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은유로 이야기하는 동화
집중력을 가지고 ‘끝장’을 봐야만 선명해지는 이야기들. 독서의 환희를 경험하게 해 줄 세 권의 동화책을 소개합니다.
글 : 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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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종종 내용이나 작가가 아니라 두께로 책을 고른다. 세계의 독자를 홀린 ‘해리포터’ 도 두꺼워서 거부한다. 대중 영화와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지구가 위험에 처하고, 주인공이 죽고 사고가 터진다. 시청자를 붙잡아야 다음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문학은 좀 다르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에는 온전하게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의미가 선명해지는 순간, 환희가 찾아온다. 이 뭉클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어린이는 읽는 사람이 된다. 

 

줄거리만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


마지막에 모든 것이 밝혀지는 작품일수록 은유를 사용하거나 촘촘하게 실마리를 숨겨둔다. 급하게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찬찬히 읽어야 한다. 종종 “상징이나 은유를 찾는 연습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우리는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이를 이미 배웠다. 국어 시험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가 어떤 단어가 내포한 진짜 의미를 찾는 일이 아니던가. 또 다른 방법은 몰입해 읽어내는 경험이다. 다 읽고서야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되는 경험이 최고의 읽기공부다.   

 


『꽝 없는 뽑기 기계』

곽유진 글/차상미 그림 | 비룡소

 

『꽝 없는 뽑기 기계』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희수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희수 가족에게 일어난 사고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처음 읽을 때 궁금증이 생긴다. “왜 희수는 자기 운동화에서 냄새가 난다고 여길까?”, “갑자기 나타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누구지?”, “꽝 없는 뽑기 기계는 대체 뭐지?”, “뽑기 기계에서 낡은 칫솔과 책이 나온 이유는 뭐지?” 이 모든 실마리는 마지막까지 읽어야 비로서 이해된다. 어린 희수의 무거운 죄책감과 어린 딸을 두고 차마 저세상에 갈 수 없는 부모의 안타까움을 이해하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 첫 장면부터 극적으로 사고를 보여준다면 흡인력은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에야 모든 걸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먹먹함과 감동은 없을 테다. 문학이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이다.  

  

바이올린 말고 다른 소리도 내려온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박성희 글/김소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분량 압박을 받는 시대이니 단편 중에 문학적 함의가 담긴 책을 읽어줘도 좋다. 『친애하고 존경하는』은 박성희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담겼는데 깊이가 만만치 않다. 어른들이 약자인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다룬다. 수록작 중 ‘공을 주웠다’는 특히 찬찬히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층간소음 이야기로 보인다. 윗층에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남자 아이가 살고 있다. 아래층 민영이네 가족이 괴롭다. 한데 낮뿐 아니라 밤에까지 소리가 들린다.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라 “쿵쿵쿵” 울리는 소리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아이는 털이 듬성듬성 빠진 테니스 공을 들고 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공을 던지기도 한다. 그 공이 민영이네 집 앞으로 떨어졌는데도 “쿵쿵쿵”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전해지는 소리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소리만은 아니다. 학대나 폭력으로 울부짖는 소리도 내려온다. 우연하게 현장을 목격한 민영이는 자기가 들고 다닌 공처럼 상처가 난 윗집 아이 준성이를 보호해준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공이 무엇인지”를 함께 말해봐야 한다. 

 

불타듯 눈부시지만 위험한 호랑이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케이트 디카밀로 글/햇살과나무꾼 역 | 햇살과나무꾼

 

마음에 슬픔이 가득하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케이트 디카밀로의 『슬픔이 날아오르도록』은 그 이야기를 롭과 친구인 시스틴을 통해 들려준다. 엄마의 장례식 날, 아빠는 롭에게 울지 말라고 한다. 그날 롭은 슬픔을 여행 가방에 넣었다. 낯선 곳으로 이사한 후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롭의 다리에 생긴 상처는 낫지 않고, 자꾸 가렵다. 비슷한 시기 전학을 온 시스틴은 아빠에게 새 여자가 생기자 엄마와 함께 이곳에 왔다.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해 매일 아이들과 싸운다. 롭과 시스틴은 정반대의 캐릭터다. 깊은 우물을 파고 감정을 넣어둔 롭과 화가 나서 발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스틴은 슬픔의 두 얼굴이다. 두 아이가 숲속에서 철장에 갇힌 진짜 호랑이를 만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과연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작가는 이를 호랑이의 은유로 들려준다. 호랑이, 여행가방, 롭의 가려움증, 메이 아줌마, 시스틴 같은 인물과 사물이 모두 표면의 의미 말고 내면의 의미가 있다. 모든 실마리는 책 안에 있다. 은유나 상징 운운하지 않아도 맥락 안에서 이것들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찬찬히 읽어보면 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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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없는 뽑기 기계

<곽유진> 글/<차상미> 그림

출판사 | 비룡소

친애하고 존경하는

<박성희> 글/<김소희> 그림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케이트 디카밀로> 글/<햇살과나무꾼> 역

출판사 | 햇살과나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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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