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여성이 여성에게 메아리로 전달하는 책
딕테를 읽는 여자들 ③ - 함께 읽을 수밖에 없는 책, 여성이 여성에게 서로 건네는 책. 시각 예술가 이수진의 『딕테』 읽기.
글 : 이수진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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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엄주


2025 여성의 날 특집 – 딕테를 읽는 여자들

딕테 모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입니다. 딕테를 읽으며 텍스트 너머로 연결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나아가 함께 읽는 여성들이 함께여서 도착할 수 있는 낯설고 먼 곳의 풍경도 담았습니다.  




그녀는 잔 다르크 이름을 세 번 부른다.”[1]


『딕테』에서 잔 다르크는 이 문장을 통해서 한 번,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가 잔 다르크로 분한 이미지를 통해서 한 번, 그리고 칼 드레이어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잔 다르크를 연기한 마리아 팔코네티의 클로즈업 샷을 통해서 한 번, 총 세 번 “불린다.” 잔 다르크의 이름은 다른 여성들에 의해 불리고, 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변주되며 여러 명의 서사는 겹쳐진다.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는 원본을 대신하면서 반복이 아닌 변주가 되어, 원본에서 다른 이미지로 전달되고 이어지고 변형되는 과정을 통해, 마치 같은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각자가 내는 소리가 결코 같을 수 없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대학원 시절, 시인이자 평론가인 프랜시스 리처드(Frances Richard)의 수업 “텍스트를 사용하는 작가들 (Artists Using Text)”에서 ‘테레사 학경 차’라는 생경한 이름의 작가가 쓴 『딕테』를 처음 만났다. 이전에 접했던 어느 텍스트와도 달랐던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텍스트의 구성도 내용도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차례대로가 아니라 여기저기 건너뛰며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 캡션이 없거나 출처를 찾을 수 없는 이미지나 불어로 쓰인 부분처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곳은 비워두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면서 성글게 읽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 후에도 나는 프랜시스 선생님에게 연락하여 『딕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궁금한 점이나 새롭게 해석한 부분이 생겨 이메일을 보내면, 선생님은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딕테』는 나를 프랜시스 선생님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과 연결해 주었다. 작가, 퍼포머, 혹은 음악가인 이들은 각기 다른 해석과 경험을 내게 나눠주었는데, 어떤 이는 『딕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고 하였고, 또 다른 이는 『딕테』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소설, 전기, 자서전, 서사시, 아티스트 북 등 『딕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만큼이나 이 책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차학경 프로젝트>라는 작품을 위해 나의 주변인과 차학경 지인 및 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딕테』를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 책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친구들을 통해 내가 읽지 못하는 불어 부분의 발음을 들었고, 차학경과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에서 관객들로부터 이미지의 출처를 알게 되거나, 시간이 지나 스스로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나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겹쳐내면서 이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현재진행형으로 읽어오고 있다.

 

『딕테』는 결국 다른 이들과 함께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내가 말하는 “함께 읽기”는 한자리에 모여 같이 낭독하거나 분석한다는 뜻보다는, 시간을 통해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나는 먼저 독자들이 『딕테』와 홀로 마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한다. 절대 매끄럽지 않을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이 『딕테』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선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차학경의 이중 언어, 다중 언어 사용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과 이 언어들과의 관계를, 거리를, 그 멀고 가까움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읽기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이끈다. 『딕테』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모두 알지는 못하는 대부분의 독자는 선택해야만 한다. 자신이 모르는 언어는 건너뛸 것인가? 번역을 진행할 것인가? 다른 이에게 읽어달라고 할 것인가? 소리 내어 읽으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읽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가는 그 즐거움을 꼭 경험하기를 바란다. 시인 유나 곽(Youna Kwak)은 『딕테』에 관해 말했다. ”이 텍스트는 너그럽다.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지 어디에선가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T]he work is generous → everyone can get in, somewhere; no one can get in everywhere).” [2] 이렇듯 『딕테』는 여러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포용적인 텍스트이다.

 

작년 ‘소리그림’에서 차학경 관련 강의를 준비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딕테』를 포함한 차학경의 작업에서는 하나의 소리가 비슷한 소리로, 단어나 구절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메아리(에코)”라는 개념을 통해서 『딕테』를 평면이 아닌 공간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하지만 원래 책은 결코 평면이 아니다!). 같은 소리의 반복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통해 소리가 울리고 겹쳐서 다른 소리로 변환하는 메아리는 『딕테』를 소리 내 읽을 때 더욱 잘 ‘들을’ 수 있다. 책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구절이 약간씩 달라지고, 부분적으로 생략되거나 잘려 나간 다른 버전의 텍스트가 등장하면서 비슷한 소리가 반복되는 동시에 의미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딕테』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소리를 책 밖의 공간과 시간으로 이끌어내어 울리고 함께 변주하는 것이다.

 

<차학경 프로젝트>의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 프랜시스 선생님은 자신이 벨 훅스의 수업에서 처음 『딕테』를 접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더욱 분명히 깨닫는다. 벨 훅스가 프랜시스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내게 건네주었듯이, 『딕테』는 여성이 여성에게 서로 건네는 책이며, 세대와 시간, 공간을 지나 메아리처럼 전달되는 책이다. 여성이 글을 쓰고 말하는 한 『딕테』는 계속해서 읽힐 것이다.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로 울리는 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읽고, 듣고, 쓰고, 말하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들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금, 다음과 같은 『딕테』의 한 구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 입에서 다른 입으로 전해져, 한 사람이 읽고 다른 사람이 받아 읽으면서 그 말들은 온전한 의미를 

실현하게 됩니다 (From one mouth to another, from one reading to the next the words are 

realized in their full meaning).[1]





[1] 『딕테』에 나오는 구절. 문학사상에서 2024년 출판한 김경년의 번역을, 영문은 UC버클리 프레스의 2001년 판본을 사용했다.

[2] 웬디스 서브웨이 출판사(Wendy’s Subway)가 2024년 발간한 앤솔로지 She Follows No Progression: A Theresa Hak Kyung Cha Reader 안에 포함된 유나 곽(Youna Kwak)의 글 Homonym Error에서 인용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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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6

여성의 날에 강간범 장제원에 대한 비난성명 하나 없는 여성단체의 공허한 울림... 선택적 정의, 선택적 차별, 선택적 투쟁. 단체명에 여성이란 이름 빼고 내란의 주동자들이라 타이틀 바꾸는게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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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

<차학경> 저/<김경년> 역

출판사 |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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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언어(텍스트)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지닌 시각 예술가.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 활동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