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옆 마을에 생긴 일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글ㆍ사진 박진영(환경사회학 연구자)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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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 앞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장 비슷한 시설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폐기물로 만든 고형연료(SRF)를 소각해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이미 15년 전부터 운영되어 온 소각시설이 있다. 어느새 또 하나의 소각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2개의 소각시설과 함께 100가구 남짓의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선 최근 몇 년간 암으로 사망한 주민이 여럿이다. 공기 흐름이 정체된 날이면 소각시설 주변으로 연기가 자욱이 깔린다. 집 옥상에 올라가면 냄새가 심해 헛구역질이 절로 난다. 환기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창을 열 수가 없다. 잠에 들라치면 느껴지는 진동과 둔탁한 마찰 소리. 내 집이지만 마음 놓고 편히 잠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 모습은 지난 금요일 방영된 KBS <추적60분>1 ‘돈이 되는 산업폐기물 - 쓰레기는 정의를 모른다’ 편에 나온 경기도 연천군 대전1리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다. 매일 돌아가며 소각시설 주변을 감시하는 주민들은 말한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요, 저희 주민들은. 헌법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과연 모든 국민이 헌법 제35조가 명시한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전국 각지에 위치한 공장, 산업단지, 폐기물 처리시설, 소각장, 매립장과 그 주위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기반 산업과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개발된 산업단지, 산업 활동에서 발생한 산업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소각장이나 매립장은 대부분 도시 인접 지역이나 농촌에 몰려 있다. 지역 소멸과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산업단지나 폐기물 처리시설을 유치한다. 인구 증가와 세수 증대라는 구호 아래 이루어지는 개발을 보며, 비옥한 땅을 고르고 돌보며 평생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지하수와 농작물 오염을 걱정한다.


이런 주민들에게 쉽게 덧씌워지는 꼬리표는 지역이기주의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뿐이다. 그럴까. 몇 년 전, 전국 산업단지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때야 나는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지역의 실상을 제대로 알았다. 대전1리 마을 주민들의 호소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온산공단에서 발생한 공해병인 온산병 문제에서부터 포항, 울산, 광양, 여수 등 대규모 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환경오염으로 인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주요 업종에 따라 그 피해 양상도 다르다. 제철소 인근 마을의 집 옥상에선 자석을 가져다 대면 까만 쇳가루가 모인다. 바깥에 빨래를 널 때면 까매진 빨래를 걷어 다시 세탁해야 한다. 석유화학 단지 인근 마을 주민은 각종 휘발성유기화합물로 인한 악취에 시달린다. 하루는 새벽부터 밭일하던 주민이 극심한 악취에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일상적인 악취, 먼지와 분진, 소음으로 인한 문제도 심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대형 사고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내가 방문했던 석유화학단지 바로 옆 마을 경로당 캐비닛에는 노란색 방독면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캐비닛 문에는 방독면 착용 방법과 순서 사진이 붙어있다. 유해 물질 누출을 염려하는 주민들을 위해 큰 모니터도 설치되어 있다. 초미세먼지(PM2.5), 미세먼지(PM10), 오존,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의 실시간 농도가 번갈아 가며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하얀 뭉게구름이 그려진 파란 하늘 배경으로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으로 파란색 ‘좋음’ 표시가 있다. 아황산가스의 현재 수치는 0.003ppm으로 환경기준 0.15ppm에 훨씬 못 미친다. 대부분 낮에 경로당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소일거리를 하는 주민들은 한 번도 모니터에서 나쁨이라는 표시를 본 적이 없다. 캐릭터에게 다른 표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새벽에 밭에 나갈 때면 알 수 없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픈지 도통 모르겠다.



산업시설로 인한 환경오염과 건강 피해 문제를 제기할 때면, 사업장에서는 항상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환경부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어 오염물질 배출을 잘 관리하고 있으며 기준치 이하로 배출되고 있다. 따라서 대기, 토양, 수질 오염이나 주민들의 건강 피해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말한다. 해마다 기준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굴뚝자동측정기기(TMS) 설치를 의무화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기준치 이하로 잘 관리되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추적60분에 나온 계명대 환경공학과 김해동 교수는 말한다. “배출 허용 기준치라든가 이런 것들은 그걸 지키면 피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행정적 목표일 뿐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이 정도 수준까지는 가보자는 것이지 그 기준치를 지키면 피해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일상이 재난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산업단지는 점점 넓어지며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코앞까지 들어선다. 산업폐기물은 전국으로 이동하며 매립장과 소각장으로 퍼져 나간다. 매립이 끝난 폐기물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는 정도다. 미래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우리가 이들을 ‘지역 이기주의’라는 이름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코에서 까만 먼지가 묻어 나오지 않고 경로당에 방독면이 걸리지 않은 곳에서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지역과 농촌의 환경 재난을 해결하려는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제대로 관리된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1  [full] 돈이 되는 산업폐기물 - 쓰레기는 정의를 모른다, 추적60분 1370회, KBS 24062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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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환경사회학 연구자)

환경사회학 연구자.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같은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식 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과 보건의 교차점에서 과학기술, 사회운동, 정치를 주제로 연구한다. 저서로 『재난에 맞서는 과학』,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공저), 『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공저)이 있고, 《한편 13호 집》에 글을 실었다.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공해와 지역 환경재난을 사례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