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은 내향인인데, 여전히 많은 내향인들은 외향인의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고 있다. 성격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은근슬쩍 외향성을 지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내향인들은 많은 순간 '내향인이라서 불리하고, 억울하며, 피곤하다'는 생각을 해왔을 것이다. 사회 심리학자이자 지난 10여 년간 심리학 블로그 '무명자의 심리학 광장'을 통해 일상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이야기를 세심하게 전달해온 최재훈 저자는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에서 내향인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외향인의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심리학 지식을 조금만 익힌다면, 누구나 억지로 성격을 바꾸려 애쓰거나 나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책이라니! 오늘도 나를 숨기고 외향인인 척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내향인 독자분들이 무척 반가워 것 같은데요. 어떻게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을 출간하게 되셨나요?
최근 수년간 MBTI가 크게 유행하면서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니즈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로서 이러한 트렌드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로 소비되고 있는 콘텐츠들이 현대 심리학의 정수를 담지 못한 채, 이야깃거리 중심의 피상적인 내용 위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사실,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 성격 심리학의 세계거든요.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내향형-외향형 성격에 대한 구분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내성적인 외향형과 외성적인 내향형 등으로 세분화될 수 있고, 이러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나란 사람의 정체성을 더 완벽히 파악할 수 있게 되죠. 저는 찐내향형 심리학자로서, 저와 같은 내향인 또는 내향형 파트너를 이해하고 싶은 외향인 독자분들을 위해 내향형에 대한 모든 정보를 낱낱이 알려주는 일종의 안내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성격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이론적 지식을 기반으로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내용들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최근 내향인을 소재로 한 책들이 점점 많이 보이는 듯합니다. SNS에서도 내향인을 다룬 인스타툰 등 다양한 콘텐츠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내향인 또는 I형 인간이라는 표현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 비해 내향인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리고 인식이 개선됐다고 봐도 될까요?
사실, 성격은 중립적인 카테고리에 가깝습니다. 어떠한 성격이든지 장단점이 공존하고, 성격 별로 더 잘 맞는 환경이나 상황들도 따로 존재하거든요. 내향성 역시 외향성이 가지기 힘든 여러 장점이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사회성이 더 뛰어난 외향인들이 아무래도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향인들이 느끼는 스스로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은 맞습니다만, '내향형에 대한 세상의 인식 또한 개선됐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성격의 중립성에 대한 이해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외향성 선호'에 대한 프레임이 굳어지기 전에 초중고 의무 교육 단계에서부터 성격과 정체성에 대한 심리학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향형을 주제로 하는 이러한 콘텐츠들도 사실은 내향인보다는 외향인 독자분들이 더 많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측면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들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 인간은 한층 더 중립적이며 개방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니까요.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읽으며 내향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저자님의 이야기에도 많이 공감했는데요. 저자님께서는 현재 심리 센터를 공동 운영하시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도 활발히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그러한 활동들이 내향인으로서 어렵지는 않았나요?
저도 커리어 초반에는 번아웃이 쉽게 와서 퇴근하자마자 뻗어버리기 일쑤였어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결국 내 성격에 대한 이해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극내향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하려는 일과 제 성격의 핏(fit)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되면 결국에는 선택의 문제가 되죠. 내 성격과 결이 맞는 직업을 찾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 일을 할 것인가?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고,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이고 결정이었기에 어떤 스트레스가 오더라도 더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 마음을 먹고 들어간 거죠. '이 길은 무척 힘들 거야. 하지만 하고 싶은 거니까 어떻게든 이겨내보자!' 하고요. 그러한 노력과 경험들이 쌓이면서, 지금은 강연 같은 외부 활동을 할 때도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수월해졌음을 느끼고 있어요. 극내향인인 제가 외향 지향적인 직업 전선에서도 충분히 선전할 수 있었던 각종 노하우들을 심리학 이론과 접목해 이 책에 고스란히 실어 놓았으니,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성격이나 성향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님이 보실 때 내향인들이 이런 점은 고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너무 많죠(웃음). 하지만, 내향형 전문가로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첫째,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내향인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예요. 이게 부족하면 불행해지거든요. 나만의 시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면 이기적이라는 비난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죠. 나만의 시공과 인간관계는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관계는 항상 정리 정돈이 돼있어야 하고요. 내 시공을 침해할 수 있는 소모적 인간관계는 최대한 지양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나만의 그린벨트를 지킬 수 있도록, 인간관계에 절대적으로 신중해야 해요. 내향형은 혼자일 수 있는 자유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습니다.
