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 같은데 성적이 높은 아이,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낮은 아이. 두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린이ㆍ청소년 교양서 작가이자 독서 교육 전문가인 최승필은 독서에서 이유를 찾았다. 10년여 전, 대치동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의 성적이 일제히 떨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원인을 탐구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읽기 능력이 높을수록 공부를 잘한다.’ 둘째, ‘독서는 읽기 능력을 끌어올린다.’
독서는 공부머리를 끌어올리는 최상의 공부입니다. 하지만 독서를 지식의 축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순간 독서 지도는 실패하고 맙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독서 지도의 출발점은 독서를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경험‘을 거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공부머리 독서법』, 176쪽
『공부머리 독서법』 은 최승필 저자가 어린 독서가들의 궤적에서 발견한 독서법이자 공부법을 담은 책이다. 초보 독서가에서 숙련된 독서가로 키우는 방법과 독서 교육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해법을 제시한다.
지난 8월 20일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저자가 서울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제16회 YES24 어린이 독후감 대회 여름방학 특강으로 기획된 이날 행사에는 독자 70여 명이 참석해 ‘우리 집에서 실행 가능한 독서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모든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습니다. A에게 좋은 솔루션이 B에게는 안 맞을 수 있어요. 독서는 아주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죠. 오늘 여러 가지 솔루션을 소개해 드릴 텐데요.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이것들은 예시일 뿐 정답이 아닙니다. 이 방법들이 작동하는 원리에 주목하셨으면 좋겠어요. 이 원리에 기초하여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당부를 건네며 강연을 시작한 최승필 저자는 “계속되는 사교육 열풍에도 불구하고 기초학력 미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2015~2018년 기초학력 미달자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이어 책을 읽어도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핵심 맥락과 기타 정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한 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아이들과 책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완할 방법으로 학교 공부를 추천한 그는 “독서의 관점에서 학교 공부는 교과서라는 재미없는 책을 한 학기 동안 슬로 리딩하는 것”이라며 효과적인 독서법으로 ‘슬로 리딩’을 강조했다.
헬스 트레이닝에도 바른 자세와 방법이 있듯 독서에도 바른 자세와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대원칙은 ‘생각을 많이 할수록 좋은 독서‘라는 것입니다. 속독이 나쁜 독서법인 이유는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속독 습관이 있는 아이들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언어능력 평가 점수가 오르지 않습니다. (96쪽)
‘책 고르기’는 책 읽는 아이가 되는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승필 저자는 “많은 학부모가 추천 도서에 의존하거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책을 권하지만, 추천받은 유명 도서를 읽은 아이보다 아무도 모르지만 본인이 선택한 책을 재미있게 읽은 아이의 언어능력이 더 상승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스스로 책을 골라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기회가 주어져도 고르지 못한다며 이때의 대응책으로 하루 1시간 가족 독서를 추천하고, 같이 읽지 않아도 함께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는 책 읽는 걸 싫어한다고 하는 분들이 계세요.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겁니다. 취향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죠. 책과 아이의 거리가 멀면 아이가 읽을 수 없어요. 어떤 독서가도 본인이 읽을 책을 남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독서가조차도 책을 잘못 선택하면 그 책 못 읽어요. 재미는 독서의 엔진입니다. 아이에게 본인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엔진 없이 달려보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독서의 작동 원리를 기억하기
최승필 저자는 독서의 두 가지 효용으로 언어능력과 자아 강화를 꼽았다. 공포, 로맨스 등 비교육적이라고 알려진 장르의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안 읽는 것보다 낫다”라며 “언어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자아 강화’를 강조한 그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독서로 자아가 강화된 아이들은 자신을 뚜렷하고 단단하게 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해 가는 동시에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 능력과 흥미는 닭과 달걀 같은 겁니다. 아이들은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어떤 임계를 돌파하면서 스스로 성장합니다. 그간 제가 독서 교육을 하면서 느낀 건 이 두 가지가 아이가 책을 읽게 만드는 작동 방식이라는 겁니다. 이 원리를 이해해야 해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던 아이의 성적이 오르는 시기가 있어요. 중 3입니다. 아이가 여유롭게 책을 읽는 그 시간, 성적이 안 나오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많은 학부모님이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흔히 책 읽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최승필 저자는 이에 대해 “시간이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어 능력의 관점에서 보면 책을 많이 있는 것보다 ‘인생 책’을 만나서 여러 번 읽는 아이가 더 빠르게 성장한다고 강조하면서 “추천 도서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턱에 걸릴 때, 즉 독서에 흥미가 떨어졌을 때 도와주는 역할 정도로 활용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목표는 딱 두 가지입니다. 소리 내서 읽는 속도로 읽을 것. 재미있는 책을 골라 재미있게 읽을 것. 이 두 가지만 해내면 나머지는 저절로 됩니다. 굳이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책을 읽는 만큼 공부머리도 좋아집니다.(97쪽)
독자와의 질의 응답
초등학교 1학년 엄마입니다.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하다 지금은 학습 만화에 꽂혔습니다. 계속 학습 만화만 보게 해도 괜찮을까요?
