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 해도
조명이 켜지면 투박하지만 정겨운 풍경의 동네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 흔한 마트라는 간판도, 슈퍼마켓이라는 간판도 아닌 ‘상회’라는 이름의 간판을 단 오래 된 작은 가게에서, 그 가게와 긴 세월을 함께 보낸 듯한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은 이 허름한 ‘장수상회’의 점장이자 가장 오래된 직원인 김성칠. 성칠은 특유의 괴팍함과 까칠함으로 이미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인물.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일찍 가게를 열고 청소를 하던 어느 날, 성칠의 옆집에 꽃 가게가 새로 이사를 온다.
꽃처럼 단아하고 친절한 꽃 가게 주인, 임금님 여사의 따뜻한 첫 인사에도, 안하무인 고집불통 성칠은 특유의 괴팍함으로 금님을 쌀쌀맞게 대한다. 첫 만남부터 엉켜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융통성 없고 까칠한 성칠 때문에 조금은 불편하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허나 따뜻한 심성을 가진 금님은 평생을 홀로 살아온 성칠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그에게 꾸준한 관심과 정을 보내고,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하던 성칠 역시 조금씩 금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연극 <장수상회> 는 지난 2016년 초연된 작품으로, 동명의 영화 <장수상회>를 원작으로 한다. 2017년 국립극장 공연 당시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 한 후 미국 LA 및 국내,외 50개 이상의 도시에서 투어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웃음과 감동을 모두 담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관객과 평단에 두루 사랑 받은 작품이다.
<장수상회> 는 노년의 사랑, 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를 통해 관객들에게 때론 유쾌한 웃음을, 때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다소 젊은 층을 타켓으로 하는 타 작품들과 다르게, 60대 이상의 중, 노년층의 감성을 자극하며 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다소 편중되어 있던 기존 공연계의 관객층을 더 확대 시키며 새로운 문화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수상회> 는 1시간 30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성칠과 금님의 알콩달콩한 모습과 그 속에 숨어있는 깜짝 반전을 그려내며 잠시도 지루하지 않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안에서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뿐 아니라, 가족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칠이 사준, 어른 크기만한 곰돌이 인형을 보고 좋아하다가도, 주책이 아닌지 걱정하는 금님에게, 성칠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전히 소녀같이 아름답다고 따듯한 대답을 건넨다. 사랑에 빠지는 데 나이가 무엇이 중요하랴.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가슴이 뛰는 한 그 누구던 사랑을 할 수있는 자격이 있지 않은가. 마치 고등학생들처럼 풋풋하고 순수하게 사랑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내내 관객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내내 따스한 미소를 선사하던 작품은 후반부에서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는 반전도 선사한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건, 평가를 내리는 것 조차 무의미한 베테랑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분이다. 성칠 역을 맡은 이순재와 금님 역을 맡은 박정수 두 배우의 명연기는 그 인물 그대로를 고스란히 표현하며 작품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준다. 성칠의 쓸쓸함, 외로움, 금님의 말 못할 아픔 등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일품이다.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면 더 좋을 작품 <장수상회> 는 오는 9월 22일까지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공연된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