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현아 저자는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이어오며 학생들과 200여 권의 창작 그림책을 탄생시켰다. 『그림책 한 권의 힘』 에는 이들이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는지, 그것을 끄집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그림책 수업 매뉴얼이 담겨있다.
그림책을 창작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이현아 저자는 ‘자기표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림책 수업에 있어 읽기가 들숨이라면, 표현은 날숨이다. 읽다 보면 내 안에 피어오른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진다. 읽기와 쓰기가 들숨과 날숨처럼 건강하게 선순환 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읽기와 쓰기가 선순환 하면서 창작을 향할 때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쌓인 것은 흘러 나간다. 성장은 그 사이에서 일어난다.”
자기표현의 경험이 어떻게 아이들을 성장시키는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현아 저자는 11년차 교사로 현재 서울홍릉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2018년에 ‘학교독서교육분야 교육부장관상’과 ‘제5회 미래교육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에서 직무연수 강좌 ‘읽고 쓰는 만드는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강연을 통해 선생님들과 만나고 있다. EBS <미래교육 플러스>, <교육현장 속으로> 등의 프로그램에서 독서 교육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한 달에 한 권씩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예스24 어른의 그림책장’ 코너에 추천하고 있다.
이미 아이들 안에 이야기가 있어요
처음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이들의 말, 글, 그림이 사라져버리는 게 안타까우셨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아이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 같아요. 자신이 어제 썼던 글, 그렸던 그림에 미련을 갖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것들이 그냥 사라지는 게 되게 안타까웠어요. 저는 그걸 붙잡고 싶었고, 잘 모아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어떤 맥락이 있는데? 엮으면 하나의 작품이 되겠는데?’ 하는 아이디어가 생겨났고요. 우리가 좋은 영화나 책을 보면 같이 보자고 알려주고 싶잖아요. 저도 주변의 누구나 붙잡고 아이들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림책이 작은 미술관이라고 생각해요. 이 안에 글과 그림이 다 들어가고, 움직일 수 있잖아요.
수업 시간 외에도 아이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글과 그림을 보여줬다면서요?
조금만 관심을 보여줘도 아이들이 계속 가지고 와요.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빨리 책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가지고 오고요. 아이들이 온라인 카페 같은 데에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담아서 글을 쓴다고 하는데, 교실에서는 으레 국어시간에 쓸 법한 글만 쓰고 있는 거예요
‘학교용’ 글이 따로 있는 거죠.
그렇죠. ‘누가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써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면서, 학교에서도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그런 경험을 했겠지만, 학교에서는 8시부터 2시 반까지 ‘학교 모드’로 경직돼 있다가 그 이후에 내 세계를 찾잖아요. 12년을 그렇게 살아야 되니까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저도 괴리된 느낌이 너무 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그걸 교실로 가져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들 마음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마냥 아름답고 귀엽기만 한 건 아니었죠?
맞아요. 그게 의외였어요. 처음에 만든 그림책이 『여우의 꿈』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나온 것도 너무 신기하고 벅찼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옮기고 5학년 아이들을 만나면서 기대한 바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던 거예요. 세 번째로 만든 책이 『학사모의 질문』이었는데 사포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저한테도 되게 의미가 큰 작품이었고 ‘내가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사포 세대라는 단어도 모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미 저보다 많이 자료를 접하고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고, 온도차를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 단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저도 온도차를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봤던 거죠. 『학사모의 질문』을 만들면서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한 명 한 명 발견하는 기쁨과 놀라움이 되게 컸었어요.
그 책들이 또 다른 창작을 이끌어내기도 했어요.
