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의 칼럼에서는 음악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전해집니다. 섬세한 언어로 풀어나간 그의 글에 많은 음악 팬들이 감동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윤하와 미묘, 박준우, 세 명의 대중음악평론가가 지금의 케이팝을 깊이 있게 조명한 책 『케이팝 씬의 순간들』을 출간했습니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는” 김윤하 평론가를 만나 케이팝의 현주소와 음악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욕망이 교차하는 곳이 케이팝 씬이고 그 욕망 안에는 성공 신화나 시장 개혁 같은 것도 있지만 순수한 차원에서의 꿈과 희망도 공존한다. 그만큼 케이팝은 절대 단순하지 않고, 모든 그룹이 다 같은 것도 아니며 케이팝에도 세상이 주목했으면 하는 작품과 그룹이 존재한다. (『케이팝 씬의 순간들』 중)
케이팝의 무한한 성장기
미묘, 박준우 평론가와 함께 현재의 케이팝 씬을 돌아보는 책 『케이팝 씬의 순간들』을 출간하셨어요. 세 분 모두 다양한 매체에서 케이팝 평론을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데,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셋 다 언제나 지금의 케이팝을 충분히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마름이 있었어요.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 안에서도 물량, 수익, 아젠다 모든 면의 중심에 있는 산업인데 이걸 피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대다수인 게 늘 아쉬웠거든요. 보통 해외에서 상을 받거나 차트에 오를 때, 분쟁이 있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때처럼 특정 이슈가 있을 때 저희를 찾죠. 저희 정말 별의별 오타쿠 같은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웃음)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시기를 전후해 케이팝 씬에서 소비층, 산업의 지형도, 지향점 등 큰 변화가 많았어요. 그런 역동성의 맥락을 저희만의 시선으로 한 번쯤 짚어보고 싶었어요. 각자 길고 짧은 칼럼으로도 몇 번 다뤄본 주제가 많지만, 단행본으로 접근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이더라고요.
요즘은 어딜 가나 케이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케이팝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더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고, 종잡을 수 없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한 칼럼에서 “케이팝은 근본이 없는 게 근본인 장르”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어요. 포켓몬으로 치면 메타몽 같은 장르랄까요. 어떤 형태로도 변신할 수 있고, 덕분에 모든 걸 다 포용하면서 그 자체로 정체성이 되어버린 거죠. 요즘은 케이팝을 세대로 나눠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음악만 봐도 세대별로 유행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룹 구성 방식이나 연습생 시스템 같은 몇 가지 기본 요소를 제외하면 이걸 다 한 씬으로 묶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엇이든 가능한 분야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런 무정형성/확장성 덕분에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90년대 1세대 케이팝만 해도 타겟층은 오로지 10대 청소년이었거든요. 케이팝이란 말도 없고, 아이돌이라고 불렀죠. 과거의 저에게 30년 뒤에 그 아이돌 음악이 세계에서 사랑받는 문화가 될 거라고 하면 아마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대중문화 전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어요. 소위 말하는 힙스터가 좋아하는 음악 못지않게 비주얼도 중요해서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장르가 되기도 했죠. 아이돌 외길 인생을 걸어온 분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해외 팝만 듣던 사람이 좋아하는 케이팝, 힙스터가 좋아하는 케이팝도 있어요. 대단하죠.
책에서는 “지금의 케이팝은 여러 형태로 가장 즐기기 좋은 상황이고, 어쩌면 여기서 더 성장할 수도 있다”(7쪽)라고 했어요. 케이팝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요?
