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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짓는 사람] 박지홍 봄날의책 대표 "존중하는 마음, 긴장하는 마음으로"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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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작가를 오랫동안 탐색하는 편이다. ‘잘 팔릴 책인가?’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작가가 잘 쓸 수 있는 글인가?’를 더 깊이 고민한다. (2021.03.02)


얼결에 시작된 출판 인생

“봄날의책은 믿음이에요.” 한 독자의 리뷰를 읽고 세 번째 ‘책 짓는 사람’의 주인공으로 박지홍 대표를 만났다. 2013년 4월 첫 책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시작으로 8년간 40권의 책을 출간한 봄날의책. 박지홍 대표는 “참 느리고 게으른 출판”이었다고 자평했지만 봄날의책을 각별히 아끼는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책 한 권을 만들 때 쓰는 정성과 애씀, 전문성을. 박 대표는 올해로 편집자 경력 28년을 채웠다. 푸른나무, 열화당, 솔출판사, 아카이브 등에서 13년을 보냈고 나머지 날들은 가끔은 출판사 기획자로, 대체로는 프리랜서 편집자(교정교열자)로 지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공부해서 그에 관한 좋은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정민, 안대회 선생의 모습일 듯한데요. 임형택, 박희병, 김명호 선생이 계신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몇 개월 동안 혜화동을 들락거리며 청강도 했는데, 어느 여름날 문득 자신 없고 막막해지더라고요. 당시 자취하던 집에 서점 주인이 사셨는데 그분이 자기가 아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구하는데 서류를 한번 내보라고 하시네요. 재미 삼아 주섬주섬 뭔가를 적어 냈는데, 면접을 보게 됐고 며칠 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1993년 여름, 얼결에 시작된 출판 인생이었다. 첫 직장인 푸른나무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도제식 훈련 대신, 선배 편집자가 작업한 것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상사의 지도 편달이나 간섭을 내켜하지 않는 기질과 잘 맞았다. 

“과감하게 원고에 손을 대고 흐뭇해하고 있으니까 어느 날 선배가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요. ‘박지홍, 지금 네 글 쓰는 거 아니야. 뭐 하는 짓이야?’라며. 참 순하고 다정한 선배셨는데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그러셨을까요? 그 후로도 빨간 펜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하지만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어서 적당히 멈추게 돼요. 그리고 편집자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자의 개성이 존중돼야 하니까요. 또 개입을 크게 해야 하는 글이라면 애초에 출간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 직장인 아카이브에서는 국내외 사회과학을 주로 다뤘다. 사회에 꼭 필요한 책들, 절실하게 뜨거운 책들이었다. 바로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의 싸움을 다룬 책 『사람을 보라』, 르포작가 희정의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었다.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주 분야를 ‘문학’으로 정했다. 시와 소설은 기존 출판사들이 워낙 잘하고 있어서 틈새라고 부를 만한 산문(에세이)을 내고 싶었다. 

“출판사 이름은 왠지 따뜻하고 따스한, 양명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그런 책들을 내고 싶다는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봄’, ‘봄날’이라는 단어는 꼭 들어갔으면 싶었고, 거기에다 이런저런 단어들을 조합해 보았어요. 봄날의뜰, 봄날의정원, 봄날의마당 등등. 그렇게 돌고돌아 결국 ‘책’에 이르렀고요. 그리하여 ‘봄날의책’이 됐습니다.”



독자의 기대와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1인출판사의 장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고, 그 결과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힘닿는 대로 마음껏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기꺼이 져야 한다. 박지홍 대표는 처음 원고가 들어왔을 때 전체적인 파악, 콘셉트를 궁리하고, 오랜 경력의 외주 편집자가 초교와 재교를 본다. 최종교와 보도자료 작성, 홍보 및 마케팅은 다시 박지홍 대표의 몫이다.

“마케팅이 책의 편집, 구성, 제작, 홍보 등을 두루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이라면, 저는 책의 ‘구성’ 단계에 좀더 힘을 쏟는 편입니다. 익숙하기도 하고요. 가장 그 책을 돋보이고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조합을 찾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데요. 특히 해당 책에 가장 어울리는 추천사, 발문, 해설 등의 조합에서요. 그동안 낸 책들 중, 『불안의 서』는 배수아와 김소연의 조합이 좋았고, 『아픈 몸을 살다』는 번역가 메이와 옥희살롱 김영옥, 전희경의 조합이 참 좋았고, 최근작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은 메이와 김금희, 박연준의 조합이 좋았던 것 같아요.”