만약에 『여우의 꿈』을 샘플로 제시했으면 아이들이 동화 비슷한 걸 만들어냈을 거예요. 그런데 『학사모의 질문』, 『솎아내기』 같은 작품들이나, 또는 본받을 만한 어른의 얼굴이 없어서 얼굴 없는 아이에 대해서 쓴 이야기를 보여주니까 ‘저런 걸 써도 되나?’ 하면서 그냥 생각만 하고 말 법한 이야기도 가지고 와서 나누게 되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게 나오는 게 아니라 징검다리처럼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있던 사례들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갖고 있던 세계들이 점점 연결되면서 ‘여기에서 내 이야기를 해도 이상한 아이 취급 당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다양한 책의 형태 중에서 ‘그림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눈뜨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저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많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하나의 장면에 담아야 되더라고요. 글로 쓰면 입체감이 살아나지 않고 밋밋하고 싱거워지는 느낌이었어요. ‘글과 그림이 서로 주고받는 의미를 잘 살리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살아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어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엄두를 못 냈죠. 아이들이 그림책을 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여우의 꿈』을 만들면서 ‘이미 아이들 안에 이야기가 있구나’ 싶었어요. 제가 뭘 가르쳐서 서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부분이 크다기보다는, 이미 아이들 안에 있는 것들이 종이 위에 담기는 느낌이었어요.
첫 창작 그림책 『여우의 꿈』의 경우, 아이들과 점심시간에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만드셨다고요.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일에 재미가 붙었을 때였어요.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과 교실이 분리돼 있던 때도 있었는데요. 책을 읽다가 ‘내 집 앞마당 텃밭을 쑥대밭으로 두고서, 뒤뜰에서 가꾸는 장미 한 송이를 애지중지하는 삶’에 대한 구절을 봤어요. 앞마당의 텃밭이 내 생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중요한 건데, 그걸 더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교실로 가지고 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캔버스에 그림 그리기를 해본 거예요. 유화 물감은 마르기 어려우니까 아크릴 물감으로 해보고, 나이프가 없으니까 아이스크림 막대로 해보고요. 제가 좋아하는 걸 수업에 접목해서 하니까 제 눈빛도 달라지고, 아이들도 너무 즐겁게 참여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알아가게 됐어요.
많은 활동 중에 하나가 그림이었나요?
제가 배웠던 플루트를 가지고 오기도 했고요. 아이들이 자기가 연주할 수 있는 리코더나 플루트를 가지고 와서 쉬운 동요부터 같이 연주해보고 그랬어요. 그런 재미에 빠져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림이었어요. 그림 좋아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림책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자기만의 색이 있으니까 그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예요. ‘선생님, 이 여우는 산을 찾아가는 여우예요’ 하면 제가 ‘왜 산을 찾아가는데?’ 하고 묻고, 아이가 그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미 아이 안에 서사가 있고 이야기 한 편이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돼요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는 같이 그림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나요?
맞아요. 제가 아이스크림 연수원에서 직무연수를 하면서도 말씀드렸던 게, 절반은 감상 활동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림책 한 권의 힘』 의 2장에 나오는 활동들이 있어요. ‘오늘 너는 무슨 색이니?’라고 묻기도 하고 ‘쫌 이상한 자기소개’를 하기도 해요.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중에 『그거 알아? 너만 그런 건 아냐!』가 있는데, 사실 그런 그림책 창작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열된 거거든요. 하나의 활동을 가지고 소소한 결과물로 엮어본 거예요. 먼저 다양한 활동을 충분히 해보는 게 정말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감각과 피부로 그림책이 어떤 건지를 느낀단 말이에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창작까지 연결돼요. 그래서 1학기 동안 감상 활동에만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을 따라서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해봤는데, 생각처럼 안 돼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아이들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온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이 ‘은유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거예요. 그 활동이 정말 중요해요. 그 과정이 없이 진행하면 우리가 흔히 ‘그림책 써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나오는 서사를 아이들이 쓰거든요. ‘은유 거울’을 통해서 나를 하나의 사물에 빗대어 보는 활동을 충분히 해야 돼요. 그리고 교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돼요.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슬금 슬금 자기 이야기를 꺼내거든요. 예를 들어 자신을 ‘솎아내지는 작은 새싹’에 비유한 아이가 있으면 ‘나는 솎아내어질까 봐 불안한 작은 새싹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빙산의 한 조각만을 이야기한 거예요. 그 밑에 더 많은 이야기가 이미 담겨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글과 그림으로 풀어낼 것인지, 한 사람 한 사람 짚어내 가면서 나아가야 돼요. 아무 이유도 없이 수많은 사물 중에서 한 사물에 자신을 비추어서 이야기하지는 않거든요.
