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집 『날개 환상통』 을 출간한 김혜순 시인이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캐나다의 그리핀 트러스트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으로 2000년 캐나다의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시의 대중화와 시 문화를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그리핀시문학상은 번역 시집을 포함,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매년 캐나다와 인터내셔널 부문 각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시상한다. 김혜순 시인은 2016년에 문학실험실에서 출간된 『죽음의 자서전』 으로 2019 그리핀 시 문학상 인터내셔널 부문으로 수상했다.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은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상으로,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노벨문학상을 비롯, 영국의 National Poetry Competition 등과 함께, 시 부문이 있는 단일 또는 복수 장르의 세계 주요 문학상(International Major Awards)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문학상”이다. 2001년 첫해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제정, 첫 수상자로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어로 시를 쓴 ‘파울 첼란’을 선정했다. 파울 첼란의 사후 2000년에 출간된 영어 번역 시집,
지난 6월 25일, 김혜순 시인의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문학실험실이 함께 마련한 자리로 김혜순 시인을 비롯해 이광호 문학평론가, 김나영 문학평론가가 참석했다.
번역자가 상금을 더 많이 받는 상, 당연하고 기쁘다
2016년 출간된 『죽음의 자서전』 으로 지난 6월 7일(한국 시간) ‘2019 그리핀 시 문학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수상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자가 내 시집 제목을 불렀을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리핀시문학상은 시상식 전날 낭독회를 진행한다. 1천여 명의 관객들이 참여하는 낭독회인데, 거의 모두 백인이었다. 나와 번역자만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수상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여기가 현실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시상식 전날 최종 후보들을 초대해 낭독회를 한다. 후보가 되어도 상금을 받는다.
낭독회만 참석해도 1만 달러(CAD)를 받는다. 이번 시집을 번역해준 최돈미 시인과 “우리는 동양인이고 여자들이니까 절대 못 받는다. 1만 달러만 받고 축제를 즐기자”고 생각했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영어로 번역된 시집이나 영어로 쓰인 작품에 주는 상이다. 상금은 번역자가 60%, 시인이 40%를 받는다.
당연히 번역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이 내겐 좋게 보였다. 그리핀시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영어로 번역된 시집 500여 권을 실제로 다 읽는다고 들었다. 놀랍다고 생각했고, 나의 번역자에게 더 많은 상금이 가는 것이 기쁘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김혜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기대할 만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이야기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냐?"는 물음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당신은 이제 그만 글을 쓰세요”라는 뜻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오늘 이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나라 어떤 작가라도 괴로울 것 같다.
번역자 최돈미 시인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2000년대 초반에 연락이 왔다. 내 시집을 번역하고 싶다고 찾아오셔서 만났고, 그 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최돈미 시인이 번역한 시집은 2006년
수상작 『죽음의 자서전』 은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죽음을 다룬 49편의 시가 담긴 책이다. 어떤 마음으로 쓴 작품인가?
시라는 것, 그리고 시인의 감수성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先驗的) 생각이라고 본다. 이 시집은 죽음에 처한 산 자가 쓴 자서전이다. 죽은 자의 죽음에 대한 시가 아니라, 죽음에 처한 여성으로서의 경험, 사회적 경험을 표현한 시다. 원래는 시를 더 많이 썼는데, 49재를 염두에 두고 49편으로 추렸다. 죽은 자가 죽음에 들기 전이 49일이니까. 49편 중 가장 아프게 다가온 시는 「저녁 메뉴」라는 시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쌀독엔 쌀이 없고 / 엄마의 지갑엔 돈이 없고 / 엄마의 부엌엔 불이 없고 / 오늘 엄마의 요리는 머리지짐 / 어제 엄마의 요리는 허벅지찜 / 내일 엄마의 요리는 손가락탕수 / 부엌에선 도마에 부딪치는 칼 / 부엌에선 국물이 우려지는 뼈 / 부엌에선 기름에 튀겨지는 허벅지 / 엄마의 쌀독엔 엄마 / 엄마의 지갑엔 엄마 / 엄마의 부엌엔 엄마 / 엄마의 칼밑엔 엄마 /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강기슭 /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오솔길 / 강기슭 지나 그 오솔길 너 혼자 멀어져 가노라면 / 우리 딸이 왔구나 힘없는 목소리 / 어서 들어오너라 방문 열리면 / 텅 빈 아궁이 싸늘한 냉기 / 네 엄마의 부엌엔 / 배고픈 너의 푹 꺼진 배 / 녹슨 프라이팬처럼 / 검은 벽에 매달려 있는데 / 너는 오늘 밤 그 프라이팬에 / 엄마의 두 손을 튀길 거네
「저녁메뉴」
'그리핀 시 문학상'에서 주최하는 유료 낭독회는 어떤 행사였나?
청중들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낭독회에 갔는데, 정말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큰 극장에서 시를 듣는 행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특별한 소회가 있다면.
특별히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문제 속에서 사유하고 시를 쓰기 때문에 내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다. 늙으나 젊으나 똑같이 지금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별한 소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곧 문학과지성사에서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이 출간 예정이다.
예전에 <문예중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았다. 아시아 여행기, 그 중에 특히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한 기록을 많이 썼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모르는 게 무얼까? 질문해본다면, 그건 우리가 아시아 사람이라는 것, 짐승이라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여행하며 느낀 것들,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들에 대해 썼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하여(올해 등단 40주년), 『또 다른 별에서』부터 『날개 환상통』에 이르는 13권의 시집과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2019년 7월 근간)를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올해의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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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김혜순 저 | 문학실험실
각 개인과, 쓰러진 신체는 자신만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김혜순 시인이 표현한 죽음(대문자D의 Death)은 복수적이고 집단적인 죽음이며, 정치적 비극과 방지할 수 있었던 참사에 의해 희생된 총합적인 죽음이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