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삶과 연결될 때 앎은 흥미롭다
오늘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어린이와 함께 읽기 좋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에 관한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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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계엄 선포에 놀란 어린이들이 “왜 그런 거야?”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많이 물었다. 어른들은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스럽게 시위는 흡사 축제와도 같았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이 과정을 어린이와 함께 접했다면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지켜낸 지난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 과학, 수학, 역사 등이 단박에 재미있을 리 없다. 다만 삶과 연결되면 달라진다. 현실의 경험과 책에서 배운 지식이 만나면 앎이 흥미로워진다. 그게 공부다. 예를 들어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은 어린이에게 피상적인 역사다. 하지만 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에서 군인과 시민이 대치한 장면을 뉴스로 보았다면 달라진다. 공감하면 궁금해지고, 알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오늘이 모여 역사가 되며, 올바른 역사 인식은 세상을 바꾼다. 

 


『한국인은 참지 않아』

신서현 글/엄주 그림 | 풀빛

 

일제 식민과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는 뒤늦게 민주화를 이뤘지만 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다. 『한국인은 참지 않아』는 근현대사 속 저항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역사 교사인 작가는 임진의병부터 가장 최근의 촛불집회까지 굵직한 투쟁을 골라 실었다. 어린이가 논픽션을 읽을 때 꼭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책 속의 한 두 챕터만 읽거나 관심 있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다. 예컨대 현대사와 밀접한 4·19혁명부터 촛불집회까지 읽으면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룬 4·19혁명 부분을 읽다 보면 1960년 이승만 정부의 상황인식이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포한다. 이때 희생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데도 이승만 정부는 공산당의 지시를 받은 폭도의 소행이라며 국민의 저항을 외면했다.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뭉그적대기까지 했다. 마침내 서울 거리에 초등학생을 포함한 10만 명의 시민들이 나와 시위를 하자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4·19혁명은 5.18 민주화 운동과 연결되고 다시 6.10 민주항쟁과 연결된다. 이렇게 역사는 맞물린다. 


 

『봄꿈』

고정순 글그림/권정생 글 | 길벗어린이


역사적으로 혁명이 성공한 후 혼란을 틈타 반동이 일어날 때가 있다. 4·19혁명이 성공하지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박정희가 권력을 장악한다. 박정희가 갑작스럽게 죽은 1979년에도 또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비상계엄이 선포된 엄혹한 시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이들이 있다. 광주 시민이다. 『봄꿈』은 광주 5.18 민주화 항쟁에서 아빠를 여윈 한 소년의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들려주는 그림책이다. 1980년이 일이지만 먼 과거는 아니다. 2024년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바로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게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광주의 힘으로 6월 항쟁까지 왔고 민주화를 이뤘다”라고 평가한다. 

 

『봄꿈』은 실제 인물인 조천호 어린이의 사연이 담겼다. 5.18 당시 다섯 살이었던 조천호 어린이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아빠의 영정사진을 품고 있었다. 이 모습을 외국 사진기자가 촬영한 것. 국내에 이 사진이 뒤늦게 알려지며 큰 파문이 일었다. 권정생 선생 역시 신문에서 뒤늦게 이 사진을 보고, “어른들이 바보 같아서 미안해”라며 조천호 어린이에게 편지를 썼다. 고정순 작가가 권정생 선생의 편지를 모티브로 아빠를 잃은 조천호 어린이의 마음을 그림책의 언어로 담았다. 폭력적인 역사가 어린이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앗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 오월의 딸기』

윤미경 글/김동성 그림 | 다림

 

역시 광주 5.18을 다룬 그림책이다. 『봄꿈』과 마찬가지로 은유적으로 접근한다. 요즘이야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지만 1980년 즈음 딸기는 5월이 제철이었다. 그림책 속 딸기를 좋아하는 소녀에게 1980년 5월은 참 이상했다. 평소라면 내다 팔려고 무르고 흠이 난 딸기만 주던 엄마가 그해는 달랐다. 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려도 아무도 딸기를 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딸기가 익어가는 모습 위로 광주에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시민들이 저항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딸기가 시들고 무르는 장면과 시민들이 죽고 잡혀가는 장면이 겹쳐지다. 소녀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올해 딸기는 참말로 이상하당께요 하나도 안 달아요.” 아버지가 이렇게 답한다. “울음소리가 들어서 근갑다.” 

 

『엄마 마중』 등을 통해 한국 그림책의 지평을 한 단계 높인 김동성 작가는 이 책에서도 글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세 장면을 통해 김동성 작가는 그해 광주는 그렇게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계엄 해제를 외치며 저항하던 시민들의 함성은 이어지고 이어져 2016년의 촛불로 연결된다. 역사는 교과서에 있지 않다. 우리 삶이 곧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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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참지 않아

<신서현> 글/<엄주> 그림

출판사 | 풀빛

봄꿈

<고정순> 글그림/<권정생> 편지

출판사 | 길벗어린이

그 오월의 딸기

<윤미경> 글/<김동성> 그림

출판사 |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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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