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민영 “재난을 해결하는 두 여성을 떠올렸어요”
전혀 안 맞을 것 같던 사람이라도, 어떤 일을 계기로 친해지거나 같이 행동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신기한 상황이 일상에서 가끔 일어나죠.
글ㆍ사진 김윤주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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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던 겨울, 얼른 봄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소설은 가만히 온기를 불어넣는다. 강민영 작가의 첫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은 선의를 지닌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재난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인경’은 하루아침에 ‘변온 인간’이 되지만, 그의 곁에는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직장 동료 ‘희진’이 있다. 소설을 쓰며, 작가는 2019년 세상을 떠났던 두 여성의 소식을 떠올렸다. 슬픔을 딛고 자라나 소설은 마침내 말을 건넨다. “우리 무사히 살아남아 안전한 봄으로 가자.”

소설가 강민영은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첫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을 출간했다. ‘변온인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두 여성이 재난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현재, 영화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팟캐스트 <월간 자영업자>로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봄의 따뜻함을 닮은 소설

온기가 필요한 시기에 맞춰 소설이 나온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일부러 계절감을 맞추려고 지난겨울에 출간했어요. 오늘은 햇빛이 따뜻한 게 조금씩 봄이 오는 것 같네요.

유례없는 전염병 때문에, 겨울이 유독 길었죠.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인공에게 닥친 재난이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글 쓸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출간하고 나니 정말 그랬어요. 주변에서도 시의성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물론 소설은 주인공 ‘인경’에게만 닥친 재난이긴 하지만요.

주인공 ‘인경’은 갑자기 자신이 ‘변온인간’이 됐다는 걸 알게 되죠. 아주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도 체온이 안 변하는데, 추위는 못 견뎌요. 특이한 설정이에요. 

소설에서 한 사람의 상황이 변하는데 그게 비현실적인 이유였으면 했어요. 사실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평소에도 날씨가 너무 추우면 겨울잠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설정은 SF적인데, 전개는 현실적이더라고요. 특히 회사 생활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제 일상을 보는 것 같았어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신저로 대화하고.(웃음)

얼마 전까지 회사 생활을 해서인지 실제 경험이 많이 반영되더라고요. 아직도 사내 메신저로 이상한 이모티콘 많이 쓰나요?(웃음) 조용한 사무실에서 메신저로 옆자리 친구에게 “오늘 팀장님 왜 그러냐” 하고. 다들 똑같은 것 같아요.

뜻밖에도 일상생활이 힘들어진 ‘인경’을 돕는 게 직장 동료 ‘희진’이잖아요.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는데, 인경이 변온인간임을 알게 되면서 급격히 가까워져요. 원래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서로를 도울 수 있지 싶더라고요.

전혀 안 맞을 것 같던 사람이라도, 어떤 일을 계기로 친해지거나 같이 행동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신기한 상황이 일상에서 가끔 일어나죠. 인경과 희진은 정반대의 성향이잖아요. 인경은 겨울이 힘든데, 희진은 더운 걸 싫어하니까요. 그런데도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같은 뱡항을 보게 된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예요.



누구도 다치지 않는 세상

‘작가의 말’에서 2019년 세상을 떠난 두 여성의 소식이 이 소설에 영향을 줬다고 고백했어요. 그들을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한 사건이었죠. 소설의 두 여성 인물을 보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들었어요.

한창 소설을 쓰고 있을 때,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죠. 한동안 정말 슬프고 우울했어요. 마침 제 소설이 여자 주인공 두 명이 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누구든 다치거나 죽는 사람 없이 안전한 곳에 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지만, 깊은 유대감을 나눴을 거라 상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소설 속 인경과 희진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요. 눈앞에 닥친 재난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면서요.

원래 재난 영화를 즐겨 봐요. 그중에서도 원인을 찾기보다, 닥친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습해나가는 영화를 좋아해요. 저도 성격이 좀 그래요. 원인을 파고들기보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잘 살아 있자 하거든요. 

