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의 쫓고 쫓기는 레이스 『동물원 탈출』
『동물원 탈출』 김소리 작가 인터뷰
우리한테는 마냥 좋고 즐거운 동물원이라는 장소가 동물들에게는 탈출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무겁지 않고 재밌게 풀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의문과 질문거리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2023.06.21)
첫 그림책 『정글 버스』로 국내외 독자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던 김소리 작가가 신작 『동물원 탈출』로 찾아왔다. 이번에는 한층 강렬해진 그림과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며 김소리만의 작품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구축해낸 느낌이다.
『동물원 탈출』 작품을 구상하고 쓰고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가장 처음 이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 건 길거리의 도로 표지판을 보고서였습니다. 그 모양이 마치 목이 긴 기린 같았거든요. '누가 봐도 기린인데 표지판을 흉내 내고 있으면 어떨까?', '책을 읽는 우리는 다 아는데 이야기 속 사람들은 동물을 못 보고 계속 찾아 헤매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도 제 이야기 속 사람들처럼 도시 속을 들여다보며 동물들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도시 곳곳에서 자신의 모양과 비슷한 조형물에 녹아든 동물들과 그 동물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거 같아요.
『동물원 탈출』 창작 의도에 대해 더 자세히 들려 주세요.
종종 뉴스에서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얼룩말 '세로'가 동물원을 탈출해 도심을 헤맸죠. 저는 동물들이 왜 동물원에서 탈출했는지, 그 동물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근본적으로 그 동물들은 왜 동물원에 갇혔을지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했습니다. 우리한테는 마냥 좋고 즐거운 동물원이라는 장소가 동물들에게는 탈출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무겁지 않고 재밌게 풀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의문과 질문거리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전작 『정글 버스』보다 한층 강렬한 느낌을 받았어요. 화법에 있어 어떤 포인트를 두셨는지요?
정글 버스가 색 대비를 강하게 주는 식이었다면, 동물원 탈출은 조금 더 자유로운 느낌으로 그리고 싶었던 게 컸던 거 같아요. 이야기 자체도 동물들이 자유를 찾아 도망가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작업 초반에는 이것저것 실험을 하며 콜라주 형식으로 건물의 사진에 그림을 덧대는 식으로도 풀어보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제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아 그림만으로 연출하는 거에 집중했던 거 같습니다. 그림책은 아무래도 그림이 제일 먼저 보여지는 부분이라 어떻게 하면 흡입력 있고 재밌는 장면을 구상할 수 있을까, 동물들을 너무 대놓고 보여주지 않고, 또 너무 잘 숨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타협점을 계속 찾아나간 거 같아요.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경비원들이 패턴 형식으로 일정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어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이 복잡하지 않게 그 리듬감을 따라 갈 수 있었으면 해서 그림의 색은 최대한 절제했고, 딱딱하지 않게 회화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똑같은 옷을 입고, 모두 같은 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눈에 띄었어요.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도 보이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이야기에 약간의 아이러니를 주는 걸 좋아합니다. 동물원 탈출 속 아이러니는 눈앞에 숨어있는 동물들을 보고도 못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겠지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행진을 보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못 찾을까! 답답하고 우스운 마음이 들 수도 있고, 그런 모습 덕분에 숨어있는 동물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손을 마주 잡고 동물들을 추격해 가는 사람들은 그물이나 울타리의 모양이기도 하잖아요. 그림 속 사람들이 어리숙하게 눈앞의 동물들을 찾지 못해도 결국 인간이 치는 울타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 그림책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나지만 이 추격전의 끝을 우리는 아마 알고 있으니까요.
『동물원 탈출』 트레이싱지 커버가 특이해요. 커버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최초의 더미북 커버는 철창 모양의 단순한 표지 커버였습니다. 철장문으로 된 표지를 열면 동물들이 탈출한 장면이 이어지게요. 다만, 표지로 하기에는 조금 단조로워서 이후 편집자님과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킨 게 지금의 표지입니다. 얼룩말의 얼굴과 꼬리는 책날개에 숨기고 창살 모양만 전면에 보이게 해, 처음 표지를 봤을 땐 창살이지만 책 표지를 넘기는 순간 아 창살이 아니라 얼룩말이었구나! 하고 약간 이 책의 프롤로그 같은 느낌을 주는 표지가 되었습니다. 트레이싱 인쇄로 어디가 철장의 밖일지 안일지의 모호한 경계도 이 표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벌써 두 번째 책입니다. 어떠셨나요.
이야기를 발견하고 살을 붙이고 그림으로 형체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의 기록 같아요. 어떨 때는 땅속에 파묻힌 공룡의 뼈를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발골해내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입니다. 첫 번째 책인 『정글 버스』를 만들 때는 무언가 거대한 운명을 따라 바다에서 표류하는 배를 탄 느낌이라 주변을 둘러볼 새가 없었는데, 두 번째 그림책을 만들 때에서야 세상이 주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세번 째 책을 만들 때는 또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되고 설렙니다.
지난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서 외국인 독자들에게 김소리 작가님의 작품이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고 들었어요. 작가님 특유의 개성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 많은데요. 다음 작품도 기대해도 좋을까요?
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한테도 공감을 받고 저 멀리서도 제 그림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으니 행복해요. 어서 빨리 다음 책을 완성해야겠다는 의욕이 솟아오르네요. 지금 준비 중인 다른 책은 아직 다듬는 단계이긴 한데, 겨울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더 재미있는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김소리 (글·그림) 『정글 버스』로 제4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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