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
‘하… 이 무더위에 누가 공원을 온다고…’
작열하는 7월의 태양 아래, 나는 텅 비어있는 공원 바닥 위에 맨발로 서 있다. 아니,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커플이 보이기는 했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꼭 붙어있는 뜨거운 커플이었다. 딱 봐도 공연을 보러 온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 분들의 시야에 함부로 침투한 불청객 같았다.
‘그래, 우리 서로 방해하지 말자.’
나는 배를 오픈하고 춤을 추는 밸리댄서다.
그것도 길바닥에서… 소위 길거리 공연, 즉 버스킹이라는 것인데, 그냥 맨발로 길바닥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남들은 생각만 해도 근심스러울 만한 이 짓을 6년을 했다.
그날도 우리는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공원에서 관객 없는 공연을 시작했다. 한 15분쯤 지났을까. 내 이마에서는 땀이, 발밑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응? 물?? 왜 밑에서 물이 나오지? 땀으로 살포시 젖어본 적은 있어도 이처럼 아래에서부터 폭발하듯 젖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거센 물줄기는 공연복 치마를 이리저리 뒤집었고, 우리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기억은 안 나지만 비명도 질렀던 것 같다. 젠장…
사태를 파악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분수가 터진 것이다. 와우. 여기 물 나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그런데… 그 분수가 터짐과 동시에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왔다. 하?? 늬들 아까까지는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니? 녀석들은 춤추는 우리를 몰아내고, 거센 물줄기 위에서 신묘한 자세들을 취했다. 물줄기 위에 기마자세로 앉아있는 아이, 허리를 꺾고 물줄기를 등으로 받는 아이, 콧구멍으로 물을 들이마시는 아이… 등등 어떻게 저런 자세가 가능할까 싶은 자세로 아이들은 분수를 마음껏 탐닉했다. 물론 우리 춤을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하… 내가 비록 몸통 왼쪽만 젖은 상태로 길바닥 위에 맨발로 서 있지만, 나름 00시 문화재단 소속으로 온 것인데… 무허가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닌데…
음악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춤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티 나게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다. 그건 프로(?)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안무인 것 마냥 춤을 추면서 슬슬 자리를 옮겼다. 누가 봐도 원래 안무가 아닌데도, 누가 봐도 분수를 피해 도망가는 것인데도, 우리는 끝까지 그것이 안무인 척했다. 남들은 우리를 보고 웃겨서 웃어도, 우리는 내내 공연용 미소를 유지했다. 그것이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은 4년 차 버스커의 선택이었다.
이처럼 버스킹의 관객들은 길가는 행인들, 즉 준비되어 있지 않은 관객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버스커가 홀대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반면 관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다. 공연자와 관객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는 어떤 관객이 우리 공연을 가만히 보더니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말했다.
“어휴… 어떻게 이러고 길에서 춤을 춰. 살이라도 좀 빼고 하지.”
정말 한 뼘 거리에서 내 눈을 보고 정성껏 시비를 걸었다. 나는 지금 토 나오기 직전까지 배를 꿀렁꿀렁하고 있는데!! 뭐? 살?? 하하. 그래, 내 뱃살 걱정이야 워낙 많이 들어왔던 거라 익숙하지만 서도, 이 안면 사이의 거리는 아니었다. 나 이거… 대답해야 하는 건가? 그 사람은 내가 반응을 할 때까지 안면 사이의 친밀한 거리를 유지할 생각인 듯했다.
“이것도 많이 뺀 겁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할 수 있는 대답을 했건만, 그 관객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이거 허가받고 하는 건가?”
“네, 거기 쓰여 있잖습니까. 우리 00시 소속입니다.”
그 관객은 공연자가 너무 뚱뚱하다,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 쟤들 춤을 잘 못 추는 것 같다… 라고 투덜대면서도 우리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그것도 내 바로 옆에 서서…
하지만 그 분이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버스킹을 할 때 필요한 건… 날씬한 몸매도 그렇다고 춤 실력도 아니다. 어차피 사람들도 우리에게 퍽 대단한 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멘탈’ 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는 멘탈… 그것이 필수 장착 옵션이었다. 맨발로는 해도 맨멘탈로는 불가능한 것이 버스킹이었다.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이런저런 관객들을 만나면서, 내 멘탈에는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쌓이면서 그 굳은살도 두꺼워졌다. 내 멘탈에 천연 기어와 천연 글러브가 끼워진 것이었다. 웬만한 일로는 절대 깨지지 않을만한 그런 방어막이.
요즘 핫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를 보고 있자니 신랑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국주가… 저 사람들한테 딸리는 건 춤 밖에 없는데… 그지? 특히 멘탈은 상위 1퍼센트지.”
그럼! 오늘도 내 멘탈은 완벽… 근데 여보야, 딴데 가서는 저런 말 하지마세요.
*김국주 춤과 책과 맥주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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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주(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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