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지 않은 길을 통한 비평
만약,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대체역사물이 웹소설에서 구현되는 방식.
글ㆍ사진 이융희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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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마이 라이프!』

파셔 저 | 제이플러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 하나가 모든 것들을 바꿔놓지요.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고 노래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작은 선택들이 수없이 교차하고 연속되어 만들어낸 결과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사회는 복잡하고 세계는 거대하며, 사건은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공동체와 함께 연대해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지난 한 달은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연대와 공동체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알아보기 좋은 웹소설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대체역사입니다.

 

대체역사라는 장르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궁』이라는 순정 만화 작품입니다. '대한민국이 만약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입헌군주제로 발전하였다면?'이라는 물음이 이 작품의 주요 세계관으로 작동하지요. 이렇듯 우리의 역사 발전에서 만약 A가 아니라 B, 그러니까 가지 않은 길로 우리의 삶이 바뀌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는 장르가 바로 대체역사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역사는 지금, 여기의 우리가 어떤 역사적 흐름에 의해서 발전해 왔는지 되짚어보고, 아주 작은 사건이나 흐름이 변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이만큼 거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장르였습니다. 또한,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삶 곁에서 진행 중인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해 보는 장르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웹소설의 대체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웹소설은 과거에 존재한 사건의 뒤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인간이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역사를 꾸려내는 장르를 이야기하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노벨문학상까지 탄 한강 작가님이 만약 조선 시대에 신사임당이 되어 한국 문학의 수준을 그때부터 끌어올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또는 백종원 대표님이 조선 초기 궁중 요리사가 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이런 방식으로 현대의 발전된 문물과 관점으로 과거의 삶을 계몽하고 시대 발전을 조금 더 앞당겨 부국강병해진 대한민국의 환상을 소비하는 것. 그것이 웹소설의 대체역사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웹소설의 대체역사는 어떤 기능을 할까요? 웹소설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역사적 순간의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서 적극적인 역사비평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작품이 파셔 작가님 『마이, 마이 라이프!』입니다.

 

울산군의 덕하란 작은 마을 출신 주인공 ‘성재’는 일제강점기 시기 태어나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36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19살 나이로 부산에 상경합니다. 부산진시장의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주인공은 제조 공장을 운영하며 돈을 벌며 살다가 IMF 직후 사업에 실패하고 초라한 일상을 보내다 죽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주인공은 자신이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1964년의 부산으로 회귀했음을 깨닫게 되지요.

 

돌아온 주인공이 바라본 근대 한국의 노동 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공장장은 도박 빚 오백사십육만 원에 깡패한테 붙들려 공장을 빼앗기기 직전입니다. 공장 안에서 잡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동생을 돌보는 17~18세의 어린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을 모조리 회복해야만 생산의 기반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나라의 상황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이 살길이라는 말을 외치며 대대적인 수출화 정책을 펼치지만,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하루하루가 살 떨리는 외줄타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자본을 마련하고 거래를 뚫기 위해 찾아간 ‘동명목재’도 그렇습니다. 박정희 정권 말기,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부산시장을 옹호하다 호화 분묘 사건 등과 엮이며 정권의 압박을 받던 중 신군부 정권에서 불량 기업 손보기라는 명목으로 정리되거든요.

 

성재는 이런 산재한 문제를 하나씩 처리해 나갑니다.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불량률을 줄이는 한편, 정부와의 관계를 다져가지요. 불안한 한국 정세를 벗어나 미국과의 판로를 확보합니다.

 

특히 이런 주인공의 행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가발 산업을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가장 큰 공신이었던 1차 산업, 그중에서도 가발 공장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많은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해 있었습니다. 미국의 반중 정책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확대된 시장이었으나 근로 환경도 최악이었고 불량률도 잦았지요. 이런 것들이 모두 개선될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이었지 않을까? 라는 상상력이 소설을 이끌어갑니다.

 

역사의 흐름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시선에 의해서 판단되는 법이지요. 대체역사는 그러한 ‘역사의 판단’을 대중적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소설이니만큼 단순히 디테일한 역사의 흐름과 도식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한국의 근현대사, 또는 조선 역사 등이 궁금하시다면 오늘은 대체역사 웹소설을 하나 잡고 쭉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근육조선』부터 『검은 머리 미군 대원수』 등, 아주 좋은 대체역사 소설들이 잔뜩 있는 웹소설 시장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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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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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 연구,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