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첼리스트의 꿈과 성장 이야기
오래전부터 예술고등학교의 세계를 파고든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한 음대생을 인터뷰하면서 시작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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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열세 살 우리는』 『나는 복어』 등 어린이청소년 문학에서 진실하고 단단한 목소리를 쌓으며, 권정생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아 온 문경민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 작품은 꿈의 무게를 버티며 정직한 발걸음을 내딛는 열여덟 첼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문학이다. 신작 『브릿지』는 네 줄의 첼로 현을 굳건히 떠받치는 작은 나뭇조각 브릿지처럼, 버티며 휘어지더라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꿈’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경민 작가를 만나 작품 이야기와 집필 과정을 들어봤다. 



이번 작품의 제목 ‘브릿지’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첼로의 작은 부품인 브릿지에 주목하신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첼로 이야기를 쓰며, 공간 중 하나로 악기사 장면이 필요했어요. 관련 자료를 탐색하다가 휘어진 브릿지를 보게 됐습니다.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요. 브릿지가 이 이야기의 출발과 연결고리가 되리라는 것을요. 브릿지는 첼로의 부품 중 하나이지만 여러 의미를 품은 단어예요. 악곡에서 절정에 이르기 전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부분을 브릿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곳을 건너가거나 사이를 잇는 다리의 의미도 있지요. 소설을 쓰는 내내 ‘슬픔은 건너가는 것’이라는 문구를 마음에 품었는데요, 브릿지는 그 문구와도 어울리는 단어였습니다.

 

평소 첼로를 좋아하셨나요? 다루시는 악기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브릿지』를 집필하시면서 주로 들으신 첼로 연주곡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첼로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악기 다루는 데는 재주가 없고요. (웃음) 『브릿지』를 쓰면서 첼로 연주곡을 듣곤 했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한 음색이 좋았습니다. 소설을 쓸 때 인혜의 할머니 김숙희 씨가 좋아했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의 프렐류드를 듣곤 했어요. 반도네온 연주곡도 자주 들었고요. 한때 반도네온 소리에 빠져서 매일 듣던 시절이 있긴 했습니다. 등단 뒤로 반도네온을 소재로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브릿지』에서 인혜의 라이벌이자 친구로 나오는 연수의 악기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는데 반도네온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주 적절했습니다. 연수와 어울리는 악기였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예술고등학교 아이들을 주목하셨는데요, 예술고는 조금 신비한 느낌이 드는 곳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만나기도 힘들고요. 집필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오래전부터 예술고등학교의 세계를 파고든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절절한 감정이 흐르는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음악이 잘 풀어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경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인문계 고등학교 아이들은 교과 성적으로 경쟁하죠. 그 경쟁은 어찌 보면 명확해요. 점수가 나오니까요. 하지만 예술에서의 경쟁은 어떨까요? 다른 양상의 경쟁이 펼쳐질 것 같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다투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 다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비추리라 여겼습니다.

당연하게도 집필은 어려웠어요. 제가 모르는 세계이니 더더욱 허술하거나 어설퍼서는 안 됩니다. 쉬운 소설은 없죠. 쉽게 쓰인 소설이 좋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는 핍진성이 담보되어야 해요. 사건과 공간의 당사자가 의심과 실소 없이 이야기로 빨려들 수 있을 정도로요. 작가의 말에도 썼습니다만 이 소설은 한 음대생을 인터뷰하면서 시작했어요. 주변에 예술고에 자녀를 보낸 분이나 음악하는 분이 있으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말을 걸었고요. 낯선 소재여서 좋은 점도 있어요. 당사자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작가가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에게 익숙한 곳이라도 소설 속 공간에서 만나면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아마도 그 세계를 마주한 작가의 시선이 방문객의 시선과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작가의 방문이 길어 올린 익숙한 장면들이 당사자에게도 의미 있는 서사로 읽혔으면 합니다.

 

이야기 속 인혜의 할머니 김숙희라는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이지만 이야기에서 큰 역할과 울림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브릿지』는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쓴 소설입니다. 슬픔을 건너가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건 저의 마음이기도 했어요. 녹음된 인혜와 할머니의 대화에는 저와 제 어머니가 나눈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대로 쓰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쓴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했습니다. 『브릿지』의 작가의 말을 쓰기 전에 『훌훌』 작가의 말을 다시 보았는데요, 뭐랄까, 좀 슬프더라고요. 이번 작가의 말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슬픔을 건넌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작가의 말을 쓰고 싶었어요.

 

『브릿지』를 읽으며 꿈을 꾼다는 일, 꿈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열여덟 첼리스트 서인혜를 통해 작가님이 들려주고 싶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꿈을 찾아가는 모든 과정이 힘들고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죠. 그러나 어떤 꿈은 이루고 나면 통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소설가 등단이 그런 꿈이었어요. 절박하게 바라던 등단 소식을 들었는데 좋은 느낌보다는 아픔이 더 컸습니다. 일주일 정도 가슴이 아프기만 했어요. 마음에 맺힌 독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올라온 통증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꿈이 꿈꾸었던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또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면서, 또는 우연과 예기치 못한 만남에 의해, 꿈의 길이 새로이 설정되기도 합니다. 『브릿지』의 서인혜는 슬프고 뜨거운 시절을 보내면서 투지와 근성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첼로를 계속할 수도 있고, 지휘나 작곡으로 길을 바꿀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어요. 무엇을 하게 되건 지금 겪는 모든 것이 인혜의 투지와 근성을 일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브릿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문장은 어디인가요?

 고요가 흐르듯 허물어지며, 

인혜가 예감한 정확한 그 순간에.

첫 음이 시작되었다. 

이 문장을 좋아했습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들기도 합니다. 모든 소설이 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나는 복어』의 마지막 문장(나는 쇠도 깎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과 『지켜야 할 세계』의 마지막 문장(누나, 안녕.)은 쓰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이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되리라는 것을요. 『브릿지』의 마지막 문장도 확신에 가까운 느낌으로 찾아들었습니다. 

 

독자에게 『브릿지』가 어떤 이야기로 읽히기를, 어떤 이야기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깊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으면 합니다. 지금껏 그런 생각으로 어린이문학과 청소년문학을 써왔고, 『브릿지』는 충분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오래도록 자기 역할을 하는 소설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아, 마무리하기 전에 이 소설에는 한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자들이 엄정현 선생님의 슬픔과 좌절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연수의 마음과 주희와 함께한 할머니 김숙희 씨의 마음도요.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다음 청소년 소설의 주인공은 비장애 형제입니다. 연수 같은 아이들이지요. 이제, 『브릿지』 작가의 말에 적은 마지막 문장으로 인사를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릿지』가 괜찮으셨습니까? 다음 소설에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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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