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니까~’ 로 시작하는 뻔한 요구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고, 수없이 미간을 찡그렸을 것이다. 예쁘지 않으면, 날씬하지 않으면, 착하지 않으면, 화장하지 않으면, 피부가 곱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없으면, 결혼하지 못하면, 아이를 낳지 않으면…않으면…‘여자라서’로 시작하는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무례함에 교양 있게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는 이진송 작가의 그간의 경험과 문화콘텐츠 예시를 토대로 은연 중 녹아 든 ‘여성 역할’에 따른 잘못된 인식을 짚어보는 책이다.
이전의 책보다는 훨씬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데, 인문서가 아닌 에세이라는 것도 새롭다. 에세이로 집필한 이유가 있을까?
일단 페미니즘 인문서를 낼 만한 전공자는 아니고, 삶과 밀착한 ‘썰’을 풀어보자고 썼다. 사람들의 인생은 저마다 다른데, 여성이라는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만은 모두 저마다의 형태로 반드시 경험하더라. 예를 들면 나는 경상도 출신의, 3녀 1남 중 차녀이고 88년 용띠이다. 이 출생조건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한 트럭이다. 또 하나는, 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여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이고 남동생이 중학교 3학년이다. 그 애들도 후루룩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며 썼다.
문화 콘텐츠, 미디어를 차용하는 방식이다. 인식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을 고려한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애초에 여성 공장 노동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을 보다가,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드라마 등에서 많이 들었던 경험과 결합해서 첫 원고를 썼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퍼져 있는 ‘~해야 한다’라는 규범이 얼마나 여성들을 착취하고, 선택과 욕망을 제한해왔는지 되돌아보았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미디어는 그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고, 개인의 사고와 공동체의 행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책 속의 글들이 그 예이겠지만 특별히 여자라서 한계를 느꼈던 지점이 있었나?
단적인 예로는 오직 여자 작가들만 경험하는 이벤트가 있지 않을까? 욕설이나 음란 메시지, 외모평가나 인신공격 악플 같은 사이버 폭력. 이것을 언제나 의식할 수밖에 없다. 비단 글 쓰는 작가 뿐 아니라 일하는 모든 여성들은 전문가보다는 ‘여자’로 평가 받는다.
가족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특히 여동생의 이야기. 10대들의 페미니즘 의식은 어떤 상황인가?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10대들의 상황도 굉장히 입체적이고 결이 다양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10대일 때보다 가혹하게 다이어트나 화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용기 있고 행동할 줄 안다. 도움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시민사회에서 어른의 책임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친구들과 항상 결의하고, 강연을 가면 부탁하는 말이 있다. “어린 여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여자 어른이 되자.”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이중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10대 여성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는 학교에 체계적인 페미니즘 의무 교육이, 미디어의 성 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최근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이슈들을 보면, 마치 페미니즘이 단죄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러한 시류에 대한 의견은? 혹시 작가님에게도 직간접적인 위협?이 있는가.
페미니즘은 여성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 사상 검증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노동권을 침해하거나 집단 린치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내가 11년 전 여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꼴페미’와 ‘이대년’이 낙인이었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때도 이미 변질되었다고들 법석이었다. 이러한 폭력은 사회가 나서서 제지해야 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비교적 자유롭고, 나를 보호해주는 환경과 사람들 속에 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포심을 자극하고 여성의 발언이나 행동을 제약하려는 공격 자체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자들은 그럼 안전하고 쾌적하게 사는가? 그렇지 않다.
엄마와 딸의 감정관계를 다룬 부분이 흥미롭다. 친구 같은 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뒤늦게 아들을 낳기 전 엄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딸이 친구 같아서 좋겠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어렸지만 그 말이 곧 딸‘만’ 있는 엄마를 위로하고, 딸의 가치를 감정 노동과 친밀성에서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생판 남의 딸인 며느리에게 요구할 지언정 아들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 최근 ‘딸바보’, ‘친구 같은 딸’ 같은 말이 널리 퍼지면서 언뜻 딸의 위상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딸 선호’는 가족 내의 감정 노동,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낡은 관습의 변주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딸바보’라는 말을 비판하는 원고도 책에 실었다.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꾸준히 발행하시는 편집장이기도 하다. 작가로, 제작자로서 일반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비교한다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얼마 전에 <계간홀로> 12호이자 5주년 호가 나왔다. 많은 구독을 부탁 드립니다(불 같은 PPL!) 독립잡지의 가장 좋은 점은 제약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잡지에 기고하시는 분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단점은 혼자서 기획부터 판매까지 도맡으니 육체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단행본의 장점은 내가 원고만 쓰면 된다는 것이다. 단점은 아무래도 내 심리적인 문제. 양질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는다. 여러 명의 노동이 겹쳐져 있는 작업이니까. 각기 다른 두 형식의 출판은 앞으로도 계속 병행할 것 같다. 앞으로 잡지 말고도 다른 독립출판물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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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이진송 저/윤의진 그림 | 프런티어
때로는 장난스럽게, 또 자신의 상처까지 아낌없이 뽑아내 우리에게 말한다. 여자를 향한 이 말도 안 되는 기준들에 함께 돌을 던지고, 같이 손을 잡고 휘적휘적 달아나자고.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pkb7123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