봄날의책이 펴내는 책들은 디자인이 훌륭하기로도 유명하다.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 이유를 묻자 “어쩌면 자기 만족이 큰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적어도 저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스스로는 만족스러워야 하니까. 또 ‘봄날의책’에서 만든 책이라는 독자의 기대와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종이 하나를 고를 때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한 권의 책은 전체 레이아웃, 본문 및 표지 용지의 결정, 양장 여부, 사철제본 여부, 후가공 여부, 래핑 여부 등, 아주 많은 공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각각의 책에 가장 어울리는 재료들, 방식들이 있겠지요. 그에 대한 설명과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제작비(주로 표지 및 본문의 용지대, 후가공에서의 박작업)는 그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령 『불안의 서』는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어서, 최대한 가벼웠으면 싶었어요. 그래서 부러 양장은 하지 않았고, 당연히 사철 제본은 했고, 본문 용지로 가벼운 수입지인 바르니(60g)를 과감히 사용했습니다. 본문에 주로 사용하는 용지의 두 배 이상 가격이었지만, 애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듯하여 그렇게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책값이 좀 비싸졌죠.”

봄날의책은 그동안 공미경, 전용완 디자이너와 주로 일해 왔다. 두 사람은 각각 30년, 10년 이상 책을 만들어온 베테랑 디자이너다. 봄날의책에서 만드는 책들은 크게 보면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 스스로 자기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 되길 바랐다. 박지홍 대표는 아주 가끔 좀더 과감하고 거침없는 디자인을 제안하는데, 『달걀과 닭』, 『G.H.에 따른 수난』 등이 그런 의논을 통해서, 좀더 특별해진 경우다. 

“캐롤 앤 더피의 시집 『세상의 아내』는 표제작을 표지에 타이포로 구현한다는 원칙 아래, ‘세상의 아내’라는 제목이 특정 시에 머물지 않고 모든 시를 아우르는 제목이어서, 수록 시 전체를 표지 앞면 전부, 그리고 뒷면 전부에 백박으로 처리했어요. 디자이너한테 나중에 들어보니, 작업 시간은 꼬박 이틀, 비용은 170만원이었다고 하네요. 물론, 두 경우는 저희 책들 중에서 아주 특수한 사례이겠지만요, 그런 노력들이 눈 밝은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또 좀더 오래 그 책을, 출판사를 기억하게 하는 힘도 있었던 듯해요.”



작가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일까

2020년은 봄날의책에게 특별한 해였다.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이 출판인들이 꼽은 ‘올해의 책’이 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홍은전 작가는 2016년 『노란들판의 꿈』을 봄날의책에서 출간한 바 있다. 

『노란 들판의 꿈』이 나오고 나서 홍 작가님을 만날 때마다 ‘작가님은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작가님은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자길 ‘작가’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쓰고 싶은 글 딱히 없다고 어색해 하고 민망해 하셨어요. 아마도 시인, 소설가 등, 뭔가 ‘작가들’을 다른 과(科), 다른 행성 사람들로 여기셨던 듯해요. 그리하여 ‘저자 홍은전’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접고, 사는 모습이 참 좋아서 열심히 차 마시고 수다 떨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쩌다 작가님이 신문에 글을 쓰게 되셨고, 어쩌다 5년이 지나 한 권의 책으로 묶일 만큼 글이 모여서 자연스레 『그냥, 사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편집자로서, 독자로서 참 반갑고 고마운 사람, 고마운 책이에요.”

박지홍 대표는 저자를 찾을 때, 일단 독자의 마음으로 저자들을 만난다. 계약서부터 준비하는 경우는 없다. 책으로 만났던 저자, 행사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저자들에게 정중하게 만남을 청하고 그들이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핀다. 『아네모네』를 쓴 성동혁 시인의 경우도 그렇다.

“성동혁 시인과는 인연이 오래됐어요. 6년 전쯤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304낭독회에서 처음 뵈었어요. 낭독자로 나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데, 글도 좋았고 그날의 분위기 또한 너무 강렬했어요. 며칠 뒤, 독자로서 만나고 싶다고 청해서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몇 해 전 시집까지 내게 되었어요. 지나고 보니, 카페나 밥집 못지않게 서울대 어린이병원 병실에서도 자주 만났던 듯해요. 대개는 저자와 편집자, 그리고 가끔은 형과 동생의 관계, 그런 마음이었던 듯도 해요. 저는요.”

