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교수 “안 팔릴 역사책을 쓴 이유”
거칠게 평가하자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그런 시대였고 어느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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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라기보다는 탐정에 가까웠던 시간

 

“안 팔릴 역사책을 쓰고 있어요.”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근 3년간 입버릇처럼 말했던 안부 인사다. 그는 왜 신문 기고, 인터뷰, 방송 출연, 강연을 비롯한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SNS 활동까지 접은 채 하루 종일 헌책방, 도서관에서 살았을까. 시작은 고등학생 시절 수없이 읽고 되씹었던 김홍섭 판사의 책  『무상을 넘어서』 에서부터였다.

 

2015년 3월 서울고등법원은 ‘어느 법관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김홍섭 서울고등법원장의 50주기 추모행사를 거행했고, 김두식 교수는 1년 5개월 동안 진행했던 팟캐스트 ‘창비 라디오 책다방’ 마지막 녹음을 마쳤다. 당시 자주 만났던 창비 편집자들과 고 김홍섭 판사 이야기를 종종 나눴던 김두식 교수. ‘왜 대한민국은 김홍섭 판사를 뒤따를 만한 법조인이 탄생하지 않을까’를 오래도록 고민했던 그는 김홍섭 판사의 궤적을 따라 초창기 법조계 전체를 조망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책 쓰는 것 이외의 주변 일은 모두 접었다. 1945년 해방 당일부터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기준으로(뒤늦게 대법관에 임용된 사람은 1975년까지 포함) 판사 596명, 검사 505명, 변호사 1,904명을 데이터베이스로 기본틀을 잡았다. ‘고 김홍섭과 그의 시대’를 염두에 뒀던 책이었지만, 3년 반이 지나 나온 책 제목은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이 되었다.

 

『법률가들』 은 대한민국 법조계의 뿌리를 집요하게 탐구한 책이다. 해방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사람’ 이야기로 풀어냈다. 총 7부로 구성, 7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완성한 김두식 교수는 “이 책은 불멸의 신성가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뿌리를 탐구한 소박한 시도”라고 밝히며, “지난 3년은 학자라기보다는 탐정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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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존경할 만한 판검사,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였나

 

지난 11월 20일, 서울 서교동 창비에서  『법률가들』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두식 교수는 김성칠이 쓴  『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일기』 속 글귀를 인용하며 출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집필의 목적을 밝힌다면?


보수적인 법조계 분위기, 전관예우, 법조 브로커, 1990년대 말까지도 남아있던 찻값이나 휴가비 등은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진 걸까, 그 근원을 추적하고 싶었다. 해방 당시 조선인 판검사는 전체의 30% 미만이었다. 공인된 자격을 지닌 친일 경력의 법조인들은 법조계뿐만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국방, 교육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람’ 이야기를 통해 법률, 제도, 시대상을 재현하고 싶었다.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과연 존경할 만한 판검사, 변호사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였나? 이다.

 

어떻게 자료를 수집했나?


『한국법관사』, 『한국사법사』, 『한국검찰사』 등을 찾아보았으나 오류가 많았다. 미국정시대의 관보, 판결문 등 1차 자료도 부실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를 기준으로 대략 3,000여 명의 법률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일제시대부터 관보, 자서전, 평전, 신문기사, 미군 노획 문서 등도 참고했으며, 김이조, 김두현, 변무관, 이건호 변호사 등 원로 그룹 인터뷰도 진행했다.

 

초창기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4가지 유형으로 묶어 설명했다. 기준은?


제1법률가군은 해방후 한국 법조계의 최상층부를 형성한 사람들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를 합격하고 일제시대 판검사를 지낸 이들이다. 제2법률가군은 조선변호사시험 출신, 제3법률가군은 일제시대 서기 겸 통역생 출신으로 해방직후 판검사에 임용된 사람들이다. 해방직후 잠시 존속했던 사법요원양성소 출신 등 해방후 법률가자격을 갖춘 이들은 제4법률가군으로 분류했다. 1부부터 3부까지는 그런 법률가군들의 기원과 태생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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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제목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제1법률가군의 대표적 인물이자 당대 최고의 엘리트 ‘김영재’ 이야기가 담겼다.


김영재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 출신으로 경성제대 재학시절 급진적 사상의 언저리를 맴돌았으나,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 이후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영달을 추구했다. 친일 검사로 일하며 누릴 것은 다 누렸다. 해방후 반성의 의미로 좌익진영에 가담했던 ‘성찰가’ 강중인, 조선법학과동맹(법맹)을 결성한 ‘호걸쾌남’ 조평재, 반공판사로 유명했던 ‘외골수’ 양원일, 해방직후 첫번째 ‘사법파동’의 주인공인 오승근, 법조계의 모든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영광을 누린 민복기 등 1937년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자들의 일제시대 인생행로도 김영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7부에서는 이른바 ‘이법회(以法會)’ 또는 ‘의법회(懿法會)’ 문제를 발굴해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했다. 이법회 사건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한다면.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져야 할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 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의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리자, 응시자들은 궁지에 물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 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됐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7부는 일종의 외전이라 완전히 따로 읽어도 좋다.

 

전작 『헌법의 풍경』 ,  『불멸의 신성가족』 에서도 대한민국 법조계의 여러 문제를 지적해왔다.  『법률가들』 을 펴내며 3부작을 완성한 소감은?


『헌법의 풍경』 을 낸 지는 14년이 흘렀고 『불멸의 신성가족』 을 쓴 지는 9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로스쿨이 도입되고 사법시험이 폐지되었다. 감시 시스템이 강화되고 특권은 줄어들었고, 판검사들의 윤리적인 수준도 나아졌다.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청렴도는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어이없는 현실을 관찰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수많은 시민, 법률가,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법조계가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부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현상과 싸우느라 과거를 궁금해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많이 봤다. 인생에서 빛이 길면 그림자도 긴 법이다. 사람은 다면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사람 인생은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법조계에서도 학계에서도 늘 혼자였던 까닭에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장점을 이번에도 잘 활용했다. 후손들 입장의 보충이나 반론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북쪽으로 사라진 법률가들의 후일담을 정리할 수 없다는 면에서 어차피 처음부터 미완성이 예견된 프로젝트였다. 선행연구의 적지 않은 오류를 잡아냈지만 이 책도 역시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변명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외에도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한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똑같은 디자인에 비슷한 내용의 책이 가득하다. 책 발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읽기는 조금 힘들더라도 어려운 독서도 병행했으면 좋겠다. 두꺼운 책이지만 사람 이야기를 풀어 썼기 때문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충분하다.

 

 

 

 

 


 

 

법률가들김두식 저 | 창비
오늘날 사법부의 구조와 현상 등을 상당 부분 설명해주는 길이 될 뿐 아니라, 친일문제를 비롯해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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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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