아직은 상상일 뿐이지만 언젠가 케이팝이라는 장르가 한국 대중문화 씬의 각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케이팝 그룹 활동은 대부분 우리가 흔히 ‘케이팝’ 하면 떠올리는 댄스 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개인 솔로 활동으로 가면 모던 록, 얼터너티브 팝, 힙합 같은 다양한 장르 음악을 다루거든요. 케이팝 출신이 아니더라도 작곡, 사진, 디자인,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케이팝과 협업을 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고요. 케이팝이 흘러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지금 대중문화 전반에서 제일 잘하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어요. 그런 창작자들이 모인 커다란 연구소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 그렇게 몸집이 커진 케이팝이 모든 걸 빨아들이다 보니 대중음악계의 모든 이슈나 투자가 케이팝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어요. 케이팝에 영합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거죠. 새로운 창작자를 계속 발굴하고 이후 행보를 꾸준히 지지하는 것도 케이팝이 한국 대중음악 씬 전반과 함께 성장하는 주요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더불어 국내에서는 아직도 케이팝을 아이돌 팝에 한정해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이미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아울러 케이팝이라고 말하는 추세예요.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 같은 밴드나 아이유 같은 싱어송라이터도 해외에서는 케이팝, 케이뮤직(K-Music)이라고 부르거든요. 향후 몇 년 안에는 그 방향으로 뚜렷이 자리를 잡지 않을까 싶어요.
케이팝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데, 그만큼 이 현상을 제대로 보고 기록하는 역할도 중요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이 책을 쓰기도 했어요. 모든 것이 급속도로 세계화되다 보니 오히려 국내에서 면밀하게 씬을 지켜본 사람보다도 외신에서 인정하고 다루는 걸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가까운 곳에서 케이팝을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해외에서 바라보는 케이팝이 아닌,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대중음악을 쭉 듣고 지켜본 사람들이 쓴 케이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더불어 케이팝의 글로벌한 성공과 성장은 ‘비-케이팝’인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거든요. 이제는 인디 음악가 중에서도 시작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아이돌 기획사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거의 모든 창작자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같이 호흡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아졌고, 태도가 적극적인 건 물론 계획도 구체적으로 바뀌었거든요. 무척 긍정적인 변화죠. 덕분에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시기에 활동하고 있는 걸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 주제마다 사이사이 음악 리뷰가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추천한 곡들을 찾아 들어보면서 맥락을 이해하는 재미도 있고요.
흔히 미디어에서 케이팝을 다룰 때 산업, 세대, 비즈니스 등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죠. 저희 세 필자는 그 가운데에서도 “케이팝은 음악이다”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리뷰 콘텐츠는 인기가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웃음) 각 주제를 대표하는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앨범 리스트만으로도 이 챕터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독자 분들께 전달되면 좋겠어요.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거 다 합니다”
대중음악평론가의 일상은 어떤가요?
이 일을 시작한 후부터 일상이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매일 마감을 하고, TV나 라디오, 유튜브 방송 제작을 하러 가고, 가끔 음악 쇼케이스나 음감회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해요. 일하는 방식은 프리랜서지만 주간, 월간으로 정기적인 일이 정해져 있는 편이라 별로 프리하진 않아요. 4대 보험에만 프리합니다. (웃음) 무엇보다 트렌드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요.
SNS에 적어둔 소개 문구가 정말 재미있어요.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거 다 합니다.” 어떻게 평론가 일을 시작했나요?
돈을 받고 음악에 관한 글을 처음 쓴 건 대학생이었던 2000년대 초부터고, 취업을 하지 않고 프리랜서로서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잠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2012년쯤이에요. 미국 가기 전에 지금은 없어진 DMB 방송 채널 몇 군데에서 음악 방송 연출과 진행 일을 했는데, 매체 전환기를 맞아 채널이 싹 없어졌어요. 마지막 방송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우연히 유학원 간판을 발견한 게 문제였어요. 이건 나를 어딘가로 이끄는 빛이다 싶더라고요. (웃음) 영어를 잘하면 일의 확장성도 더 넓어질 것 같기도 했고… 사실 충동적인 게 컸던 것 같아요. 제가 MBTI ‘P’거든요. (웃음) 항상 이런 식으로 인생이 흘러온 것 같아요.
