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의 저자 정혜승은 <문화일보> 기자에서 ‘다음’ 대외협력 담당자로, ‘카카오’ 부사장에서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변화를 모두 지켜봤다. 신문, 방송 등과 같은 언론을 중심으로 한 일방향 소통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는 정혜승은 “소통이란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맥락을 짚어내는 일이 필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쌍방향 소통을 위해서 정보 공급자는 무엇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인지, 취향, 성향 등에 따라 작게 나뉘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정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뉴미디어의 혁신과 현장의 고민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는 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부터 주류가 된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 방식까지 모두 점검하는 동시에 그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했던 고민들을 자세히 담았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청와대를 위해 국민청원을 만들면서도 이렇게까지 많은 청원을 받게 되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는 정혜승은 “홍보와 소통은 홍보인들 혹은 미디어 종사자들, 공보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판매해야 하는 상품이든 서비스든 혹은 나의 주장이든 모두에게 소통의 니즈가 있다”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홍보가 아니라 소통’을 이야기할 때 먼저 생각할 부분이 “매스컴의 시대 끝나고 있다”(26쪽)고 한 대목일 것 같아요.
언론사 기자로 일하다 인터넷 기업으로 움직였어요. 그곳은 뉴미디어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곳이었죠. 기자가 펜을 독점하던 시대가 있었고, 기자가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2008년, ‘아고라’, ‘블로거 뉴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제는 기자보다 시민 또는 전문가들이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제게도 이런 뉴미디어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언론에서 볼 수 없던 이야기가 현장에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미디어 생태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언론사는 시장의 위기와 신뢰의 위기에 한꺼번에 부딪혔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절박하게 여러 시도를 했고요. 마침 해외 언론들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세계적으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가 있는 것이라면 그에 맞춰 다른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그래서 꾸준히 해왔던 거예요.
그게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이런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거든요.
사실은 이를 모색하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어요. 언론사, 통신사, 방송사, 인터넷기업, 학교 등 다양한 단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공부도 열심히 했죠. 그러다 2016년 ‘트레바리’에서 ‘뉴미디어클럽’을 8개월 했는데요. 2030 세대가 바라보는 미디어의 혁신과 도전은 또 다르더라고요. 실은 그때 이미 이런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2017년 청와대에 갔고, 2019년에 청와대를 나온 뒤 미디어 환경의 변화, 뉴미디어의 혁신, 향후 미디어의 지향점 등을 어떻게 책에 담아낼지 본격적으로 고민을 했죠. 그러다 보니 저의 25년 사회생활을 종합한 책이 나온 셈이에요.
2017년 뉴미디어 비서관으로 청와대에 합류했을 때에도 이러한 고민을 안고 계셨던데요.
지금까지 없던 방식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제안을 받았어요. 다르게 하고 싶다고 하는데,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도 알고 있고, 토론도 많이 했는데 그렇다면 실전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죠. 직접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떠든들 뭐하겠어요.(웃음) 그래서 간 거고요.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께서 “양 날개 소통을 할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한쪽에서 언론과의 소통을 한다면 그 외에 국민과 직접 하는 소통도 할 것이라고요. 그래서 ‘홍보수석’에서 ‘국민소통수석’으로, 조직 이름도 바꾸었다는 거였죠. 사실 정부도 블로그, SNS 등 열심히 많이 했어요. 그러나 거기 댓글이 달린다고 쌍방향 소통은 아니죠. 그것 역시 한때는 아주 힙한 것이었지만 그런 시절이 지나가면서 다른 방식의 소통을 고민한 거였어요.
“이제 검색이 아니라 공유가 관건인 시대”(191쪽)라고 한 말이 떠오르네요.
