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3월 우수상 - 만능의 한 마디, ‘그러게요’
너무 딱딱하지 않게 약간의 변주와 추임새만 넣었더니 어느 질문에든 착착 감기는 만능의 한 마디가 되는 게 아닌가.
글ㆍ사진 유송이(나도, 에세이스트)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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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대체 왜 이런 건데? 어디서 잘못한 거야?”

이 말이 던져지는 순간 게임은 시작된다. ‘아무개 담당이 진행 일정을 놓쳤나 봐요. 제 잘못 아니에요.’라고 진실 되지만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대답을 하거나 혹은 ‘죄송합니다. 제가 더 꼼꼼히 챙겼어야 하는데.’라는 묵직하지만 자칫 잘못을 홀라당 뒤집어쓸 대답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어느 쪽이냐고? 당연 후자다.

회사생활 5년이면 풍월은 못 읊어도 팀장님 눈치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저 물음은 ‘누구의 잘못’이냐는 요점이 아니다. ‘누가 책임질 건지’가 그가 알고 싶은 것이다. 물이 엎질러졌으면 누군가 달려가서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닦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뒤처리를 하게 된 누군가가 쏟은 물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이걸 ‘똥 치운다’고 표현한다. 소 우리에 가득 쌓인 똥을 삽으로 퍼내듯이 말이다.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이 된통 꼬여 처리에 애를 먹는 담당에게 ‘홍길동이가 싼 똥 치우느라 고생이 많아.’하며 어깨를 툭툭 쳐주는 게 나름의 위로 같은 거였다. 그런들 치워야 할 똥이 줄어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네 잘못이 아닌 걸 안다’는 의미를 담은 위로라고 하자.

나도 위로를 담은 어깨 툭툭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누군가는 진실을 알아주는구나 싶어 감동하며 인심 넉넉한 이들이 주변에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똥은 아무리 치워도 악취나 얼룩 같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라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반복해서 처리하다 보면 처음에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지는 흐려지고 그저 해결 담당인 ‘나’만 남게 되기 일쑤였다.

애초에 팀장님이 ‘어디서 잘못한 거야?’라고 물었을 때 무책임해 보일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일은 원래의 주인을 찾아갔을 테고, 난 달이 뜰 때까지 회사에 앉아 있지 않았겠지. 그럼, 왜 그렇게 못했을까? 평가 권한이 있는 팀장님이 잘못을 논하는 자리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는 건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이렇게 남의 똥을 치워야 하나 울적해 하던 내게 J가 말했다.

“그럴 땐 ‘그러게요’라고 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었다. 너무 뜬금없잖아. 그래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이거 왜 이런 거야? 어디서 잘못됐어?”

“아휴, 그러게요.”

“이거 안 된대? 왜 안 되는데?”

“그러게요, 왜 안 되지.”

너무 딱딱하지 않게 약간의 변주와 추임새만 넣었더니 어느 질문에든 착착 감기는 만능의 한 마디가 되는 게 아닌가. 이런 걸 왜 이제야 알려 주냐며 J와 한바탕 웃었다.

다음 턴부터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어물쩍 나에게 누구의 과오인지를 물어오는 팀장님에게 ‘아유, 그러게요.’로 대응하니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목표물을 바꿨다. 새로운 목표물에게 일을 넘기려 했으나 의사표현이 명확한 새 목표물은 ‘이건 길동 씨가 한 거예요.’라고 말했고, 일은 제 주인을 찾아갔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토록 앓았던가.

회사에서 본인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라는 좋은 조언이 많다. 회사도 사람 간의 일이니 명확하되 뾰족하지 않게 둥글리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그 둥글리는 것조차 남에게 피해가 될까 주저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이야 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작은 것을 하나씩 떠맡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되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잦은 야근으로 라이프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일쑤였고.

단칼에 잘라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해야 하나 싶어 울적할 즈음, J가 건넨 ‘그러게요’는 가득 찬 울분을 뚫어주는 시원하고도 실용적인 위로였다. 주인 없는 똥을 치우게 될지도 모르는 애매한 상황을 대비해 오늘도 연습해본다. 아유, 그러게요!


유송이 뿌려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단 뭐든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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