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풍경』은 오슬로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엘리자베스 쇼버가 주한미군 문제를 살펴본 저작이다. 해외의 여성 연구자인 그는 왜 해외 파병 군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주한미군 연구로까지 이어졌을까? 이러한 질문을 시작으로 해서, 그가 탐색해본 미군 주둔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하나씩 질문해보았다.
해외 인류학자로서 한국, 그리고 주한 미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 해외 파병 군인들이 현지의 민간인(특히 여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한국에 오게 되었지요. 제가 이런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제 인생에서 결정적이었던 두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 시절 유고슬라비아와의 접경지대에서 자랐습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벌어졌을 때, 오스트리아군은 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는데요. 이때 불과 열 살이었던 저는 동네에서 많은 군인, 탱크, 군용기를 목격하고 몹시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12년 뒤 저는 교환 학생으로 1년간 미국에 체류했는데, 이번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때의 미국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함께 반전 시위에 나갔던 사람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갑자기 자기네 군대를 지지해야 해서 더 이상 시위에 참여할 수 없다고들 했어요. 학생들이 기숙사 창문에 '극딜 이라크'라는 포스터를 붙여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은 미국이 침략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했어요.
서울에 왔을 때도 미군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걸 보고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무지를 저는 『동맹의 풍경』에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상상력의 사각지대'라는 개념을 활용해 설명했습니다. 그레이버는 권력의 구조가 일방적으로 편향된 구도를 만들어낸다고 보았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힘없는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주한 미군 문제를 다룬 책임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우 다채로운데요. 운동권 학생에서 펑크족까지 만나본 한국인의 스펙트럼도 넓고, 주한 미군을 비롯해서 기지촌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까지 국적도 다양했고요. 이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누구였나요?
인신매매를 당해 한국의 기지촌에 온 젊은 필리핀 여성이 기억납니다. 재능 있는 가수였던 그녀는 뮤지션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자리를 지원했는데, 알고 보니 그 일에 성 접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필리핀 NGO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지촌 클럽에서 구조되었지요. 한국의 두레방 활동가들은 그녀가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요.
수완이 좋은 데다가 자기 성찰적인 사람이었는지라 그녀를 만난 건 저에게 꽤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필리핀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 덕분에 필리핀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수년간 연락을 주고받았고, 제가 필리핀에서 현지 조사를 하게 된다면 그녀가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줄 거예요. 저는 그녀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졌습니다.
'외국인 연구자'라는 포지션이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이야기 나눌 때 유용하기도 하고 한계가 되기도 했을 듯합니다.
한국인들은 유럽에서 온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합니다. 많이들 도와주고 한국어가 서툴러도 잘 참아줍니다. 그런 환대는 참 고맙지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하는 일을 설명하는 건 다소 어려웠습니다. 다들 저를 영어 선생님으로 보는 듯했어요. 이태원에 갈 때면 젊은 백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성 노동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고요. 한번은 대낮에 이태원 지하철역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 든 돈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관심 없다고 하자 그 남자는 재빨리 자리를 떴지만요.
『동맹의 풍경』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주한 미군의 문제를 기지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태원이나 홍대 같은 서울 도심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점이었습니다. 연구를 구상할 때 처음부터 도심에 대한 연구를 구상하셨는지, 아니면 연구 과정에서 방향을 틀게 되었는지요?
처음에는 한 지역만 집중적으로 현장 조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태원 혹은 좀 더 외진 기지촌을 조사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미군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이 여가 시간에 얼마나 자주 서울에 오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맞춰 제 연구도 따라가게 된 것이지요. 사실 홍대는 우연히 연구의 중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머무른 첫 해에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집중적으로 한국어 수업을 들었는데, 어학 연수생들은 낮에도 밤에도 항상 홍대에 가곤 했어요. 홍대를 오가는 외국인 중 상당수가 미군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요.
『동맹의 풍경』에서는 주한 미군 주둔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되 미군 개개인을 범죄자로 보거나 미군에게 살해된 윤금이 씨를 민족의 딸로 호명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비판적 시선을 보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섬세한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힘을 발휘하진 못해왔던 듯합니다. 제기하신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민족주의적 프레임은 항상 가장 손쉬운 길입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이지요. 윤금이 사건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나 계급 서사에 초점을 맞춰 해석했지만, 민족주의적 서사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놀랄 일이 아닐 겁니다. 장기적으로 민족주의적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잡성을 강조함으로써, 즉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에 대항하는 것일 거예요.
많이들 주한 미군을 둘러싼 문제를 남성의 문제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사안이 여성과 결부된 것이기도 한 데다가 페미니즘적 시각이 상당히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주리라는 기대도 되는데요.
군사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여성들이 얼마나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지, 그런 일들을 목격할 때마다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캐서린 문이나 신시아 인로 같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주장했듯이, 여성은 군대라는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남성 미군 병사들은 군대의 막사 밖에서 파트너를 찾습니다. 미군이 미국의 도시에 주둔할 때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복잡할 수 있겠지만, 미군이 한국이나 일본, 필리핀 등지에 주둔할 때 지역 사회에서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면 사적 관계는 매우 빠르게 정치화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페미니즘적 관점은 매우 중요하겠지요. 다만 성별, 인종, 성적 지향, 계급 등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는 여타의 사안 또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연구를 진행하신 2000년대 후반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또 다릅니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한미 동맹의 문제가 국익의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고요. 이러한 시점에 한국 사회가 되짚어봐야 할 지점은 무엇일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은 한 시대의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이 끔찍한 전쟁은 개인적으로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인데요.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오래된 질서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교훈을 남겨준 전쟁이지요. 세계는 매우 격동적인 시대로 진입하고 있고, 러시아와 나토,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장기적으로 어디로 향할지 상당한 우려도 됩니다. 한국이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 점이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처에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웃 국가들과 비교적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외줄타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국이 당분간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쇼버(Elisabeth Schober) 오슬로대학교 사회인류학 교수. 중앙유럽대학교(CEU)에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태평양 지역의 미군 주둔과 관련한 군사주의 및 젠더 문제, 세계화 과정에서 변모한 해양 산업 및 노동 등을 연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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