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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사람들이 기절하겠지? 상상하며 만든 그림책”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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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면 그릴 때마다 ‘이거 사람들이 보면 기절하겠지?’하고 혼자 키득키득 거리면서 폭주하듯 만들었어요.(2020. 07. 06)


처음 그림책을 만들던 시절엔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 마음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지금은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이지은 작가의 다섯 번째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작가가 즐겁게 작업한 시간의 가치가 극대화된 그림책이다. 따뜻한 동화 같기도 하고, 웃기는 만화 같기도 한 이야기는 읽는 순간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아무 근심걱정 없는 평화로운 마시멜롱 마을. 매일 맛있는 열매를 먹고 뒹구는 게 중요한 일과인 마시멜롱들 앞에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커다란 털숭숭이가 나타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힘을 합치지만, 어떤 공격도 털숭숭이에게는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털숭숭이는 정말 마시멜롱을 잡아먹기 위해 마을에 온 걸까? 귀여운 그림보다 더 귀여운 이야기. 그림책의 반전을 보고 나면 마법에 걸린 듯 온종일 이 말을 되뇌게 될지 모른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냐무’에서 시작된 이야기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실감하세요? 

전작 『빨간 열매』를 출간할 때까지만 해도 거의 무명작가였기 때문에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게 좀 얼떨떨해요.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다섯 번째 그림책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끈기가 없는 편이라 꾸준히 해 온 운동이나 취미생활이 거의 없는데 유일하게 그림책을 만드는 일만큼은 계속 해왔거든요. 한 번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 보면 잘 버텨온 것 같아요. 

‘용감한 차차’라는 제목의 더미북에서 출발한 그림책이라고요.

맞아요. 더미북을 만들 당시에 ‘군상’ ‘무리 속의 갈등’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어떤 갈등이 일어나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이기심, 변하는 마음 등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다 그리고 나니 굉장히 재미가 없더라고요.(웃음) 마치 ‘정답은 이거야’라고 제가 정의를 내리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묵혀두었던 이야기였죠.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 시켰나요? 

저는 그림책을 구상하면 남편에게 제일 먼저 보여줘요. 저에게는 남편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남편이 ‘용감한 차차’를 보고는 재미없다고 해서 그냥 넘겨뒀는데 어느 날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다가 간판 하나를 보게 됐어요. 누군가 직접 쓴 간판에 다른 건 다 지워지고 ‘냐무’라는 글자만 남아있더라고요. 그걸 보는 순간 너무 재미있어서 ‘저걸 이야기에 녹여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를 타고 가면서 계속 마시멜롱들처럼 “냠냠냠 냐무냐무냐무”하고 말을 뱉어봤어요. 그러다 ‘냐무냐무’를 ‘너무너무’와 접목해 말의 오해를 만들어보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죠. 당시에 남편도 재미있다고 말했었는데, 책이 나오고 나니 그날의 일을 기억 못하더라고요.(웃음)

남편의 조언이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편인가 봐요. 

네, 엄청 단호하고 제 일에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아이언 맨 같은 것에만 열광하는 대중의 신이라서(웃음) 도움이 많이 돼요. ‘이파라파 냐무냐무’의 더미북을 보여줬을 땐 다른 더미북을 볼 때와 제스처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진짜 재미있구나’ 싶었어요.



마음 속 마시멜롱을 꺼낼 수 있는 용기 

재밌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책인 만큼 신나게 작업했을 것 같아요. 

너무 즐거워서 컨트롤이 안 될 정도였어요. 사실 전작 『종이 아빠』와 『할머니 엄마』는 연구해서 나온 책이거든요. 기승전결, 에피소드 등을 촘촘히 생각해서 만든 거였죠. 그런데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그냥 후루룩 나온 이야기라 그림 그리는 내내 정말 신났어요. 빨리 세상에 내놓고 싶어서 두근두근하고(웃음) 한 장면 그릴 때마다 ‘이거 사람들이 보면 기절하겠지?’하고  혼자 키득키득 거리면서 폭주하듯 만들었어요.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반전을 미리 공개할 수 없어서 아쉬움도 있었을 텐데요.

