는 소녀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아니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쓰면 되지 성냥이 왜 필요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엠마 케롤은 ‘성냥팔이 소녀’를 새로운 관점에서 썼다. 제목 그대로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이다. 1800년대 중반 성냥공장에서 여자와 소녀들이 주로 일했는데 이들은 저 임금을 받으며 오랜 시간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독성 화학물질 백린으로 성냥개비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백린에 노출된 성냥공장 노동자들은 이와 턱이 아팠다고 한다. 끔찍한 노동자 착취가 이뤄졌다. 

 

1888년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에 있었던 ‘브라이언트 앤 메이’ 성냥공장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한 여성 노동자의 일을 계기로 총파업이 일어났다. 동화는 이 실화를 모티브로 성냥팔이 소녀가 외롭고 쓸쓸하고 죽어가는 안데르센의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주인공 브리디 스위니는 왜 자신과 엄마와 동생이 죽어라 일을 하는데도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성냥불을 피워 사장의 집에 가보고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와 동료들과 함께 파업한다.

 

동화를 읽고 나면 『곰브리치 세계사』 중 ‘인간과 기계’라는 챕터를 읽어보면 좋다. 미술사로 유명한 곰브리치는 통찰력 있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함께 설명한다. 기계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새롭게 생겨난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 더 싼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하고자 한다. 가혹한 노동 환경을 지켜본 사람 중에 “공장이나 기계처럼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갖게 하는 물건은 개인이 아닌 공동의 소유가 되어야 했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온다. “이러한 생각을 사회주의라 한다.”처럼 넓은 안목으로 세계사를 설명한다. 성인이 되고 보니 역사 공부에는 일정한 암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역사책 읽기는 한 가지 사건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깨닫는 일이라고 믿는다.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만나 공감하는 일은 역사동화 읽기라 하겠다.

 

 

수호 유령과 나치

 


『수호 유령이 내게로 왔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저/김경연 역 | 풀빛

 

스웨덴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있다. 1970년 등단해 198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2003년 스웨덴 예술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제1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았다. 작가는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문학의 주제로 삼아왔다. 어린이를 순진한 천사가 아닌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으로 존중했다. 그 때문에 고학년이나 청소년이 뇌스틀링거의 책을 읽으면 통쾌해진다. 어린이가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수호 유령이 내게로 왔어』는 겁많은 나스티에게 수호천사 대신 수호 유령이 생긴 이야기다. 수호 유령 로자 리들은 “절실하게 할 일이 있어” 이 곳에 남아있다. 알고보니 로자 리들은 나치가 오스트리아에서 정권을 잡았던 시절을 살았다. 당시 나치 돌격대가 유대인 피쉴 씨에게 수모를 준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로자 리들이 도와주러 가다가 전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 로자 리들은 유령이 되어 원래 자신이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

 

로자 리들의 분노는 히틀러의 등장과 독일인들의 침묵에 관해 먼저 이해하면 좋다. 『지붕 밑의 세계사』의 ‘다락’챕터에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와 나치 독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히틀러와 선전부장 괴벨스는 언론을 장악하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방송을 내보내며 1차 대전 이후 피폐해진 독일국민을 속였다. 안타깝게도 독일국민이 입 다물고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안네 프랑크를 포함한 유대인들의 희생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수호 유령 로자 리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기다릴 수는 없다. 세상 대부분의 불행은 사람들이 입 다물고 구경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뭔가 하기를 기다리는 데서 온다”라고 말한다. 이런 로자 리들을 만나고 나스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고전이 어려운 것은 배경으로 삼은 시대와 지금 어린이가 사는 시대의 간극 때문이기도 하다. 그 틈을 함께 읽기로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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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라헐 판 코에이> 저/<박종대> 역

출판사 | 사계절

마주 보는 세계사 교실 04

<조영헌> 글/<권재준>,<김수현> 그림

출판사 | 웅진주니어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

<엠마 캐롤> 글/<로렌 차일드> 그림/<노지양> 역

출판사 | 다산어린이

곰브리치 세계사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저/<클리퍼드 하퍼> 그림/<박민수> 역

출판사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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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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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차일드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모두 선생님이었고, 딸 셋 가운데 둘째로 자랐습니다. 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뒤, 지금은 어린이책을 쓰고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엮어 냅니다.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특유의 세련되고 장난기 넘치는 그림과 글로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림책 「찰리와 롤라」 시리즈의 첫 책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요런 고얀 놈의 생쥐』로 스마티즈북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그림책 『동생이 미운 걸 어떡해!』, 『사자가 좋아!』, 『나도 내 방이 있으면 좋겠어』, 『정글 탐험 떠나 볼래?』, 『진짜 안경 쓰고 싶단 말이야』,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동화 「클라리스 빈의 학교생활」 시리즈 들을 쓰고 그렸습니다. 현란한 색감과 다양한 질감과 패턴들의 활용은 그림책을 어린이만의 전유물이 아닌 어른들에게도 신선한 책으로 다가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재료의 제한을 뛰어넘어 잡지에서 오려낸 종이, 콜라주, 사진을 포함한 여러가지 재료들이 물감과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로렌의 책은 한번 읽고 던져지는 책이 아니라 계속해서 읽혀지는 책이 되었습니다. 말과 캐릭터가 살아있는 인물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배경, 기존의 재료의 한계를 벗어나는 도구들과 그것을 조화롭게 섞어내는 감각적인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