포털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검색에서 노출이 많이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검색 최적화 업체도 많았고요.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갔어요. 이제는 검색보다는 공유예요. 소셜미디어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공유되느냐를 봐야죠. ‘있어빌리티’라고 하죠? 공유가 되려면 정보가 있거나 감동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웃기는 것 중 하나는 해야 해요. 그런데 제일 공유가 안 되는 게 정부 콘텐츠잖아요. 그 어려운 걸 도전해야 했던 거죠.(웃음)
게다가 사람들에게는 들여다 봐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요.
이제는 기존 언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보도들을 국민들이 안 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요. 또 공론장을 고민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유권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고, 유권자가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부든 기업이든, 누구든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야 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예전처럼 모여있질 않아요.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끝났으니까요. 이제는 마이크로, 조각조각 흩어져있죠. 연령대 별, 젠더 별, 직업 별, 취향 별로 모두 나뉘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대 테러 이슈처럼 60대가 좋아할 뉴스는
공론장으로서의 국민청원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실에 가서 한 첫 프로젝트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국민청원을 만들었고요.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인증을 간편하게 한 거라고 생각해요.
청원을 만들 때 가장 걱정했던 건 사람들이 올까, 하는 것이었어요. 카카오나 네이버도 망한 서비스 엄청 많아요.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곳에서도 안 되는 서비스가 있으니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건 아주 큰 도전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청와대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올까 고민이 많았죠. 세월호 때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한 적이 있잖아요. 저도 참여를 했었고, 6백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는데 정부에서는 답이 없었어요. 그 기억이 있어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게 청원에서 아주 중요했어요. 더구나 인증은 정부 사이트를 안 들어가는 가장 큰 이유잖아요. 인터넷 기업에서는 UX(이용자 경험, User Experience)가 엄청 중요해요. 저는 정부 홈페이지도 UX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올렸으니 너는 보아라, 가 아니라 ‘너무 좋은데?’ 라는 경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청원을 했을 때 효능감이 있었으면 했다고도 했죠.
청원을 하는 행위는 공감과 지지, 응원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마치 팬덤처럼 말이죠.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서명을 할 때는 이 행위가 조금이라도 여론을 만들고, 관심을 받게 해서 뭐라도 되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잖아요. 서명을 하건 말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면 하고 싶지 않겠죠. 그러면 청원을 했을 때 정부가 답을 해야 하는데 이 답이 되게 괜찮아야 해요. 기존에 있던 정부나 기업의 공식적 답변은 아주 정제되어 있잖아요. 그런 걸 들으려고 청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관, 수석이나 비서관이 직접 답을 하도록 한 거예요. 청원을 다 들어줄 순 없지만 설령 안 된다 하더라도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이분들이 답을 하게 하면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방식도 서면 답변이 아니라 영상으로 답하도록 했죠.
책에서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누가 답할지 검토하고, 어떤 답을 내놓을지 여러 유관 부서가 협의하는 과정도 자세히 보여줬는데요. 그 하나 하나가 쉽지 않은 과정이더라고요.
대개 해결이 왜 안 되느냐고 하지만요. 해결이 잘 되는 문제는 사실 많지 않아요. 다만 그 문제를 정부가 인지하고, 책임 있는 분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입장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답을 못할 청원은 없는 거죠. 안 되면 안 된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으니까요. 사실은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되는 게 없으면 왜 청원을 하느냐, 청원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얘기를 하는데요. 온라인의 거의 모든 것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해요. 오프라인에 있는 갈등과 분열이 청원에 나타난 것뿐이죠. 청원이 문제를 조장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청원을 계기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청와대뿐 아니라 미디어, 국민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고요. 공론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하잖아요. 더 좋은 공론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곳이 역할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 해도 끝내 바뀌는 데 도움이 되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에 국민이 직접,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효능감을 준다고 믿는다.(중략) 청원해봐야 별 소용 없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에 맞춰 뭔가 해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게 정부의 피드백이라면, 그걸 활용하는 건 또다시 국민의 피드백이다. 이게 소통이다.(298쪽)
청원 내용을 분석해보니 여성, 인권, 동물 등의 키워드가 많이 등장했다고 했어요. 말하자면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반영하는 키워드이기도 할 거예요.