맞아요. 책이 나오면 드디어 내가 원하던 털숭숭이의 귀여운 모습을 팡! 하고 보여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사실 표지에도 털숭숭이가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어요.(웃음) 

왜 마시멜로를 주인공 캐릭터로 정했나요?

편집부에서 주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작했어요. 처음에는 마시멜롱이 그냥 그래픽적인 이미지의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전작 『팥빙수의 전설』을 보신 편집자님께서 음식을 캐릭터로 잡아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음식을 이야기에 대입해보다가 우연히 마시멜로가 떠올랐는데 말캉말캉하고 둥그런 모습이 귀엽고 잘 어울렸어요. 

주인공 털숭숭이는 반려견 ‘쿵이’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라고요. 

네, 쿵이는 제주도에서 온 유기견이에요. 구조 당시에 너무 아팠는데 제주에선 치료가 어려워 서울에서 임시보호를 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마침 제주에 놀러 갔을 때 쿵이와 마주쳤는데 실물을 보고 첫 눈에 반했어요. 그래서 임시보호를 하다가 너무 사랑에 빠져서 입양을 했죠. 그땐 쿵이가 어렸기 때문에 얼마나 클지도 모르고, 제가 과연 키울 여력이 있는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또 쿵이를 미국의 한 협회에서 데려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상황이라 저는 온전히 임시보호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못 보내겠더라고요. 그래서 쿵이를 구조하기 위해 쓴 모든 비용을 제가 지불하고 데려왔어요. 사실 이렇게 클 줄 몰랐어요.(웃음) 덩치가 커서 처음 본 사람들은 무서워하는데, 사실 너무 순하고 소심한 아이예요.

쿵이로 인해 주민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요. 

쿵이의 덩치만 보고 몇몇 주민이 불쾌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셨거든요. 그런 분들을 마주치다 보니 제가 한동안은 사람들을 혐오하기까지 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이 저를 보고 불편하다고 느끼듯, 저도 그랬던 거죠. 나아가 인성까지 의심하면서 주민들을 피했는데, 쿵이를 소개하고 책임감 있게 돌보겠다는 전단지를 주민들에게 나눠드린 뒤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결국 제가 몇 명의 사람들로 인해 갖게 된 작은 편견을 사회적 편견으로 키웠던 거예요. 그때 내 안의 마시멜롱 하나가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책을 보시는 분들도 마시멜롱이 전하는 메시지를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면에 마시멜롱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면서 편견이 생길 때 그걸 꺼내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작가의 말에서 ‘여러분 마음 속의 털숭숭이는 무엇인가요?’라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작가님 마음 속 털숭숭이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죠. 얼마 전에 ‘편견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쓴 후기를 봤어요. 그런데 문득 ‘편견이 정말 나쁜 건가? 내가 이 책을 편견이 없어지길 바라면서 쓴 책인가?’라고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편견은 생존을 위한 본능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쿵이만큼 큰 개를 보면 저절로 뒷걸음질을 칠 만큼 무서워요. 하지만 견디는 거죠. 그 개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섭지 않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비단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죠.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땐 자연히 거리를 두게 되잖아요. 사실 편견은 나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 중 하나인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파라파 냐무냐무』의 수많은 마시멜롱들이 내 마음에 사는 원소 같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편견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그게 오해일 수도 있으니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이야기해주는 마시멜롱이 하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막연히 ‘편견을 없애자’가 아니라, 나에게 수많은 편견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대신 ‘정말 그런가?’라고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아는 하나의 마시멜롱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시멜롱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사는 여유를 전하고 싶었고요. 

 털숭숭이가 나타나기 전 마시멜롱 마을은 정말 평화로워 보여요.  

마시멜롱 마을에는 천적이 없고 먹을 것도 많거든요. 계급도 없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서 이 아이들은 천성이 게을러요.(웃음)  

책을 보면서 털숭숭이는 과연 어디서 온 아이인지 궁금했어요. 