둘째, 생각만 하지 않고, 말이나 글로 더 많이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향인은 어떤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머릿속에서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날 무시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황이 오면, 외향인들은 보통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거든요. 그럼 오해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바로바로 결론이 나는데, 내향인들은 이걸 속으로만 시뮬레이션하면서 안 좋은 생각들을 계속 키워나가는 버릇이 있어요.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이어지니까,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올라오고, 그걸 속으로만 삼키고 있으니 사람이 엄청 뚱해 보이죠. 그래서 내향인들은 속에 쌓인 게 많아요. 표현하고 확인해서 응어리를 해소해야 하는데 성격상 이걸 잘하지 못하는 거죠.
외향인들처럼 직설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건 아무래도 힘드니까, 텍스트로 표현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카톡이나 문자, 이메일, 손 편지 등으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거나, 또는 다른 친구에게 내가 느낀 감정들을 털어놓으세요. 매일 밤 일기를 쓰면서 내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어요. 내 생각만으로 마침표를 찍는 습관을 버리고, 내 머릿속 쉼표를 거쳐 상대방과의 소통 속에서 마침표를 찍는 과정을 연습해나갔으면 합니다.
지금도 관심이 뜨거운 MBTI를 비롯해, 각종 성격 유형 검사와 테스트 등이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그 바탕에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님 역시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는데요. 이렇게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행위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좀 더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곧 정체성 확립의 큰 부분이기도 한데요. 결국에는 이러한 정체성 인식이 내 인간관계와 커리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하겠죠. 내향형으로 특정짓자면 '내향인의 인간관계는 어떠한 양상일 때 만족스러운가?', '어떤 성향의 파트너와 핏이 잘 맞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항상 곱씹어보는 것이 내 성격의 결에 맞는 인간관계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커리어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내 성격에 적합한 환경이나 직업 등이 따로 있으니, 나에게 유리한 일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보다 수월하게 직업 전선에 매진할 수 있겠죠. 한편, 내 성격과는 결이 맞지 않는 인간관계나 직업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당면하더라도, 내가 나를 잘 알수록 이런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향인이 외향 지향적인 직업을 갖게 된다면 내 성격의 장단점들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으니, 어떤 면을 개선해야 하고 어떤 점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 등을 이해해 전략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내향인이라서 너무 불리해', '내향인이라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그들에게 건네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굳이 내 성격을 바꾸려고 한다거나,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내향인이라서 너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내가 외향인에게 유리한 환경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즉, 잘못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내향형에게 유리한 환경을 선택해서 삶을 변화시키면 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수직적인 문화의 조직에 속해 있다면 수평적인 조직으로 이동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한편, 자신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난 원래 이러니까 어쩔 수 없어'하고 그 성격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을 유동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왜 불리한지, 내가 어떤 측면에서 부족한지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선택의 문제가 되거든요. '내가 열심히 해서 외향인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겠다'라고 결정한다면, 내향인이 가진 각종 장점과 노하우들을 활용해서 전략적으로 사회생활을 수행해나가는 겁니다.
결국엔 변화인 것 같아요. 환경을 변화시키든지, 내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든지요. 책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저는 우리 내향인들이 감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우리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만약 내향성과 외향성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원하는 성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저자님은 그때도 내향인이고 싶으신가요?
100%요. 저는 내향인들에게 허락된 내면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에 항상 매료됩니다. 나 자신과 인간의 심리, 이를 둘러싼 세상의 섭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글로 표현하고 나만의 창작물들을 쌓아가며 세계와 나에 대한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흥미롭거든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저의 극내향성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강의를 할 때는 외향성이 필요하지만, 공부를 하고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글을 쓸 때는 내향성이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내향인으로 평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인간관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지금이 편하고 좋습니다. 수많은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지내는 외향인의 삶은 물론 에너제틱하고 즐겁기도 하겠지만, 저는 왠지 상상만 해도 기가 빨리고 벌써부터 피곤해지네요.(웃음)
*최재훈 성균관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심리이론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지난 10여 년간 심리학 블로그 '무명자의 심리학 광장'을 운영하며 300여 편의 심리학 관련 글을 기고했다. 성격 진단과 감정 조절, 관계 갈등 등의 주제로 심리학 프로그램을 개설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제주도 내 여러 관공서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심리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심리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목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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