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와 강연, SNS 등 채널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진을 선보이는 김규형 작가가 한결같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는 사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순간, 영원을 사로잡는 방법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카메라든 핸드폰이든 작은 수첩이든 노트북이든 상관없다. 기록하는 자가 누구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김규형 작가의 신간 에세이 『사진가의 기억법』 에서 그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사진가의 관점을 감성적이고 유쾌한 문체와 사진으로 선보인다.
첫 번째 책 『서울 스냅』이 사진집이었다면, 『사진가의 기억법』은 에세이집이다. 전작과는 어떻게 다른 책을 내고 싶었는가?
사진을 찍어온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글을 썼다. 하지만 뭐랄까.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집을 내기로 결정한 것도 사진을 찍은 지 10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전에는 상업 사진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제안들도 거절했다. 스스로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성향 같은 것이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글을 써왔지만 과연 내가 글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지금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순간이 왔다. 어떻게 보면 색다른 도전이고 어떻게 보면 나라는 세계의 확장이고 또 어떻게 보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뿐이다.
두 책을 만들 때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 한 장, 문장 하나를 신경 쓰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흐름도 신경 썼다. 같다면 같고 다르다면 다른 것은 『서울 스냅』은 사진을 글처럼 보여주고 싶었고, 『사진가의 기억법』은 글을 이미지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한 것들이 모여 큰 울림을 주도록 말이다.
제목에 ‘기억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무엇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기억이라는 단어가 김규형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것을 기억할 때 이미지를 캡처하듯 외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글자나 문자를 외우는 것보다 이미지를 외우는 것이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만나면 그때의 상황이나 장면을 저장하려고 노력했다. 책에도 썼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대부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서 사진과 메모를 이용한 기록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가끔씩 앨범을 뒤적거리며 예전에 써둔 글이나 사진을 보며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그것들이 영원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기록법으로 남은 것 같다. 기억은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이다.
사진가로서의 김규형과 작가로서의 김규형은 어떤 점이 다른가, 혹은 닮아 있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들면 사진과 글로 표현한다. 사진이 먼저일 때도 글이 먼저일 때도 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는 멋을 많이 부렸다. 단순하고 평범한 사진을 보정으로 과하게 만든 적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인데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글을 꾸몄던 적도 있다. 요즘은 담백한 사진과 글을 좋아한다. 충분히 덜어내도 괜찮은 것들 말이다. 조금 다른 점은 사진의 경우는 사물에게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고, 글의 경우는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를 얻는다.
사진집을 낼 때와 에세이를 낼 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작업 중에 특히 힘들었거나 소회가 남다른 기억이 있다면?
사진의 경우 자연스레 감정이 담긴다. 내가 굳이 넣으려고 하지 않아도 내 지금의 온도가 자연스레 사진에 담기게 된다. 글의 경우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떠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먹먹해진 순간들도 많다.
광고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사진작가로 전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런 결정에 후회한 적은 없는가?
광고와 사진은 닮아 있다.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갈 뻔한 것들을 발견해서 보여주는 것이 비슷하다. 이런 부분이 좋고, 이런 부분은 아름답다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식으로 어떤 것들의 장점을 발견해내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즐겁고 좋았다.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내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여기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는 또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그게 무엇이든 나만이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은 틀림없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자랑스럽다.
이번 신간에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프레이밍해서 저장하려고 하는 습관’이 본인의 직업병이라고 이야기한 구절이 있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역시 직업병의 일환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카메라가 예뻐서 들고 다닌다(웃음). 세상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 컬렉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간과 이미지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만나면 소장하고 싶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기록한다. 카메라는 물론 휴대폰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혹시 모를 순간을 대비해서 카메라를 늘 준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휴대폰으로는 찍었지만 카메라로는 한 장도 찍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있을 때도 있지만 상관없다.
사진을 찍는 결정적 순간에 시선을 돌리는 것을 사랑 고백하는 장면에 비유하거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삼겹살을 맛있게 구울 때처럼 조급해선 안 된다는 등 일상적이면서도 사진작가의 관점이 녹아 있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사진작가로서의 관찰력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맞다. 관찰력이 좋은 편이고 그것이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준다. 기본적으로 모든 대상을 넓게도, 아주 가깝게(클로즈업)도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나 주변 상황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다. 헤어 스타일이 바뀌거나 하는 등의 변화는 물론 표정이 좋거나 혹은 좋지 않을 때에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다. 누구보다 먼저 칭찬을 하기도 하고 먼저 위로를 하거나 배려를 해 줄 수도 있다. 또 시야가 넓기 때문에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주인공의 얘기 외에도 그 밖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게는 재밌는 글감이 된다.
카메라라고는 스마트폰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사진 잘 찍는 팁’을 알려준다면?
사실을 말하자면 『서울 스냅』과 『사진가의 기억법』에 들어가는 사진 중 반 이상은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도구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내가 찍고 싶은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이 가장 좋은 카메라이다. 그러니 스마트폰 말고 다를 줄 아는 것이 없다고(기술도 좋아져서 작은 카메라와는 큰 차이도 없다) 낙심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인 팁을 조금 알려주자면, 촬영 전에 꼭 렌즈를 닦고 수평수직을 맞춰 찍는 것이다. 내가 사물을 기억하는 법처럼 멀리서, 또 가까이서 찍어보는 것이다.
책 속에 수록된 사진을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을까?
삿포로에서 여행하며 정신없이 촬영을 하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중간에 알게 되어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역무원이 경찰서에 가서 보여주라고 써 준 쪽지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서 다행히도 지갑을 찾게 되었다. 아침에 잃어버린 지갑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찾았고 그날 하루종일 참 많이 고생했는데 그때 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편지는 173페이지에 있다.
이 책을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가?
나는 늘 틀리고 이상한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늘 평범하지 못해 문제였다.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관찰하며 지냈다. 그러다 뒤늦게 좋아하는 것이 생겼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큰 성과 없이 취미활동을 해왔고 즐거웠지만 그만큼 괴로웠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 뒤돌아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처음이라 서툴고 실수를 한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후회한다. 나처럼 지질하고 자주 틀리고 실수를 하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연, 전시를 통해 팬들을 만났을 텐데, 요즘은 그런 행사들이 많이 취소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사진을 소개하고 싶은가.
작년 봄에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전시를 진행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전시를 제안한 갤러리와 몇 번의 회의를 했다. 전시를 강행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그런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라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서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횟집도 드라이브 스루라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는데 우리는 왜 숨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드라이브 스루 전시를 기획했다. 건물 1층에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주차공간을 빌려 매일 사진을 한 점씩 돌아가며 전시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볼 수 있게 했다. 전시의 이름은 ‘거리두기’였다. 거리를 두기 위해 작품을 거리에 둔. 지금이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문화와 예술이 필요하다. 나름의 영리한 방법으로 내 생각과 철학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김규형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미련이 많고 이별을 싫어한다. 반대된 두 가지의 중간을 좋아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감정, 조용한 공간을 울리는 백색소음의 여운,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의 얼음물이 주는 미지근함……보통의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 취미이고, 인생은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들을 찾아내는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취미였던 사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캐논 플레이샷 특별상을 수상했고, 서울을 기반한 ‘서울 스냅’을 포함 서울 관련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외에도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삼성, 갤럭시, SK텔레콤 등 다양한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정갈하고 세련된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시와 강의를 통해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 스냅』, 『사진가의 기억법』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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