마시멜롱의 땅 지도를 보면 하나의 대륙이 둥둥 떠 있고 나머지 면은 다 물이거든요. 물 바깥에 뭐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는 미지의 세계인데, 털숭숭이가 수영을 너무 잘해서 물질하고 놀다가 마시멜롱 마을까지 흘러온 거예요.(웃음) 사실 최종 장면은 털숭숭이가 다시 가족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전체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디테일인 것 같아 편집 과정에서 빠졌어요. 숭이가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텅숭숭이는 마시멜롱 마을에 그냥 놀러온 거예요. 

작가님의 그림책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아요. 한 페이지에 여러 장면이 있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라고요. 이런 작업 방식을 선호하세요? 

예전엔 피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선호하는 작업이에요. 사실 『빨간 열매』를 그릴 때까지만 해도 한 페이지에 여러 이야기가 보이는 게 싫었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재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게 제 부족한 그림 실력 때문인 것 같았거든요. 구구절절 칸이 나누어진다는 건 그만큼 함축적으로 그리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팥빙수의 전설』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생계형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땐 거의 컴퓨터를 이용하는데, 그림책을 그릴 땐 이상한 고집을 부려서 늘 수작업을 했거든요. 처음으로 컴퓨터로 그렸던 게 『팥빙수의 전설』이었어요. 사실 내 이름으로 출간하는 책을 수작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건 저한테 큰 도전인 동시에 굉장히 중요한 것 하나를 겸허히 내려놓는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작업 방식을 바꿨더니 독자들의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웃음) 행간이 나누어진 이야기에 재미있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괜한 고집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수작업을 하면 수정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거든요. 성향에 맞지도 않는 걸 잡고 있느라 힘들었는데, 컴퓨터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제 이야기를 훨씬 편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파라파 냐무냐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뭔가요? 

마시멜롱들이 너른 벌판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열매를 먹는 장면이요. 제일 힘들게 그려서인지 그만큼 좋아요. 제가 책을 출간하고 “앞 장의 작업들이 축적되며 뒤로 갈수록 그림 실력이 늘었다”고 종종 말했거든요.(웃음) 실력 상승의 시작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그 들판의 마시멜롱 그림이에요. 마치 이 세계를 규정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될 거야’라고 말하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즐거운 작업을 해요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줄곧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서른 즈음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림책 공부학교 모임을 다니며 더미북 만들기나 그림책 읽는 방법 등을 훈련했죠. 사실 전에는 업무적으로만 텍스트를 대했고 그림책의 정서를 깊이 느끼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모임을 통해서 그림책이 가진 느낌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계속 아이디어를 모으고 더미를 만들고 그랬어요. 

첫 책이 나왔을 때 어땠나요? 

의외로 실망스러웠어요. 너무 보여주기 식 이야기인 것 같더라고요. 나오기 전엔 몰랐거든요. 그저 ‘최상의 책을 보여줘야지’라는 마음뿐이었는데 막상 출간된 걸 보니 쉼표가 없었어요. 이야기를 전달할 땐 가끔 쉬어가는 부분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죠. 

동물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빨간 열매』 『팥빙수의 전설』 『이파라파 냐무냐무』 모두 커다란 동물이 나오는데요. 

맞아요. 저는 크고 소심하고 겁 많은 존재들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있어요. 사람도 덩치가 큰데, 순수한 모습을 보면 막 좋아하게 되거든요. 그 마음이 조금씩 쌓이나 봐요. 『팥빙수의 전설』에 나오는 호랑이도 사실 할머니를 잡아먹는 캐릭터인데 무섭기보다 귀엽고 익살스럽잖아요. 제가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동물들의 겁쟁이 캐릭터는 정말 거부할 수가 없어요.(웃음) 

작가님도 그림을 그리기 힘든 순간이 있으세요?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작업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 멈췄던 시간은 별로 없어요. 한 번 이야기에 몸을 실으면 탄력이 붙어서 쭉 진행하는 편이라, 작업 과정에서 크게 헤매지 않는 것 같아요. 