그림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그림책을 만들자고 하면 선뜻 나서지 않을 텐데, 선생님은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을 안 그려도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자유롭게 도구나 재료를 선택하게 하시고요.
제가 나이프로 유화를 그리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도구를 바꾸니까 안 되는 게 되는구나’였어요. ‘왜 꼭 붓으로 해야 하지? 나이프로 해도 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왜 꼭 그려야 돼? 오려 붙이는 건 할 수 있잖아, 사진을 찍을 수도 있잖아’라고 해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가 닿는가의 문제이지, 그림을 매끈하게 잘 그리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림보다 더 좋고 쉬운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쓸 수 있는 거죠. 저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그림에 자신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독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고 화두예요. 그림에 자신감이 없다고 해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눈에 안 보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형상화해서 독자에게 가 닿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그게 꼭 수채화 붓이나 연필로 그리는 그림일 필요는 없는 거죠.
아이들이 창작한 그림책에 고유한 도서번호(ISBN)을 부여해주시잖아요. 어엿한 ‘어린이작가’로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거죠?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없는데, 초반에는 그림책을 가지고 학교 안팎을 다니면서 ‘학교에서 창작 교육이 되나요? 그런 게 있나요?’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학교에 기대가 없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창작의 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수용자로만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해 놓은 것을 그냥 집어넣어주면 배우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교육 자체가 아이들 안에 있는 걸 꺼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아이들 안에 있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 창문을 열고 내가 바깥에 외치지 않으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책이라는 그릇이 굉장히 유연하니까, 어떻게든 이 그릇에 잘 담아서 창문을 열고 세상에 흘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창문을 열고 외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실제로 그걸 보고 너무 놀라워하시고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나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고생했던 게 눈 녹듯이 씻어지죠. 이게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의미 부여가 내 안에 생기면 멈추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통로 현아쌤’으로 불리시잖아요. 아이들에게 책을 만들어주시는 출판사의 이름도 ‘교육미술관 통로’예요. 같은 이름의 사이트에서 아이들의 그림책을 전시하고 계시고요. ‘통로’는 어떤 의미인가요?
ISBN을 등록하러 구청에 갔더니 출판사 이름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순간에 이름을 묻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항상 ‘5학년 5반 선생님’, ‘2학년 3반 선생님’으로 이름이 정해져 있었고 다른 이름이 필요하거나 누가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그때 이름의 부재를 처음 깨달은 거예요. 일단 ‘도서출판 Lee’로 쓰고 돌아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교육 철학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있었는데 한 번도 그걸 정돈해서 자리매김할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았어요. 그걸 이 기회에 해보자, 해서 이름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학교가 작은 유리온실 같다’는 생각이 드신 거예요?
학교 안과 밖의 온도차가 있고 가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8시 반부터 2시 반까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주는 임시적인 모습만 만나고, 그 이후의 유리 벽 바깥에 있는 진짜 삶에 있어서는 제일 먼 사람인 것 같았어요.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데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그 아이러니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그건 책 속에나 있는 이야기잖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거든요. ‘그림책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저한테 되게 큰 화두 중에 하나였어요. 책으로 아이들 삶에 가 닿을 수 없다면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뭐지? 아이의 삶은 요동치는 데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유리 덮개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었어요.
유리 온실을 ‘통로’로 바꾸고 싶으셨겠네요.