그래도 적어도 눈앞에 놓인 하루에는 최선을 다해 사는 편이에요.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그렇게 잘 보낸 하루가 쌓여서 괜찮은 미래가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인 인생 속에 절대 바뀌지 않는 단 하나가 음악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꿈도 야망도 없었지만 음악은 항상 좋아했거든요. 부모님께 가장 먼저 사달라고 조른 것도 포터블 카세트 오디오였거든요. 좋아하는 걸 따라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이 됐어요.
흔들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향해 가는 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면 한 달 수입이 매우 적을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거든요. 그런 불안정한 현실을 대하는데 있어서 좋은 내구성과 긍정적인 사고를 타고난 것 같아요. 불안보다는 내 눈앞에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다음엔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음악을 계속 쫓고자 하는 마음이 굉장히 뚜렷했고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분들도 많고, 덕분에 감사하게도 운 좋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은 결국 자기만족이잖아요. 안정적인 하루하루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복되는 일상에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죠. 정답이 없어요. 우선 저는 삶의 만족도가 꽤 높아요. 목표 지향적이고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좋아하는 걸 따라가라는 게 허황되거나 몽상가의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기 살아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웃음)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이라면 희망을 갖고 좋아하는 걸 향해 열심히 가보세요. 우리 인생 어차피 한 번 밖에 못살잖아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을 찾아 살아가는 건 정말 중요한 일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건 조금 다른 감각일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싫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시더라고요. 아니에요. 정말 좋습니다! (웃음) 평생 좋아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과 여가를 모두 즐길 수 있는데 안 좋을 수가 있나요? 물론 어려울 때도 있어요. 말과 글로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심장이 막 두근거릴 정도로 좋은, ‘좋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할 이 감정을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게 풀어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더라고요. 또 애정을 가진 업계의 어둠이 드러날 때, 그걸 단호하게 비판해야 할 때도 힘들죠. 하지만 사실 이런 건 굉장히 작은 부분이에요. 좋아하는 것과 인생을 통틀어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니잖아요.
<채널예스>에서도 케이팝 칼럼 연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이전에 3년 반가량 연재한 ‘전설이 될 거야’ 시리즈는 아직도 SNS에서 종종 회자되는데요. 아티스트나 콘텐츠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케이팝 씬에서 가장 멋지고 역동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설이 될 거야’를 연재했어요. 케이팝 역사에서 어떤 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 케이팝을 만드는 사람이나 즐기는 사람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작은 화살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함이 제 좋아하는 마음의 뿌리거든요. 바른 눈과 깨끗한 마음으로 뛰어난 것들을 찾아 설득력 있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평론가로 일한 지 20년이 넘어가는데, 예전에는 뾰족한 글도 많이 썼거든요. 소위 칼럼니스트, 비평가라고 하면 날카롭게 다그치는듯한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일을 하고, 저 자신을 알게 되면서 그런 발화와 방향이 저와 썩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더라고요.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결국 그걸 만든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결과가 괴로웠어요. 특히 케이팝은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제가 소개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전과 다른 각도의 시선이 생기도록 말과 글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음악과 함께하는 삶의 풍경은
연말 광장에서도 케이팝의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보셨을지도 궁금해요.