동료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내놓으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만 제 자리에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건 그냥 일상이에요. 제 하루의 디폴트라서(웃음) 슬럼프라고 할 수가 없어요. 문신으로 새긴 것처럼 늘 제게 붙어있는 감정이죠. 그런데 질문을 듣고 보니 부족한 실력과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게 신기하네요. 보통 그런 마음이 들면 ‘다 때려 치워야지!’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만 하잖아요. 물론 그런 말을 내뱉은 적은 있지만, 진짜 그만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이 더러운 세상! 그래도 내 책이 더 재밌어’하면서 계속 작업해요.(웃음)

평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정리하세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먼저 아이패드를 켜고 필기 앱에 쓱쓱 그려둬요. 이야기가 생각날 땐 아이디어만 저장해두는 계정에 써놓고요. 

SNS에 『이파라파 냐무냐무』 후기가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다면요.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본 후기인데, 어떤 아이가 책을 보고 꺄르르 웃으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의 영상을 아이 어머님이 찍어서 올리신 거예요. 그걸 매일 봐요.(웃음) 좀 우울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들어가서 그 영상을 보고 힘을 얻어요. 그리고 어떤 분은 그림책에 대한 전문적인 포스팅을 꾸준히 올리시는 분인데, 다른 그림책들은 어떤 점이 좋은지 자세히 쓰셨으면서, 제 책에는 ‘중독성 갑’이라는 네 글자만 써두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와 좋다, 이거면 됐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책을 그릴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뭔가요? 

예전엔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잘 포장해서 최대한 독자를 설득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내 안에서 나온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들려줄까, 편하게 들려줄까’를 먼저 생각해요.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그냥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마음에 변화가 많이 생긴 거네요. 

맞아요. 첫 책을 그릴 땐 실력을 검증 받고 싶었어요. 마치 학교에 입학한 첫 날, 모든 아이들에게 나를 알리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였죠. 내가 그림책을 그리며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사람들이 날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어’라는 외부의 평가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던 거예요. 지금은 제가 즐거운 작업을 해요. ‘내가 이만큼 즐거우니 보는 사람들도 즐겁겠지?’라는 생각으로요. 

작업하는 과정이 전보다 훨씬 재밌겠어요.

네 정말 그래요. 제가 작품이 풀리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걸 ‘영감님이 오신다’고 하는데 이전 작업들이 즐거웠던 만큼 ‘앞으로는 영감님이 안 오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생겨요. 사실 지금 진행하는 더미북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어요. 

영감님이 아직 안 오셨나요?(웃음)

아직 안 오셨어요.(웃음) 요즘은 영감님을 기다리는 일이 가장 힘들어요. 사실 『팥빙수의 전설』도 처음에는 되게 슬펐거든요. 첫 더미는 할머니가 손녀에게 주려고 팥죽을 품고 눈보라가 치는 길을 뚜벅뚜벅 걷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내용이었어요. 결말도 얼마나 슬픈지 몰라요. 호랑이한테 팥죽을 다 빼앗기고 손녀도 못 만난 채 저 멀리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끝나거든요. 그런데 문득 할머니 캐릭터에 대한 의심이 들었어요. ‘내가 원하는 여성상은 뭔가? 나는 이런 할머니를 원하나?’라고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요. 덕분에 지금의 눈썹 진한 할머니가 탄생한 거죠. 그런데 할머니 캐릭터가 바뀌고 나니 온 세상이 다 바뀌는 거예요. 지금은 독자에게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아요. 보면서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독자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팥빙수의 전설』을 출간하고부터 표현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사실 예전에도 분명 존재했던 분들인데 제가 이전까지는 독자를 그저 수치로 봤던 거예요. ‘내 책은 왜 이거밖에 안 팔리지?’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팥빙수의 전설』을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는 독자님들이 『종이 아빠』를 비롯해 제 전작들도 가지고 계시는 걸 보고 ‘이 분들이 그림책을 보호해주는 아래에서 내가 살았구나. 그동안 그걸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들이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수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올려주시는 후기 포스팅 하나가 저뿐 아니라 많은 그림책 작가들에게 내일의 더미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그러니 책을 보고 즐거우셨다면 그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실제로 후기를 매일 찾아보신다고요. 

네, 사실 매일 보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봐요.(웃음) 너무 좋아요. 더 많이 표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파라파냐무냐무
이파라파냐무냐무
이지은 글그림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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