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면서 관람 신청 열기가 뜨겁다. 대통령이 어떤 공간에서 업무를 해 왔을지 궁금해하며 기대감에 들뜬 모습이다. 그런데 이보다 한발 앞서 청와대라는 공간에 호기심을 느끼고 책 안에 담아낸 사람이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작가는 그동안 쉽게 발 디딜 수 없었던 청와대 곳곳을 누비며 건물의 아름다움과 우리 문화의 정취,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이제 새롭게 호기심을 안고 청와대를 찾아가는 이들에게 『사진과 사료로 보는 청와대의 모든 것』이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을 이루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수많은 사진인 것 같습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 때문에 사진기자라는 직업을 택하신 건가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기자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공부를 계속하면서 대학원에 가고 교수가 되어야지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것 같았어요(웃음). 근데 마침 기자가 된 선배와 동기들이 몇 있어서 그 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철학 전공에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서평을 쓰는 문화부 기자가 돼야겠다고 혼자 생각했죠.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그냥 무조건 되는 곳에 가게 되겠구나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사진 겸 취재기자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에 점점 더 관심이 생기고 공부도 하게 됐죠. 아마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사진을 몰랐을 겁니다. 지금은 사진 찍는 것 자체가 재밌습니다.
청와대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청와대에서 행사를 하면 기자들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합니다. 미리 보안 검사를 하고 취재하기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서죠. 그렇게 취재 준비를 마치고 나면 VIP(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흔히 대통령을 VIP로 표현해요)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행사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도 하고 동료들끼리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저처럼 호기심이 많은 기자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청와대 건축물을 눈에 담고, 이 건물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막연하게 건물들의 모습을 남겨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던 것이 이 책의 시작입니다. 사진이 모이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청와대에 관해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쓰게 됐습니다.
책을 보면 단순히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만 담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과 문화, 그리고 그림이나 행사 등에 관한 서술 또한 상당합니다. 집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청와대 이곳저곳을 잔뜩 찍어 놓긴 했는데, 어떤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나 싶었어요. 정치적인 얘기가 아닌, 청와대라는 공간 자체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과거의 궁궐과 청와대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청와대 건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궁궐과 어떻게 다른지 찾아 봤거든요. 조선시대의 왕은 세습 군주고 현대의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정치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한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라는 것을 공통점으로 두고 청와대를 바라보니까 공간 하나하나의 역할 또한 궁궐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먼저 음양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지은 궁궐 건축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게 청와대에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봤어요. 그리고 궁궐에서 사용했던 건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는 않았지만 같은 역할을 했던 공간을 비교해 봤습니다. 예를 들어, 국무회의를 하는 세종실은 사정전의 역할을 했던 곳이죠. 그다음 조선시대에는 왕의 행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보면서 청와대에서 이루어지는 국가 행사와 비교해 보았죠. 정보를 찾고 공부하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궁궐과 비교하면서 청와대라는 공간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입기자 신분이긴 하지만 청와대는 공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준비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마음이 끌리는 곳을 사진으로 찍고 기록을 남겼다면, 책을 준비하면서는 청와대 안의 장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촬영했어요. 초반에는 건물 사진을 자꾸 찍으니까 보안 시설을 촬영하는 줄 알고 경호관이 다가와서 찍은 걸 보여 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아마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이었다면 필름을 뺏겼을 겁니다. 근데 화면을 보니까 보안 시설 같은 건 전혀 없고, 건물에 있는 잡상이나 토수 같은 걸 클로즈업해서 찍어 놓은 사진만 있었죠(웃음). 안전을 위해 보안 시설이 공개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책을 내기 전에도 찍어 놓은 사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실제 국정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이라서 출입기자도 함부로 이곳저곳을 드나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출입기자 시절 내내 거의 매일 청와대에 들어가는 일정이 있었고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회의나 행사를 모두 취재했기 때문에 운 좋게 많은 곳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를 공개하고 운영하는 방식도 조금씩 바뀌는데, 저는 2005~2007년과 2015~2017년에 각각 출입기자 생활을 하면서 총 4년 4개월 정도를 청와대에 드나들었어요. 2006년에 못 가 본 장소를 2017년에 취재하면서 가 보기도 하고, 2017년에는 입장이 불가능한 장소를 2006년에 미리 찍어 두기도 해서 대부분 장소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직업과 상관없이 사진 찍는 일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원래 건축물이나 문화재 같은 피사체를 좋아하셨나요?
원래 궁궐이나 사찰 등의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봉정사나 부석사처럼 알려진 사찰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아요. 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찍는 것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창녕 우포늪에 다녀왔어요. 혼자 차박을 하며 2박 3일을 머물렀는데, 마침 비가 와서 더 좋았어요. 제가 요즘 유튜브를 하는데(웃음) 빗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담은 ASMR 영상을 올리고 있거든요. 자연의 풍광과 그 속에 녹아든 건축물 같은 것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한동안은 새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보통 새를 찍는다고 하면 천연기념물을 생각하는데, 저는 참새를 찍었어요. 그래서 별명이 참새 아빠였죠(웃음). 참새를 가만히 지켜보면 인간의 표정과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때그때 관심 가는 피사체는 조금씩 변하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자연물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를 찍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어요. 청와대가 집무 공간에서 역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자리매김될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처럼 청와대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특히 눈여겨봐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책을 본 지인들이 좀 어렵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특히 음양오행 같은 부분이(웃음). 저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내용이지만, 우리의 전통 건축은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지어지고 배치됐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걸 알고 청와대의 건물과 장식을 바라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과거의 궁궐과 현재의 청와대를 비교해 보면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요. 과거의 사람들은 어떠했고, 그것에 비추어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하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해요.
청와대라는 공간이 매력적인 건 역사적인 곳인 동시에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문화재를 보듯이 청와대를 바라볼 수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공간이라는 걸 느끼게 되면 더욱 친근하게 청와대를 마주 볼 수 있어요. 음양오행 부분을 잘 넘기면(웃음) 이어지는 내용에서 그런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능행도> 그림 앞에 모여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누렁이를 찾으려고 애쓰는 기자들의 모습이나 목욕탕과 식당을 이용하는 청와대 안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면 책을 읽는 재미가 더 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청와대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청와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청와대에서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은 상춘재 하나예요. 저는 그 건물이 가장 좋습니다. 크고 웅장한 본관 건물도 멋있지만, 사대부 가옥 같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상춘재뿐입니다. 상춘재가 지어지기 전에는 외빈을 초청해서 회담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어요. 상춘재가 지어지면서 비로소 정상회담이나 여야 수뇌부를 초청하는 등의 중요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거죠. 이 상춘재 앞에 녹지원이라는 정원이 있습니다. 그 공간도 참 예뻐요. 제가 새를 좋아하는데, 아침 무렵에는 새소리가 많이 납니다(웃음).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해가 뜨거나 질 때 상춘재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곳곳에는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시된 작품이 다 청와대의 소장품인 줄 알았어요. 국립중앙박물관과 고궁박물관 소유의 작품이나 유명 화가의 작품을 임대해서 걸어 놓는 경우가 많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짧게는 6개월에서 보통 1~2년 정도 임대해 내부를 장식한다고 해요. 청와대가 소유한 것으로는 매스컴에 종종 등장했던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 대표적입니다. 청와대에 건다고 해서 작가님이 작품 가격을 할인해 줬다는 뒷얘기가 있죠(웃음). 이런 작품들을 구경하는 일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백승렬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랐고, 충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연합뉴스에 입사해 현재 사진부 선임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제123회·제128회·제133회·제139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사진기자협회 주최 제37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뉴스 부문 금상과 가작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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