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독자] 폴 비티의 배반을 소개합니다
『배반』은 분명히 남다른 소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통렬하고 대담하게 비꼬고 지적하는 가운데, 한 편으로 폴 비티는 매우 전통적인 과제에 도전하는 것 같다. (2017.12.05.)
글ㆍ사진 이나경(번역가)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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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은 폴 비티의 네 번째 소설이며, 그가 전작들을 통해 줄곧 탐색해온 미국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시 한 번 다룬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의 소개부터 심상치 않다. 2016년 맨부커상의 “재미있고 고통스럽다”는 심사평을 필두로, 『배반』은 을 추천하는 리뷰는 거의 모두 독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당부한다. “신랄”하고, “불경스러우며” “뒷골 땡기는” 소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21세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소도시에서 노예를 소유하고, 지역 내의 버스와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에 유색인과 백인의 이용 범위를 나누는 표지판을 붙여 인종 분리를 시도한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주인공 미가 대법원 법정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소재나 설정부터 당혹스럽다. 그뿐만 아니다. 마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하듯이 화자의 자유 연상에 따라 이리저리 튀는 서사는, 군데군데 비속어와 스페인어, 라틴어, 게다가 ‘MGM 영화에 나오는 흑인 집사 영어’까지 뒤섞어 사용하면서 불친절한 만연체로 전개된다. 여기에 너희가 흑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게 해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쏟아내는 레퍼런스가 수없이 더해진다. 그러니 내용에서 서술 방식, 주석의 부재까지, 『배반』은 파격적이고, 불친절하며 도발적이다. 몹시 센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면면에 조금씩 적응하고, 미가 늘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디킨스시의 낯선 일상에 젖어들 즈음, 『배반』은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호미니의 생일 파티가 있다. 흑인 아역배우로서 인종차별적인 코미디에 등장하는 동안 온갖 놀림감이 되었던 것을 인생 최고의 전성기로 추억하며 학대 받기를 즐기는 호미니를 위해 미는 백인 전용 좌석이 있는 인종분리 버스를 선물한다. 물론, 인종 분리 폐지 운동을 촉발시킨 로자 파크스의 시위에 대한 기막힌 패러디다. 그러나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파티를 벌이다가 모두 밤바다로 뛰어드는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은 신랄하지도, 우습지도 않다. 이토록 반항적인 소설에서 요 근래 가장 기억에 남는 서정적인 장면과 조우한 것은 참 뜻밖이었다.

 

연민과 애정, 교감에서 비롯한 해방감을 일별하게 해주는 이런 순간은 이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와 아버지의 부자관계, 마페사와의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배반』은 이들을 통해 가장 쉽게 전형화 하는 인간관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조명하지만, 그 속에서 신뢰나 선의, 공감이 빛나는 순간을 감추지 않는다. 물론 절대 오글거리지 않을 정도로 선을 지키면서.

 

맨부커상 수상 이후 여러 차례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폴 비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반>을 풍자 소설이라고 부르는 데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왔다. 인종분리 정책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도시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흑인이나 멕시코인 뿐이라서 이미 통합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구조에서부터 정치적 공정성의 수호자로 나서 돈과 명예를 거머쥐는 흑인 지식인까지, 예리하게 지적하고 조롱하는 이 소설에 풍자라는 당연한 평가를 그가 끈질기게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독자들이 풍자와 유머라는 꼬리표 뒤에 감추고, 그저 웃어넘겨버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순간순간 포착해내는 슬픔과 우울, 그것을 위로하는 우정과 교감을 마주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배반』은 분명히 남다른 소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통렬하고 대담하게 비꼬고 지적하는 가운데, 한 편으로 폴 비티는 매우 전통적인 과제에 도전하는 것 같다. 『배반』은 “나는 누군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한 흑인 청년의 정체성 탐색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그리고 그저 사랑하고 존경할 수만은 없는 아버지를 추모하고 이어나가는 아들의 회고록이기도 하다. 물론, 비티는 매우 비범하게,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를 완성해낸다. 그 과정을 짚어나가는 것도 이 소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 다양한 재미 가운데 한 가지를 더 챙기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배반폴 비티 저/이나경 역 | 열린책들
흑인 미Me가 미국 대법원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곳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짚어 나가는 방식으로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인종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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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폴 비티 #배반 #맨부커상 #미국 흑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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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번역가)

영문학을 전공하고 번역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배반과 뮤즈』, 『박스트롤』, 『애프터유』, 『피버 피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