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보여줄게, 보이지 않는 것을
소설 창작과 지도 제작의 유사점이 있다면?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 세계를 설명하는『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글 : 심완선(SF 평론가)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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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 올리버 우버티 저/송예슬 역 | 윌북(willbook) 

     

내가 체감하는 ‘지도의 신비’는 구글어스다. 초기의 구글어스는 비록 지금보다는 단순했지만 대단히 마법처럼 다가왔다. 지구의 3차원 모델을 누구나 개인용 컴퓨터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것도 내용물이 꽉 차 있는 ‘진짜’ 지구였다. 화면을 최대로 확대하면 모르는 동네의 골목까지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구글어스에서 자기 집을 찾아보는 일이 잠시 유행했다. 무작위로, 혹은 내키는 대로 지명을 검색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폼페이의 신전, 런던의 시계탑. 운이 좋으면 길가의 고양이도 볼 수 있었다. 직접 방문할 때만큼 생생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느낌이 났다. 게다가 이 새로운 지도가 다루는 범위는 압도적이었다. 마우스 휠을 도로록 굴려 땅에서 멀어지면 나는 순식간에 대기권 밖으로 점프했다(컴퓨터 성능이 좋지 않으면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다). 그야말로 우주적 차원의 시야였다.

 

시간이 지나며 구글어스에는 더욱 신기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화성 표면을 탐사하고, 바닷속까지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지구 상공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타임머신 체험 기능도 생길 거라고 들었다. 특정 지역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구현된다고 했다. 구글어스는 전 세계의 순간순간을 벌써 20년간 고해상도 이미지로 저장했다. 지구의 현재를 매일 거의 그대로 비추는 이 마법은, 허리케인 피해 지역의 상황을 고해상도 항공사진으로 전달하며 실태를 파악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게다가 바닷속 지형을 살피는 구글오션 기능은 지진대 관찰 등 연구에 요긴하게 활용된다고 했다. 해저의 화산 폭발을 확인하거나, 지진 및 해일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개인적인 생활 측면에서도 이제 스트리트 뷰 정도는 흔한 기능이다. 종이 지도를 쥐고 표지판을 찾으며 더듬더듬 경로를 읽던 시절과는 정말 다르다. ‘뷰’와 GPS는 나 같은 길치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정보를 쉽게 안내한다. 모르는 곳에 가더라도 미리 조사할 필요가 없다. 실시간 위치정보와 추천 경로 안내를 통해서 나는 (통상적인 범위 내라면) 어디에 있든 가야 할 길을 안다.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관계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권능이다. 불확실성에 따르는 불안과 두려움, 길을 잃는 당혹감은, 스마트하게 번쩍이는 지도의 빛을 받고 사라졌다. 길이 보이는 한 이동은 간단한 일이다.

 

스마트한 지도를 본 덕분에 나는 미아 신세에서만이 아니라 미지라는 개념에서도 멀어졌다. 지도와 같이 무엇을 보는 방법이 바뀌면 그걸 보는 자세도 달라진다. 브뤼노 라투르는 시각화와 인지가 맞물려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정보를 시각화하는 방식과 우리가 정보를 이해하는 방식은 서로 얽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세계지도다. 현재 친숙하게 사용되는 세계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사용하는데, 구(球) 모양의 지구를 사각형 평면으로 시각화하기에 왜곡이 심하다. 특히 양극에 가까운 고위도 지역은 과장해서 그려지는 반면 적도 부근의 저위도 지역은 크기가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다른 도법으로 작성된 세계지도를 보면 이런 왜곡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프리카 대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보다 훨씬 거대하고, 이에 비하면 아메리카 대륙은 조금 쪼그라든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크기가 달라지면 어쩐지 중요도 역시 달라 보인다. 크기는 직관적으로 중요성으로 연결된다. 큰 것은 딱 봐도 중요해 보인다. 물론 세계지도는 중요성이 아니라 지형을 시각화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이미지에서 은연중에 순위를 읽고 대륙 간 관계도를 그린다. 다른 방식으로 작성된 세계지도는 세상을 낯설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받아들였던 의미를 헝클어뜨린다. 지도는 정보를 가리키는 동시에 정보를 해석하는 관점을 가르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은 지도가 방대한 데이터 사이에서 길을 표시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도표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시각화는 명료하고 강력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나이팅게일이 고안했던 ‘장미 도표’는 (책에서는 잠깐 언급될 뿐이지만) 유명한 사례다.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간호하던 나이팅게일은 사람들이 부상보다는 주로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사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장미 모양의 다이어그램을 고안했다. 원을 12개로 분할해서 각각을 1월부터 12월까지로 지정하고, 그때 사망한 인원을 반지름에 반영했다. 사람이 많이 죽은 달은 원 조각이 길쭉하게 밖으로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을 사망 원인에 따라 색칠했다. 덕분에 장미 도표의 각 부분은 마치 잘라놓은 수박처럼 보인다. 매달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빨갛고 커다란 과육만한 비율을 차지했다. 더없이 명확한 주장이었다.

