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 점점 뜨거워지는 이 여름에, 일도 힘들고 지치는 이 여름에,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방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지고 온 주제입니다. ‘방학이 필요한 우리들이 읽으면 좋을 책’!
프랑소와 엄 : 아니, 그런데요. 불현듯 님. 오늘 우리가 방송하기 전에 TMI(Too Much Information) 토크를 하고 진행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본론으로 먼저 들어가시면 저희 둘은 어떡하지요?(웃음)
불현듯 : 이 코너의 중심이 TMI로 쏠릴 것 같아서요.
캘리 : 불현듯 님 팬이 워낙 많아서 이분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TMI 토크를 해볼까 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감정의 색깔』
김병수 저 | 인물과사상사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 선생님의 신간이에요. 저희 팟캐스트에 나오셨던 분이기도 해서 너무 편애하는 건 아닐까, 싶어 책 소개를 고민했는데요. 읽고 나니까 ‘이 책을 어떻게 소개 안 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저자 소개글을 한 번 읽어볼게요. “진료보다는 자기 관리를 강조하고 약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만의 행복을 은밀하게 추구하는 것이 심리치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소개글이 다른 약력보다 먼저 나와요. 인상적이죠. 약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시는, 약간은 특이한 선생님이에요. 예전에 선생님을 뵀을 때도 선생님은 움직이는 것, 운동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 때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감정의 색깔』 은 감정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모은 책이에요. 일부러 맞추려고 한 건 아니지만 책을 보고 불현듯 님이 좋아할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에 관심 많으시잖아요. 저는 사실 그림을 잘 몰라요. 글을 더 좋아하고요. 글을 더 먼저 보는 스타일이라서 우선 김병수 선생님의 글을 쭉 읽고 그림을 보는 식으로 책을 읽었는데요. 쭉 읽다가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문장이 있어서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마음의 관점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심리상담을 받아도 습관처럼 굳어버린 사고방식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긴 쉽다. 매일 보는 것을 바꾸면 마음이 변한다. 하늘을 보고 광활함을 체감할 수 있다면 나를 옥죄는 협소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를 인류라는 큰 그림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힘이 길러진다. ( 『감정의 색깔』 , 33쪽)”
여기서 딱 들어왔던 문장이 “매일 보는 것을 바꾸면 마음이 변한다”는 문장이었어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제 스스로를 처방하는 노하우가 있는데요. 내가 누군가한테 좋은 말을 해서 상대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마음의 치유를 해요.
오늘 주제가 ‘방학이 필요한 우리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읽어드리고 책 소개를 마무리할게요. “그러니까 베스트셀러만 읽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읽는 것이 내가 된다. 나와 어울리는 책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법이다.” 방학에 하면 좋을 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요. 내가 행복한 순간이 뭔지 알면 행복해질 수 있고요.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고사리 가방』
김성라 저 | 사계절
오늘은 그림책을 가지고 왔어요. 방학이라고 해서 두꺼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면 좀 막막하잖아요. 방학을 방학 같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어서 일단은 좀 편한 책부터 읽었으면 했어요. 이 책은 김성라 작가님이 쓰고 그린 책인데요. 재미있는 것은 책에 ‘바람이 난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거예요. 바람이 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죠. 이 작가님은 바람이 나면 일주일 시간을 내서 제주도에 갑니다. 제주도에 엄마가 살고 계시기 때문인데요. 벚꽃이 질 때, 4월이면 늘 가는 곳이 제주도인 거고요. 때마침 그 때가 고사리 수확 시기라고 합니다. 바람이 나서 갔다가 가방에 고사리를 쟁여서 돌아오는 이야기예요. 고사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말린 고사리와 생 고사리의 차이 같은 깨알 정보도 들어 있고요. 저는 뭐니뭐니해도 책 띠지에 있는 고사리를 채집하러 갈 때 필요한 준비물이 재미있었어요. ‘허름하지만 튼튼한 옷, 야구모자, 햇빛가리개 모자, 고사리 앞치마, 팔토시, 두꺼운 양말, 얇은 양말, 비닐장갑, 얇은 면장갑, 두꺼운 면장갑, 비닐봉지, 호루라기, 선크림, 물, 휴지, 간식’ 이런 것들이 그려져 있고요. 엄마와 딸이 고사리를 채집하러 가는 장면이 함께 있어요.
엄마가 쓰는 제주도 방언이 많이 나와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각주를 달아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이런 말이 있어요. “너무 확확 걷지 말앙. 발 조꼬띠도 잘 살펴야지.” 조꼬띠? 이 말이 너무 예쁘잖아요. 무슨 뜻인가 했더니 ‘가까이’라는 뜻이래요. 빨리 걸으면 고사리를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까 발 가까이도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었던 거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가까이에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있는데 지나치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이 말을 읽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일주일 동안의 휴식, 여행도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내 주변에, 내 조꼬띠에 있는 것들을 더 잘 챙기고 사랑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조꼬띠(웃음) 저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저 / 이동윤 역 | 북스피어
주제를 받고 자체 설문조사를 좀 했어요.(웃음) 방학이 필요한데, 어떤 책을 읽고 싶으냐 물었더니 역시 '재미있는 책'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정유정 작가님의 『7년의 밤』 같은 것 말이에요. 역시 스릴러겠구나 했어요. 그래서 가져온 책입니다. 이 책은 20년쯤 전에 『유니스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한 번 출간된 적이 있는데요. 책을 여러 번 읽은 입장에서는, 『활자 잔혹극』 이 더 직관적이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 작품이고요. 글을 못 읽는 주인공 '유니스'가 어느 교양 넘치고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유니스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간직하고 있어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죠. 그런데 하필 그가 가정부로 간 집은 거실 벽 한쪽 전체가 책장이고요. 쉴 때면 항상 책을 읽는 가족들이 사는 곳이었던 거죠. 유니스에게 책은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고 평평한 상자와 다를 바 없거든요. 가장 피하고 싶은 물건인데 그것이 너무 많은 집에 갔어요. 이 가족이 항상 책을 읽으니까 유니스는 이들이 자신을 도발하려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요. 피해망상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결국, 이 가족을 살해합니다. 이게 스포일러 아니냐고 놀라실 분들이 있을 텐데요. 첫 문장을 읽어드릴게요.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대단한데요. 재미있는 것은, 중간에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아요.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목소리들 있잖아요.(웃음) 특히 중후반부부터는 계속해서 "이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는 식인데요. 저는 읽었던 책인데도 이번에 소개하려고 다시 읽다가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67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