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다만 그거였다
엄마는 구원을 꿈꾸지 않았다. 탈출을 꿈꿨다. 그것이 엄마가 구한 길이었다.
글ㆍ사진 이정연(도서MD)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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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인적사항 문항 중에 종교가 있었다. 덕분에 자주 난감했는데, 나도 우리 집 종교가 무엇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2002년 성경학교에서 신부님, 선생님들과 월드컵 경기를 봤던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는 몰몬교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웠다. 와중에 초파일이면 꼬박꼬박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올렸고, 중학생 때에는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새벽 같이 일어나 명상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엄마 손잡고 따라다니면서 일어났다. 지금도 엄마는 매주 불교 명상원에 출석하면서 추석이면 위례미사를 보기 위해 동네 성당에 간다. 외가 신앙이 천주교라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두 성당에 모신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엄마에게 종교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늘 누군가를 찾았다. 신은 아니었다. 신과 가까운 자였다. 아니다. 자기 곁에 있는 자였다. 엄마는 하나님보다는 신부님을, 붓다보다는 비구(니)를 찾아 성당이나 명상원에 갔다. 그들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보다는 엄마보다 먼저 살아본 언니 오빠에 가까웠다. 그러니 종교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무언가를 이루어 달라고 빌기보다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달라고 빌었다. 속상하게도 엄마에게 노력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었다. 수능 백일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수능 백일 전부터 내 주변을 좋은 기운으로 채우기 위해 모든 일에 착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게 엄마였다. 차라리 기도를 하지,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리면서도 어느새 나도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었는데, 그게 엄마의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그런 엄마가 결국 불교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는 아라한(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의 부처. 윤회의 고리를 끊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이 될 거야.” 소승불교를 접한 뒤 엄마는 자주 내게 말했다. 고통은 이번 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엄마는 구원을 꿈꾸지 않았다. 탈출을 꿈꿨다. 그것이 엄마가 구한 길이었다.

 

그런 엄마가 며칠 전 이런 말을 했다. “정연아, 인생도 참 한 번쯤은 살 만한 것 같아. 그치?” “응. 그렇지.” 여느 때처럼 무뚝뚝하게 대답했지만, 그날 밤 자기 전 이불 속에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엄마의 말을 적어두었다.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떤 대화를 하다가 나온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엄마의 설렌 얼굴이 선했다. 눈물이 났다. 엄마, 이렇게 배신때리기야? 언제 그렇게 날 두고 혼자 거기까지 갔어. 나는 아직인데. 언제 그렇게. 비뚤어진 마음과 함께 아무에게나 감사를 올렸다. 믿는 신은 없지만,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요 며칠은 그때 엄마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떠올리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다른 일을 하다가 냉장고를 열면 문득 떠오른다는 민간요법(?)도 시도해보고, 요 근래 엄마에게 있었던 기쁜 일도 나열해보았지만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중요한 사건보다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산 지 1년이 넘었고, 동네도서관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으며,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쓸모를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멋대로 오해하고 싶어진다. 나랑 같이 여행하면서 살 만하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내가 산 꼬막비빔밥이 엄마를 살 만하다고 느끼게 했을까.

 

안다. 나는 엄마의 구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사람에게서 구원을 얻는 거 아니랬다. 그러나 적어도 엄마가 걷는 길가에 꽃 정도는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욕심. 언젠가 내게 누가 그랬다. 정연 씨 효녀병 말기라고. 맞다. 그러나...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정연아, 엄마는 아라한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


효?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_황정은, 「파묘」,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174쪽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윤성희,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저 외 2명 | 문학동네
김승옥문학상의 새로운 시작에 값하는 일곱 작가의 일곱 작품. 새로움보다 새로운, 한국문학의 깊이와 이채로움을 만나고 또 만끽할 시간이다. 올해 김승옥문학상 수상 작가는 윤성희,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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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와식인간으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