박지홍 대표는 우연히 마주친 글에 대한 처음 느낌을 신뢰하는 편이다. 거침없이 직진하는 글, 쿵 하고 마음에 충격을 주는 글,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잔잔한 글을 좋아한다. 그 글들은 대체로 정확하고 아름답다. 

“달리 표현한다면, 뜨겁거나 차갑거나 등 글에 온도가 있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등 글에 색깔이 있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등 글에 감정이 있거나 할 때입니다. 그런 글을 만나면, 주체할 수 없는 팬심이 솟아나, 만나기를 청하는 연락을 합니다. 그리고 잘 듣고, 잘 기억해 두었다, 그이한테 지금 가장 절실한 글, 또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지 찾아보고 제안합니다.”

박지홍 대표는 한 명의 작가를 오랫동안 탐색하는 편이다. ‘잘 팔릴 책인가?’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작가가 잘 쓸 수 있는 글인가?’를 더 깊이 고민한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긴장감을 주는 사람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기쁠 때는 독자들이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던 책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다. 지난해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이 예상보다 더 크게 사랑 받았을 때, 박지홍 대표는 조용히 안도하며 뜨겁게 기뻐했다. 코로나 시절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갖고 전국 곳곳의 독자들과 만났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 물러가면 꽃 피는 봄날에 서점 리스본, 옛따책방, 버찌책방, 전주의 책방들에서 은전 작가님을 모시고 그곳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에요. 어느 도시를 가든 그곳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곳, 가장 자유롭게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서점을 들르곤 하는데요.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차를 권하고 밥을 권하고, 도시의 보물 같은 곳들을 소개해주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분들이 전국의 서점에 머물고 계세요. 독자들이 주위의 동네 서점을 자주 들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전보다 한 뼘쯤 지성도, 관계도, 삶도 넓어지고 깊어질 거라 장담해요.”

28년차 편집자로서 편집자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출판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 특히 ‘권리’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는 일”이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긍심, 품위와도 통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교정, 교열의 전문성, 폭넓은 교양과 균형 잡힌 독서,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 등, 편집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차고 넘치지만, 누구도 줄 수 없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태도와 관점이 아닌가 싶어요. 하나의 방법으로 출판노조에 가입할 수도 있겠고요.”

좋은 편집자를 정의한다면 “늘 겸손하고 다정한 사람, 늘 의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글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 저자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더불어 저자에게 긴장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자는 맨 처음의 독자이자, 가장 애정 넘치는 비판자이자 조력자라고 할 수 있어요. 나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되, 내 글의 장점과 한계를 나보다 더 잘 바라보고 짚어주는 사람이 좋은 편집자가 아닐까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환희 어크로스 편집자를 추모하면서, 제주대학교 이소영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쓰신 글이 딱 그에 어울리는 듯해요.”

저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을까. 박지홍 대표는 똑같은 말을 남겼다. 

“편집자가 저자를 대하듯, 아니 그 이상으로 편집자를 존중하고, 또 그이에게 긴장감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아, 편집자만이 아니라, 디자이너, 영업자 등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최선을 다해 존중해 주셨으면 하고요. 또 자신의 글이, 관점이 현재의 최선이되, 언제나 완벽하고, 늘 맞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갖추었으면 좋겠어요.”


박지홍 편집자가 작업한 책들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김연수, 오은 외 지음 | 봄날의책)

‘봄날의책’의 이후 출간 방향이랄까 지향을 뚜렷이 담은, 씨앗 같은 책이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산문의 주제와 방향과 저자들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시작되기도 했다. 제주 ‘소리소문서점’의 서점지기들이 참 좋아하는, 그곳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일인용 책』 (신해욱 지음 | 봄날의책)

애정하는 시인의 산문집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이 통하여 뚝딱뚝딱, 신나서 한달음에 만든 책이다. 저자와 디자이너와 편집자 모두가 맘에 쏙 들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어떤 것인지 ‘발견’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현 지음 | 봄날의책)

함께한 책을 통해, 저자의 삶을 더 잘 알게 되고, 또 저자와 더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벗을 여럿 얻은 참 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또 시인의 나날이, 노동하는 생활인의 나날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김영옥, 이지은 외 지음 | 봄날의책 )

‘책’을 매개로 한 인연이 이어져, 새로운 책이 탄생한 경우. 『아픈 몸을 살다』에 추천사를 써주신 인연으로, 그리고 ‘옥희살롱’ 학생으로 살면서, 그이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에 공명하여, 고맙고 흔쾌한 마음으로 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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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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