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노블 특집] 김정연이 만화를 기르는 법 -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데뷔작 『혼자를 기르는 법』의 괄목할 성공이 무색하게도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약간 만화가’라고 적은 김정연의 두 번째 작품이 지금 막 도착했다.
글ㆍ사진 문일완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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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혼자를 기르는 법』의 괄목할 성공이 무색하게도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약간 만화가’라고 적은 김정연의 두 번째 작품이 지금 막 도착했다. 『이세린 가이드』. 자기 소개엔 췌언을 다 빼고 ‘만화가’라고 꾸욱 눌러 적은 김정연의 본격적인 작업 행보다.


『이세린 가이드』의 주인공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미쉐린’이라는 단어의 음가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미쉐린 가이드의 가벼운 패러디가 맞습니다. 『이세린 가이드』는 『혼자를 기르는 법』(이하 『혼기법』) 출간을 완료하고 워킹 홀리데이로 오게 된 독일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안내를 부탁하는 일을 많이 겪으면서 떠올리게 됐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제가 먹어온 것들이 우선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한국 음식이 나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차지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됐던 것 같아요. 이 만화는 거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얼핏 드는 생각은, 『혼기법』의 주인공 ‘이시다’와 ‘이세린’의 친연성입니다.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눈썹선이 추가된 이세린은 이시다가 전문가로 독립해 자기 영역을 확보한 성장 버전으로도 느껴지는데요? 

이시다가 서울을 살아가는 20대 사회 초년생이라면, 이세린은 경제적 안정과 전문성을 획득한 좀 더 높은 연령대의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작업 모두 1인칭 시점의 독백으로 풀어내는 서사라 주인공의 세대, 경제 수준, 성격, 욕망 등이 만화의 톤에 결정적인 것 같아요. 서사의 기본은 주인공의 강렬한 욕구를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시다에 반해 그것이 굉장히 흐릿한 인물로 뭘 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어요.

『혼기법』이 웹툰을 묶은 책인 반면, 『이세린 가이드』는 곧장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혼기법』이 즉각적인 코멘트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확보한 느낌이었다면, 『이세린 가이드』는 반응을 예측하기가 훨씬 어려웠어요. 작업하는 동안에는 한 컷 한 컷 정말 오랫동안 들여다보기 때문에 1차 스크립트 쓸 때를 제외하고는 제 호흡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감각이 둔해져버리거든요. 스크립트를 쓴 스스로를 믿고 가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니 헤맬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표지와 제목의 뉘앙스만으로 『미스터 초밥왕』『고독한 미식가』『식객』 등 음식 만화를 떠올리거나 오해할 독자들을 위해 차별점을 설명하신다면요? 

오히려 기존 음식 만화의 문법 속에 놓여야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분류되길 어느 정도는 의도했어요. 제가 읽은 만화 가운데 음식 만화의 비중이 꽤 큰데, 만화 속 소년들에게 요리가 순수한 성장과 경쟁, 진취의 영역이라면 저한테는 발전시키지 않아야 할 능력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가사 분담이나 좋은 아내가 되겠다는 말이 싫어서 최대한 도망 다녔어요. 음식 만화를 즐겼지만 이것이 여성들에게도 유효한 언어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음식 만화 속의 과장된 감탄과 미식의 언어를 외면한 채 기대와는 다른 음식 만화를 하고 싶어서 ‘모형’을 소재로 잡았습니다.

고객에게 의뢰받은 열다섯 가지 모형과 연계해 음식에 얽힌 다양한 지식과 정보, 가족과 개인(여성)의 서사까지 매끄럽게 교직하는 독백의 향연이 말 그대로 압권입니다. 작업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세린이 의뢰받은 모형의 메뉴나 공정을 두고 어수선할 정도로 의식의 흐름을 펼친 뒤 그것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술술 풀릴 때도 있었고,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연결 짓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단, 독자들이 산만한 여정이라고 느낄 확률이 큰데 적어도 출발한 곳으로 다시 모시고 올 것.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혼기법』이 6컷이라는 제약 속에서 생략과 도약의 묘미를 통해 일상의 통찰을 보여준다면, 『이세린 가이드』는 하나의 소재로 이야기를 완결하는 구성입니다. 

『혼기법』이 만화에 대한 경험이 없던 터라 6칸 만화라는 제한을 둔 자전거였다면, 『이세린 가이드』는 거기서 보조바퀴를 떼어버린 것에 가까워요. 대신 “와, 이제 나도 균형을 잡는다!” 하고 신나서 폭주해버린 호흡이죠. 좀 더 연출로서의 여백과 분배를 잘 사용하는 느린 호흡의 만화를 해보고 싶은데, 저한테는 난도가 너무 높게 느껴져서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에요. 

책에 실린 15개의 이야기 중 독자들이 조금 각별하게 읽었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3화에 실린 비빔밥 이야기.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와 함께 무엇인가 닮은 것을 만드는 일, 가짜를 만드는 일이 얼마만큼의 인격권을 가질까 하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영화 특수분장팀에서 일하기 위해 시체 모형이 필요한 작은오빠와의 에피소드, 더불어 섹스돌도 언급되고요. 사회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의도였지만, 동시에 제가 창작물을 전개하며 개인적으로 늘 하게 되는 고민과도 닿아 있어요. 저도 가짜 이야기를 만드는 픽션 만화가지만 결국엔 타인과의 관계들이 잔뜩 얽힌 제 개인적인 경험과 환경을 기반으로 주인공 또는 제 포지션을 인지하고 공격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 닮아도 되는 것과 아니어야 하는 것을 계속 구분해야 하는데, 이 에피소드는 저에게도 질문이었어요.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지음 | 창비

“데뷔작이었던 탓에 칸을 자유롭게 분배해 호흡을 조절하는 것에 도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독백 내레이션은 저한테는 보조바퀴 같은 건데, 언젠가는 떼어내고 인물의 대사나 행동만으로 설득력을 갖춰보고 싶어요.”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크게는 음식 만화 장르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해서 모형을 만드는 방법도 레시피처럼 넣고 싶었어요. 음식 만화에서 레시피라는 것이 어떤 실용을 목적으로 작성되기보다는 그 과정 속에 어떤 비화나 깨달음을 숨겨둔 채, 또 경우에 따라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활용되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걸 쓰고 싶었어요.”



혼자를 기르는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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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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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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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글그림
코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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