미디어는 그렇지 않지만 청원을 보면 국민들은 같은 문제도 지치지 않고 계속 제기하거든요. 빅데이터를 돌려보니 인권, 성평등 이슈가 너무 많아요. 그렇다면 그 문제를 잘 생각해봐야죠. 책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어요. 한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환경운동 하는 그레타 툰베리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을 하는데요. 거기 참여해 등교 거부를 하는 학생이 수십만이잖아요. 이제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그런 것에 관심 없는 기업들을 좋아하지 않는 거죠. 나이키 등이 광고에서 젠더 감수성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요. 감각이 좋은 기업들은 이미 다 하고 있어요. 저희가 정부 콘텐츠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몇 번 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실은 정부도 빨리 학습해요.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느리지만 분명하게 있는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요.
변화하고는 있는데 변화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속도가 너무 느린 거죠. 저도 연사가 남자로만 구성되어 있는 포럼을 보면 별로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아직도 그런 경우가 아주 많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요. 정보 공급자 입장에서 이 부분을 많이 생각해야 하는 거죠. 내가 알려주는 정보가 중요하니까 보라는 식이 되어선 안 되고, 정보 소비자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조금 더 고민하면 풀리는 문제이기는 하니까요. 실패 사례가 엄청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된다고 봐요.
그밖에 청와대 시절 잘했다고 평가할 만한 것이 있다면 뭘까요?
인스타그램 사례를 종종 얘기해요. 반응도 좋고, 피드백도 좋았는데요. 그 이유는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에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웃음) 기업도 마찬가지고요. 고위 임원들이 인스타그램을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국민들이 인스타그램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야죠. 저는 인스타그램 운영 업무를 20대 직원에게 맡긴 후 “허락 받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놀아”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담당자가 정말로 놀아서요. 어떤 게시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사님 뚠뚠”밖에 없는 거예요.(웃음) 그렇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잘한다고만 했죠. 이 에피소드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요. 세상은 바뀌었고, 대중은 저기에 있는데 우리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아직 잘 모르니까 제발 알아주세요, 라는 거예요. 뭔가를 바꾸려면 위에서도 알아주셔야죠.
팩트에 대한 요구
언론이 신뢰도의 위기에 부딪혔다고 했잖아요. 이에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올드미디어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아닌데요. 잘하는 곳이 있어요.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정부의 팩트체크가 있거든요. 바이럴이 돼요. 사람들이 공유를 하는 거예요. 팩트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거죠. 제대로 된 팩트에 대한 대중의 갈증과 요구가 있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돌파구를 찾는 전략으로 이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미디어를 안 보고, 뉴스를 안 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밀레니얼도 자신들에게 맞는 뉴스가 있으면 봐요. 세대마다 사정은 달라도 이렇게 정보가 많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믿고 볼 수 있는 데가 있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이때 기자의 브랜드를 키운다면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죠.
매체 브랜드도, 기자 브랜드도 중요해요. 신뢰를 되찾는 것이 지금은 우선일 것 같거든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으니까요.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40개 나라의 언론 신뢰도를 발표하는데 올해 발표 자료를 봐도 또 꼴찌예요. 그러니까 신뢰를 되찾는 것을 기회로 봐야 해요.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으로 갈 때 고민을 많이 했잖아요. 그럼에도 가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어요?
딸과의 토론이 기억에 남아요. 한국 사회의 누구나 비슷할 텐데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아이들 세대를 위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잖아요. 그런 상황이니까 제가 딸에게 청와대에서 일하는 것이 딸 세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택할 수 있는 괜찮은 선택 같다고 말을 했어요. 그런데 딸이 “청와대에 가서 일하는 것과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왜 연결되는 일이야?”라고 되묻더라고요. 거기에 답을 한 것이 촛불을 거쳐 탄생한 지금의 정부가 잘 되는 것이 그래도 이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심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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