아이가 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스마트폰 할 시간에 만화를 보면 말리지 마세요. 다만 아이가 만화책 읽는 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책과 만화는 종류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해요. 만화책은 만화책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책을 읽는다고 언어 능력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가족 독서같이 아이가 책하고 있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는데요. 학습 만화를 읽으면 말리지는 않되, 정해진 가족 독서 시간에 아이가 학습 만화를 가지고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습 만화를 많이 읽으면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림이 많기 때문이죠. 학습 만화를 읽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글책을 읽으면 읽는 속도가 느려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흔히 말하는 팬픽이나 웹 소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렇게 얕은 즐거움을 느끼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아예 독서랑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학습 만화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선택해서 읽히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책을 잘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가 좋아했던 책을 떠올려 보세요. 그 책을 분류하는 번호가 있는데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그 번호가 있는 섹션으로 가세요. 선택의 폭을 줄여서 ‘이 섹션에서 선택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간혹 이렇게 해도 못 고르는 아이가 있는데요. 일단 아이가 고를 때까지 최대한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나서도 못 고르면 아이가 제일 싫어할 것 같은 책을 하나 골라서 제안해 보세요. 그러면 아이가 고민하던 것 중에 하나를 고릅니다.(웃음) 일반적으로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양의 3배수 내에서 고르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선택을 용이하게 하고 독서가로서 자의식을 갖게 해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엄마입니다. 아이가 속독할까 봐 제가 책을 읽어주고는 했는데요. 이제 “엄마가 읽어 주는 게 재미있다”면서 혼자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조절하는 게 좋을까요?
부모님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읽어 주면 좋습니다.(웃음) 사실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일이 지적 활동이잖아요.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영유아가 혼자 책을 읽는다는 건 이 고통을 느낀다는 거죠.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읽는 게 아니라면 부모님이 읽어줘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부모님이 책을 읽어 주는 게 당연해요. 마라토너들이 달릴 때 처음부터 치고 나오지 않잖아요. 초, 중반에는 페이스를 조절하다가 마지막에 속도를 올리는 것처럼, 독서할 때도 페이스 조절이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읽어 주기’를 주로 하되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10~15분만 스스로 읽게 하세요. 물론 아이가 더 읽겠다고 하면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에게 느낀 점을 자주 물어보는데 아이가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계속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질문하고 답하기는 그림책 읽어주기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아이와 같이 읽다 보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질문하는데요. 이야기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죠. 이런 상호 작용이 가장 생생한 책 대화에요. 예를 들어 아이가 “아빠 뒷간이 뭐야?”라고 물으면 “응, 뒷간은 옛날 화장실인데, 아빠 어릴 때는….”. 이런 식으로 대화가 확장되는 거죠. 이렇게 질문을 하고 답하는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이의 사고회로를 확장해 줍니다. 독서가 입력이라면 이런 행위는 출력이죠. 그리고 가능하면 책을 읽고 난 후에 따로 감상을 물어보는 것보다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
공부머리 독서법최승필 저 | 책구루
계획표 형태로 된 독서법 페이지는 주의해야 할 점과 구체적인 독서 효과까지 담고 있어 누구나 쉽게 독서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독서교육에 지칠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으며 의욕을 충전하고 싶은 초중등 학부모에게 꼭 필요하다.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