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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재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박진영 칼럼 –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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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진행 중이거나 다가올지도 모를 재난 앞에서, 파국의 디스토피아로 자꾸만 뻗어 나가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투명하게 공개된 검증과 확인 과정이다. (2024.04.25)


재난의 시대,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박진영 연구자의 에세이.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지난 4월 19일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 5차 방류를 시작했다. 도쿄전력은 이미 작년 8월부터 4회에 걸쳐 약 3만 1,200톤의 오염수를 핵발전소 앞바다에 내보냈다. 올 4월부터 내년 3월까지인 2024 사업연도에는 총 7회에 걸쳐 5만 4,600톤의 오염수를 방류할 계획이라고 한다. 4월 24일 오전에는 발전소 내부에 정전이 발생해 방류가 몇 시간 동안 멈췄다가 재개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속보로 전해지는 정전, 고장, 가동 중지, 지진 등 후쿠시마 발전소와 주변에 생긴 일을 접할 때마다 잠시 걱정이 스친다. 그러나 그 걱정이 오래 가진 못한다. 내게는 핵발전소 내부의 작은 오류나 고장이 어떤 일로 이어질 지 그 과정을 상상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후쿠시마 발전소 기사에 함께 실리는 사진은 항상 비슷하다. 바닷가에 철탑, 크레인과 함께 서 있는 원자로, 그 너머로 아파트처럼 일렬로 빼곡하게 모여 있는 오염수 저장 탱크 시설. 겉으로도 복잡해 보이는 이곳의 속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할 것이다. 정전이 나면 어디가 어떻게 멈추었는지, 피해 상황은 어떤지, 지진으로 인해 흔들릴 때 상황은 어땠는지 전해지지 않기에 볼 수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재난을 둘러싼 나의 상상은 모 아니면 도다. 우선 나는 지금까지 읽은 글과 도식,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과 사진을 통해 가상의 핵발전소를 상상한다. 그곳의 복잡한 파이프와 버튼과 스위치와 수조와 탱크가 있는 공간을 생각한다. 정전이 나면, 돌아가던 부품이나 장비 몇 개가 멈출까?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각 단계의 방호문이 닫힐까?

이 차분한 ‘재난 대처 매뉴얼’ 상상의 극단에는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체르노빌〉과 같은 극적 파국이 있다. 거대한 폭발과 삽시간에 번지는 화재,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 비명, 공포에 질린 눈동자, 그리고 남은 폐허. 거대하고도 고요한 발전소와 불바다와 연기에 뒤덮인 발전소. 핵발전소 내부를 직접 접해보지 못한 나의 상상은 두 극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위의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염수가 방류되고 있는 실시간 영상을 보아도, 낮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몇십 톤의 오염 제거 처리를 시도한 물이 더해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오염수 방류의 결과는 일각의 주장처럼 어떤 특이한 일도 없는 상태일까. 아니면 다른 주장처럼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접해 온 돌연변이가 살아가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일까.

핵발전소와 핵 재난에 관한 나의 빈곤한(또는 극단적인) 상상을 돌아보며, 후쿠시마 오염수 논쟁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분법을 떠올린다. 안전과 위험, 객관과 괴담, 과학과 정치. 처리된 오염수의 방사능 농도가 일본 정부가 정한 측정 기준 이하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쪽과 측정 데이터와 기준을 다시 확인해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쪽의 논쟁이 앞서 얘기한 극단적 상상의 범주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 중간이 없는 논쟁 속에서 우리는 파국을 상상하며 오염수 방류 중단을 요구하거나 안전한 상태를 믿으며 아무 일이 없길 바라야만 할까.

핵발전소처럼 각 단계의 과정을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을 때, 그래서 내 상상의 한계를 느낄 때 나는 기본으로 돌아와 과정의 중요성을 상기한다.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먼 미래의 일을 어떻게 가늠할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극도로 제한된 정보 속에서는 각각 안전과 파국의 극단적 이미지만 강화될 뿐이다. 객관과 중립을 앞세우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국제원자력기구), 한국 정부가 매일 발표하는 측정, 분석 결과는 ‘과학적인’ 수치보다도 ‘기준치 이하’, ‘적합’, ‘안전’과 같은 설명으로만 전달된다. 그 결과는 한 번도 이상을 나타내거나 기준치를 초과한 적이 없다. 이번 5차 방류 현장에 있던 IAEA 전문가들의 샘플 채취 분석 결과, 삼중수소 농도가 기준치인 1,500베크렐에 “훨씬 못 미쳤다”고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 기준치에 훨씬 못 미친 수치는 바로 안전으로 환원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안전하다’, ‘아니다’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과 구체적인 수치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삼중수소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측정과 분석이라면,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물질을 보려는 행위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시료 채취와 측정 과정, 장비와 시설을 오고 가는 연구진과 위원들의 모습, 그 결과 나온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이분법적인 논쟁을 넘어 핵 재난으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단계별 방법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IAEA 연구소는 앞으로 한국, 중국, 스위스, 미국 연구소와 함께 5차 방류 오염수를 분석하고 교차 평가하는 데이터 확증 작업을 거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평가 결과 또한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안전하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진행 중이거나 다가올지도 모를 재난 앞에서, 파국의 디스토피아로 자꾸만 뻗어 나가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투명하게 공개된 검증과 확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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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진영(환경사회학 연구자)

환경사회학 연구자.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같은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식 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과 보건의 교차점에서 과학기술, 사회운동, 정치를 주제로 연구한다. 저서로 『재난에 맞서는 과학』,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공저), 『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공저)이 있고, 《한편 13호 집》에 글을 실었다.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공해와 지역 환경재난을 사례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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