인경과 희진 모두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 온도’랑 안 맞는 인물이잖아요. 회사 내에서의 소문, 미움 같은 것들에 한걸음 떨어져 있고, 굳이 분위기를 과하게 맞추지도 않고.

사실 제가 그래요.(웃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해 안 되는 일이 생기잖아요. 문제를 제기하면, 좋게 넘어가면 되는데 굳이 나서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다들 속으로 ‘원래 그런 게 어딨어’ 생각하죠. 그런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거고요.

둘의 우정이 사계절을 거치면서 깊어지죠. 계절감이 느껴지는 게 참 좋더라고요. 여름날의 제주도나, 더위를 잊기 위해 한강에서 마시는 맥주. 누구나 공감할 것 같아요.

여름을 참 좋아해요. 특히 야외 운동을 시작하고부터 날씨에 민감해졌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 어플 켜서 바람 방향부터 확인하거든요. 한강 따라 자전거도 타고, 그러다 보니 겨울보다는 여름을 즐기게 됐고요. 자전거 타는 게 취미인데, 소설 속 인경에게 적합한 운동을 생각하다 보니 달리기가 떠올라서, 퇴근 후 달리는 장면을 넣었어요. 

계절을 따라가다 보니 소설이 순식간에 읽히더라고요. 출퇴근길, 점심시간 언제든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잘 읽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소설을 오랫동안 안 읽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문장을 많이 다듬었고요. 최근 한국소설도 단편이나 경장편소설이 인기가 많잖아요. 아무래도 독자들이 짧은 호흡을 선호해서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영화 러닝타임 정도의 시간에 집중해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호흡으로 쓰려고 해요. 

잘 읽히는 이유 중 하나가 대상 독자가 넓어서인 것 같아요. 사전 지식이 없어도 주인공의 일상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타깃 독자를 의식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해요. 특히 10~20대 젊은 독자들이요. 어렸을 때 소설을 좋아했는데, 돌이켜보면 거의 40대 이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더라고요. 나이가 어릴 때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쉽게 찾아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 소설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요.



좋아하는 일은 끝까지 해요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죠. 첫 소설이라 각별할 것 같아요.

사실 원래 분량은 단편이었어요. 신춘문예를 목표로 했는데, 쓰다 보니 경장편 분량이 됐어요. 당시 다른 공모전에도 짧은 소설을 투고했기 때문에,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서 심호흡을 했어요. 강아지랑 산책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을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요. 될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거든요.

추천사를 쓴 강화길 소설가와의 인연도 있다고요.

제가 편집자로 일할 때, 작가님의 단행본 『서우』 작업을 맡았어요. 그걸 계기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이 소설을 쓰기 직전에 강화길 작가님의 소설 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거든요. 추천사를 부탁할 때, 맨 처음 떠오른 사람도 작가님이었죠. 

소설 발표 전에도, 영화 매거진을 만들고 영화평론도 쓰고 ‘부캐’가 굉장히 많네요.

그렇죠.(웃음) 잡지는 2007년부터 만들었으니 꽤 오래됐네요. 20대 초반에 종이에 스테이플러 찍어서 신나게 배포했던 게 기억나요. 다행히 폐간하지 않고 『cast』라는 이름으로 이어가고 있어요. 그에 비하면 소설 쓰기는 최근에 시작한 거죠. 



팟캐스트 <월간 자영업자>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내세요? 한번 시작하면 오래 끌고 가는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오래 할 수 있어요. 시작할 때, 언제까지 해야지 정해 놓고 하면 오히려 잘 안되는 것 같고요. 즐겁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됐어요. 조금이라도 열의가 있으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주도하게 되더라고요. 바쁘긴 하지만 잠도 충분히 자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차기작도 쓰는 중이고요.

벌써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한창 작업 중일 때도,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라서 다음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웃음) 다음 소설도 재난 이야기예요. 재난의 스케일이 더 커지고, 이번에도 여성 인물이 주인공이죠. 소설 쓰는 건 늘 즐거워서 계속 지금처럼 써나갈 것 같아요.



*강민영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영화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부디, 얼지 않게끔
부디, 얼지 않게끔
강민영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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