저는 ‘통로’라고 하면 위아래를 연결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내가 뚜껑을 열면 이걸 흘러가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도구가 뭘까, 무엇을 통해서 이 뚜껑을 열면 아이들한테 흘러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잡은 것이 ‘자기표현’이었죠.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사실 그림책은 딛고 가는 거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 거거든요. 텍스트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소설, 시가 될 수도 있고 되게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이 너무 좋은 그릇이고 많은 걸 담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지금 많이 쓰는 거고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다 자기표현이에요. 자기표현을 통해서 나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나를 만나서 그 경험을 한 해라도 할 수 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기표현의 경험
학교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림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고요.
그림책 안에는 너무나 고결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가 담겨 있는데, 아이들의 실상적인 속마음을 들으면 ‘이게 가 닿을까’ 싶은 거예요. 그냥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말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유리 벽에 창문이 닫힌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제와는 괴리된. 그렇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이 다 흘러나간다고 해서 그 물의 힘을 믿지 않으면 아이가 자랄 수 없잖아요. 흘러나가는 그 물을 가지고 콩나물이 자라잖아요. 물을 안 주면 말라 죽잖아요. 저는 그걸 항상 떠올리거든요. 이게 다 흘러나가는 것 같고 소용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을 내가 믿어야 한다, 그래야 밀고 나갈 수 있다’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지로 붓고 또 붓는 거예요. 이게 소용없는 것 같아도 단 한 명이라도 여기에서 통찰을 얻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걸, 내가 스스로 믿고 나아가야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지치지 않게끔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더라고요. 아이들이 마음을 보여주고 조금씩 변화되는 순간들이. 그걸 믿고 가는 거죠.
‘자기표현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세요?
생의 주기에 따라서 중학교에 가야 되니까 가고, 대학교에 가야 되니까 가고, 결혼해야 되니까 하고... 그러면서 내 서사가 없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에서 내가 나를 표현하는 활동을 끊임없이 하면 나만의 서사를 갖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학창시절에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서 마음껏 자기표현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한번이라도 자기표현을 해본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경험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삶의 재미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재미가 다를 거잖아요.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한테 가 닿고, 거기에서 울림이 일어나는 걸 경험해본 아이는,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책을 읽고서 마음에 남았던 단어 중에 하나가 ‘선순환’이었어요. 그림책을 완성했다고 해서 창작 활동이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친구들과 감상을 나누고, 그 이야기가 또 책이 되고, 만들어진 책들이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에 비치되면서, 계속 선순환이 일어나던데요?
맞아요. 그림책 한 권을 만드는 것도 너무 귀한데, 만든 책을 어떻게든 많은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거예요.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재밌는 게, 같이 나누면 기가 막힌 감상 시가 많이 나와요. 그걸 저 혼자 보기가 너무 벅차서 학부모님께 카톡으로 다 보내드려요. 또 이게 너무 좋은 수업 자료라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보여주는데 2차 3차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소개하지 않고는 혼자 감당하기 너무 아깝고 벅차서, 흘러 넘쳐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그림책을 만든 아이들과도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의 관계도 선순환인 거예요. 이 작품이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시, 그림이 계속 나온다는 것도 너무 경이롭고 재밌는 것 같아요.
실제 그림책 창작 수업에서 아이들과 같이 읽으셨던 책의 리스트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기 시작하면 좋을까요?
많은 책들이 있지만 한 권만 꼽는다면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 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한 책이거든요. 학생 작가가 쓴 책이기도 하고요. 제가 아이들한테 꼭 읽어주는 책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저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사람이 저렇게 그림책을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리고 『소년의 마음』 도 꼭 같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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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권의 힘 이현아 저 | 카시오페아
지난 6년간 공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림책 창작 수업을 진행해온 현직 교사가 감상부터 창작에 이르는 그림책 수업의 전 과정과 자신만의 수업 노하우를 오롯이 담아낸 책이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ysjlovelja
2020.05.14
guuuuul
2020.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