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아내는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삶과 죽음에 비극이란 명패를 붙여 특별 취급하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다룰 게 아니라 분명한 현실로 인지해야 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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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아이들, 개똥과 뒤엉켜 사는 남자, 홀로 죽어 겨우내 썩다가 봄에 발견된 노인, 쓰레기장보다 더러운 집…. 사고 현장에서 세상의 고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도하는 사람, 119 구급대원. 8년 차 소방관 백경 작가가 구급차를 타면서 마주한 삶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생에 관한 이야기를 첫 에세이 『당신이 더 귀하다』를 통해 꺼낸다. 사회의 아픔과 타인의 고통을 ‘특별한 비극’이 아닌 ‘세상의 일부’로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진솔하고도 뼈아프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고 나면, 그간 우리가 마주하기 두려워 외면해 온 세상의 아픈 얼굴들을 조금은 더 용기 내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 작가님의 추천사를 빌려, “죽음과 가난 그리고 사고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백경 작가님과 이 책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요.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백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소방관이고, 올해로 8년 차 구급대원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제 삶에는 두드러지는 서사가 없습니다. 공부 마치고 군대 다녀온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인데, 그냥 하는 일이 평범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의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들에 대해 끼적인다고 생각합니다. 소방서에 들어온 뒤로 죽음과 가난, 사고는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적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그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책 『당신이 더 귀하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어떻게 쓰게 되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책 소개를 해주세요.

부끄럽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구급차를 탄 뒤로 제 마음이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급차를 타며 마주하는 매일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제 글쓰기의 처음이었습니다. 그 매일은 언뜻 비참해 보이지만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비극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그런 인간의 삶을 위에서도 아래서도 아닌,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과 트위터(엑스)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계시죠. 덤덤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작가님의 시선이 인상적이에요. 한편으론 애써 덤덤하고자 노력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 담백한 시선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더 극대화시키는 것도 같은데요. 소방관으로서 모든 일에 100%의 감정을 쏟아낼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주변을 바라보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글에 담아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덤덤하려는 건 아닙니다.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덤덤함을 ‘갖추었다’라기보단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덤덤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혹 읽는 분들이 거기서 슬픔을 느낀다면 저의 상실에 알게 모르게 공감해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제 스스로는 덤덤함이 부끄럽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마주할 때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느끼려 합니다. 그렇게 해야 겨우 제 안의 인간다움이 무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도 같은 자세로 쓰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목도한 것들을 담다 보면 뼈아픈 이야기를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글을 쓰실 때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신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여러 고민들과 부침 속에서도 계속해서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성공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굳이 세상의 아픈 구석을 들추어 낸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벌써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길 멈추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의 아픔에 등돌려서는 안 된다는 저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가난한 삶과 죽음에 비극이란 명패를 붙여 특별 취급하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다룰 게 아니라 분명한 현실로 인지해야 합니다. 손 내밀어 보듬어야 할 상처가 바로 곁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세상은 좀 더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소방관들의 자살률이 순직률보다 높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겪는 (내·외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안고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마음의 상태는 모든 소방관이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픕니다. 그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미 생긴 흉터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요. 자살률이 순직률보다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이나 음주,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아픔이 해소될지 모르겠지만 상처로부터 잠시 시선을 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안고 살아가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참는 거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소방관들은 잘 참거든요. 

 

머릿속이 복잡하면 달리기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책 속에서도 삶을 달리기에 빗대어 “사는 건 그냥 달리기일 뿐이라고, 맨몸이든 잘 차려입었든 나아가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께 달리기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저에게 달리기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달리기 위한 달리기. 살을 뺀다든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특별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땀 흘려 한 발 한 발 내딛는 행위 그대로가 목적이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돈, 명예, 행복, 사랑 같은, 개개인을 이끄는 목표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도록 애써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실제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어떤 뚜렷한 목표 덕에 빛나는 게 아닙니다. 삶은 달리기처럼, 살아내는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안녕. 난 소방서에서 일하는 구급대원이야. 초면부터 반말지거리인 게 맘에 안 들면 뭐라 떠드나 지켜보는 심정으로 봐도 좋고, 상관없다면 그냥 편하게 내 얘길 들어줬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지만 세상이 살 만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야. 세상은 지옥이야. 특히 요즘은. 

우리끼리는 요새가 자살 시즌이라고 해. 왜냐하면 이제 정말 봄이거든. 내가 소방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사람들은 겨울엔 자살을 많이 안 하더라고. 왜 그럴까 고민해 봤지. 아마도 봄이 오면 날은 풀리는데 사람 마음의 온도는 차가운 그대로여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 그 괴리를 견디기 어려운 거야. 비슷하게 비가 오는 날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 사람은 따뜻할 때 더 많이 죽어.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래. (…… _195

 

‘오늘 자살하는 너에게’라는 편지 글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사람이 많아요. 이 글이 쓰여진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 글은 마음이 넘쳐서 글이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에서 깬 날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쯤이었을 거예요. 그날따라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다섯 시간 뒤면 출근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보게 되리란 강렬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새벽 공기에 온기가 스민 걸 느꼈거든요. 불쑥 봄이 찾아오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적었습니다. 유리병에 넣어 바다에 띄운다는 마음으로. 그 편지가 다만 한 사람의 삶이라도 죽음으로부터 건져냈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독자에게 이 책을 건넨다면 어떤 한 마디와 함께 건네고 싶으신가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읽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전할 방법이 없네요.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이렇게 말씀드리며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내 안에 사람의 뿌리를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배부르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못다한 말이 있다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전해주세요.

개인의 시점으로 쓴 책이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어요. 이 지면을 빌려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나의 소중한 소방관 동료 여러분, 늘 안전하시고 건강하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세상의 그림자 속에 숨어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나가길, 어둡고 서늘한 시절을 회복시키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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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이

2025.01.14

글이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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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2025.01.11

8년차 소방관 백경작가님의 나아감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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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joice

2025.01.11

"사실 우리의 삶은 어떤 뚜렷한 목표 덕에 빛나는 게 아닙니다. 삶은 달리기처럼, 살아내는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말에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네요. 우리 삶이 슬픈 것도 그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이겠죠. 그 마지막 숨을 붙들고 매달려 주는 분이 소방관이고 그 마지막 순간에 사람의 따스함을 전해 주는 분도 소방관이십니다. 부디 너무 소진되지 말고 채워지면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제 작은 마음 하나 보태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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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더 귀하다

<백경>

출판사 |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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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