케이팝은 예전부터 주류 사회에서 떨어진 성소수자나 여성이 중심이 된 집회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어요. 매해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와 이화여대 시위에서 불린 ‘다시 만난 세계’가 대표적이죠. 최근 광장에서 케이팝의 존재감이 더 뚜렷해진 건, 그렇게 쌓아 올린 집회 현장과 케이팝 사이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케이팝 친화적인 삶을 살아온 젊은 여성 세대가 주요 참여층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한국을 사는 젊은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 사건’, ‘딥페이크 사건’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경험을 10여 년간 몸으로 체득한 세대예요. 그렇게까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혹자는 케이팝과 응원봉이 중심이 된 집회를 보고 너무 가볍다는 눈흘김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 추운 날 따뜻한 집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덕질이나 하고 싶지 누가 굳이 거리에 나가고 싶겠어요? 광장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척 뚜렷한 정치적 발언이자 적극적인 사회 참여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케이팝과 팬덤에 대한 고착화된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소중한 내 가수를 지키기 위한 응원봉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응원봉 이전에는 풍선이 있었죠. 사실 과거에는 대상을 사랑하다 못해 누군가를 배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거든요.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번에 집회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형형색색의 빛이 선을 긋기보다는 하나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상징이라는 걸 마음 깊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이 처한 국가적 상황뿐만이 아닌, 앞으로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긍정적인 의식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다사다난한 2024년이 끝났습니다. 지난 한 해 기억에 남는 케이팝 아티스트가 있나요?
언제나처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케이팝이라는 키워드를 대안적으로 풀어가는 가수들에 주목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RM(알엠)과 이브(Yves)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RM의 정규 2집 <Right Place, Wrong Person>은 바밍타이거의 산얀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뛰어나고 젊은 한국 음악가는 물론, DOMi & JD BECK, Moses Sumney, 선셋 롤러코스터처럼 개성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다국적 아티스트가 정말 많이 참여했죠. 얼터너티브 케이팝, 케이팝의 다음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종합 선물 세트나 다름없는 앨범이었요. 케이팝, 방탄소년단, RM이라는 이름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팀 RM’이라는 크루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부분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심지어 무척 뚜렷한 취향 모음이었고요. 목넘김이 쉬운 음악들은 아니지만, 앨범을 전체적으로 듣다 보면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제대로 갖고 놀 줄 아는 친구를 새로 만난 것 같았어요. 정말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앞으로 조금 더 케이팝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이었어요.
이브는 원래 그룹 이달의소녀의 멤버였지만, 올해 프로듀서 밀릭(Millic)이 이끄는 레이블 파익스 퍼 밀(PAIX PER MIL)에 영입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얼핏 보면 음악과 퍼포먼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댄스팝 계열의 전형적인 케이팝 솔로처럼 보이지만, 좀 더 깊이 뜯어보면 완전히 달라요.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사운드를 만들 줄 아는 프로듀서들과 이브라는 출중한 퍼포머가 함께 결합해 만들어낸 얼터너티브 케이팝 그 자체였어요. 요즘 케이팝에서는 음악과 콘텐츠에 ‘나’를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브는 장르 음악과 케이팝의 경계선에서 독특한 팝 아이콘으로서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언어가 분명히 있거든요. 올해 찰리xcx의 <brat>이라는 앨범을 정말 즐겨 들었는데, 그 앨범과 사운드와 메시지적인 맥락이 상당히 닿아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산업이나 비즈니스로의 글로벌이 아니라, 음악과 메시지로도 글로벌과 같은 호흡을 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음악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크레딧을 자세히 보라는 말을 자주 해요. 특히 케이팝은 많은 사람이 같이 만드는 콘텐츠기 때문에, 타이틀 곡 하나가 나오려면 수십 명이 함께 작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거든요. 앨범이나 뮤직비디오 크레딧에 쓰인 A&R, 작곡·작사가,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등 작업자들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그 안에서 나만의 취향을 찾는 게 최애를 좋아하는 만큼 재미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김윤하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실리적으로 보면 없어도 되는 존재겠죠. 음악이 없어진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잖아요. (웃음) 하지만 삶에 음악을 들여 놓는 순간 여러분의 삶의 풍경은 기필코 달라집니다.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출근길, 외로움이 사무치는 순간, 혼자 느끼기 아까울 정도로 행복한 순간에 적절한 음악이 함께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음악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든든한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감정의 보험이랍니다. 정말이에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케이팝 씬의 순간들
출판사 | 미래의창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