 

또한 잘 시각화된 지도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어느 방송인은 허리케인이 예측된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단순히 폭풍의 규모와 경로를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도에 허리케인이 야기할 피해의 범위도 표시했다. “보는 사람 누구나 허리케인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위험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35만 명의 텍사스 주민은 제때 대피하기를 택했다. 이는 “미국에서 기상 현상과 관련해 일어난 대피 중에 최대 규모였다.”

 

어떤 지도는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곧잘 인지되지 않는 문제를 확실하게 가시화한다. 미얀마군이 2016년 말 로힝야족의 거주지를 파괴할 때 인권단체들은 위성 사진으로 피해지역을 감시하고 드론으로 로힝야족의 피난 경로를 기록했다. 수만 명이 걸어서 마을을 떠났다. 주된 피난처는 방글라데시였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예상한 난민 수는 75,000명이었다지만, “실제 유입된 난민 수는 첫 3개월에만 7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겪은 충격적인 규모의 피해는 지도를 통해 명백한 모습으로 시각화되었다.

 

나아가 지도 제작자의 작업은 어떤 점에서는 소설 창작과 유사해 보인다. 창작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재료를 활용하되 자신의 관점으로 정보를 재배열하고 재해석한다. 그러면서 의도하는 바를 적절히 시각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때로는 독창적인 형식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물은 종종 길고 간접적이면서도 피부에 와닿는 메시지로 완성된다. 흐릿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시각화된 패턴은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가 이해하도록, 비교하고 검토하며 성찰하도록 돕는다. ‘산불 지도’의 경우 산불을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기후 위기와 관련된 일련의 패턴으로 보여준다. 대기과학자들이 위성으로 불꽃을 감지한 데이터를 중첩해서 분석한 결과, 2020년 시베리아에서 산불이 난 지역은 2019년과 상당히 일치했다. “어쩌면 불길이 계속 잡히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명 ‘좀비 산불’이 겨우내 땅속에서 들끓다가 봄에 다시 피어오르는 거라면, 상처는 두고두고 곪아 터질 것이다.”

 

모종의 번역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지도 그리기는 소설 창작과 비슷하지 않을까. 창작자가 붙잡음으로써, 데이터는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대신 이해 가능한 모습으로 집약된다. 세상은 변하지 않더라도 지도/소설로 세상을 새로이 형상화할 수는 있다. 번역된 형상을 보면 우리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의미를 읽을 수가 있다. 게다가 어쩌면 그건 해당 번역이 아니고서는 가시화되지 않는 내용이다. 지도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동시에 데이터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구글어스가 지구에 대한 연구, 해석, 인식과 맞물려 기능하듯, 지도들은 스스로 말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의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지도를 보는 사람들의 변화를 촉구한다. 지도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쓸모가 떨어진다. 지도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과 결합해야 비로소 지도가 제 능력을 발휘한다. 기록하고, 예측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일 다음 단계는 실행이다. 책에 소개된 어느 한탄 섞인 선언이 기억에 남았다. “해법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실을 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말았다면, 지도가 하는 말을 들었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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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저/<송예슬> 역

출판사 | 윌북(will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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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