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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특집] 2017년,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했나

<월간 채널예스> 12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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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책은 지금 이곳의 삶과 다른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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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출발하기로 하자. 초연결을 특징으로 하는 정보혁명이 사회 전체로 파급되면서,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중이다. 책의 세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전자책, 오디오북, 웹소설, 네이버 포스트, 카카오 브런치 등 책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편으로, 인간이 책을 쓰고 읽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디지털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책의 차별적 본질’도 명료해지는 중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 수단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변화시키는 도구이고 미지의 상황에 맞추어 영혼을 단련하는 기구였던 것이다.

 

‘책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박숙자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준, 정우, 혜린, 태일 등 자살로 삶을 마감한 네 청년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은 현실의 막다른 골목에서 정신을 고양하는 ‘책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박탈당한 채 생존만을 강요당하던 시대를 살아갔지만, ‘먹고사니즘’을 넘어서 ‘참된 인생’을 추구하다가 시대의 압박에 질식해 버렸다. 이들에게 책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이곳의 삶과 다른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의 힘’에 대한 책을 그토록 사랑한 것이 아닐까.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위즈덤하우스), 김용언의 『문학소녀』(반비), 서민의 『서민 독서』(을유문화사), 이현우의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 박균호의 『독서만담』(북바이북), 너새니얼 필브릭의 『사악한 책, 모비 딕』(저녁의책), 탕누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글항아리) 등에서 우리는 인간과 책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드라마를 체험할 수 있다.

 

책에는 물리적인 힘도 있다

 

인간은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겪는다. 책마다 독특한 물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이 책을 하나의 고유한 사물처럼 경험하게 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 연장선상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대중화되었다. 기존의 스테디셀러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우리들로 하여금 책을 ‘애정하고’ 싶게끔 만드는 ‘리커버 에디션(recover limited edition)’이 뚜렷한 흐름이 되었다. 내용의 질이 이미 검증된 스테디셀러를 가려 뽑아 신선한 물성을 한정 물량으로 제공함으로써 이 책들은 기존 독자의 추가 소장 욕구를 자극할뿐더러 책의 물성을 중시하는 청년 독자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연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 30th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민음사)으로 시작된 한정판 열풍은 점차 김영하, 장석남 등 국내작가의 작품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출판사와 서점의 새로운 협업 모델로 정착할 기미를 보이는 중이다.

 

손에 쏙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에 가격도 착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작은 책’ 역시 우리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리다매와 판매대 점유를 기본으로 삼는 옛날의 문고본과는 결이 다르다. 책의 ‘소품화’ 또는 ‘경량화’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한두 시간만 투자하면 거뜬히 읽을 적은 분량에, 가볍고 경쾌한 디자인으로,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리면 ‘좋아요’ 폭풍인 취향 저격 완소 아이템이다. 마음산책의 ‘요네하라 마리 특별문고’로 한 해를 열었는데, 공선옥, 성석제, 김중미 등의 소설로 청소년 독자들에게 다가선 ‘소설의 첫 만남’(창비), 박상률, 이금희, 김해원 등의 걸작을 모은 ‘욜로욜로’(사계절), 아멜리 노통브, 카롤린 봉그랑을 앞세운 ‘블루 컬렉션’(열린책들)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작은책 열풍의 도화선을 댕긴 ‘쏜살문고’(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의 새로운 편집적 해석으로 시작해서 국내외 신진들의 작품을 덧붙여 가면서 인기를 끄는 중이며,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일인 출판사 세 곳이 힘을 합쳐 만든 ‘아무튼’ 시리즈는 한국출판사상 초유의 실험으로, 하나의 기념비를 이루었다.

 

세월호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으로 상징되는, 시민을 수동적 주체로만 여기는 명령-복종의 사회 체제가 낳은 참혹한 비극이다. 촛불은 무엇인가. 시민들이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권위주의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결합한 구체제를 파산시킨 자율혁명이다. 우리 자신의 열망과 기쁨이 표현된 이 혁명은 자연스레 우리들의 책도 일구어 나갔다. 문재인의 『대한민국이 묻는다』(21세기북스)를 비롯해서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차병직, 윤재왕의 『지금 다시, 헌법』(로고폴리스), 주진우의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푸른숲) 등이 촛불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불타올랐다. 촛불 이후, 국가와 사회의 전 영역에서 무엇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가 되었다. 이현재와 이원재의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메디치미디어), 박상훈의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이음) 등을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 한편, 대한민국의 설계자가 박정희로 상징되는 친일반공극우세력이 아니라 장준하와 《사상계》 그룹 등임을 학문적으로 논증한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도 주목을 요한다.

 

촛불과 함께, 억압된 여성의 삶으로부터 거대한 폭풍이 일어났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터져 나오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 분야로 확산되는 중이다. 과거의 페미니즘이 주로 담론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지금 한국 출판에 불어 닥친 여성주의적 돌풍은 여성이 차별당하는 일상의 접점들을 확인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직접적, 구체적 개입을 촉발하고 있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여성의 사회적 삶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반성을 가져오면서 초베스트셀러에 오른 이후, 한국소설의 움직임이 거세고 뚜렷하다. 김숨의 『당신의 신』(문학동네), 강화길의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민음사) 등이 호흡을 이어갔으며, 일제강점기 혁명가 여성들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조선희의 『세 여자』도 이 흐름에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집으로는 임솔아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에서 여성적 감각이 선명하다.

 

책은 기록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낸다

 

시간의 무참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것을 기억할 것인가에 따라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면 역사란,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항상 현재의 입장에서, 우리가 지향할 미래에 맞추어 다시 쓰는 것이다. 10여 년 만에 완간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위즈덤하우스)는 인문 출판에서 하나의 기념비를 세운 대작이다. 『열국지』『초한지』라는 낡아빠진 사고가 아니라, 지난 100년간 중국학의 연구 성과가 고스란히 집약된 채로 이야기의 옷을 입힌 걸작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중국 이해의 길을 열어준다.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 세계사』(책과함께)는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다시 써내려가면서 오늘날 세계정세를 아는 데 필수적 시야를 제공한다.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교유서가), 로버트 J.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생각의힘), 윌리 톰슨의 『20세기 이데올로기』(산처럼) 등 역시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우리 눈이 확 틔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를 성찰한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 등 관련 서적들과, 교회세습 등 타락상이 뚜렷한 상황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돌아보는 라은성, 이상규, 양희송의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을유문화사) 등도 마땅한 관심을 요한다. 아울러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면서 서서히 상승 중인 김탁환의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돌베개), 이창근, 김현진의 『우리는 갈 곳이 없다』(알마), 이상엽 외의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루페), 헨미 요의 『먹는 인간』(메멘토), 자크 타르디의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1918』(서해문집) 등을 함께 기억해 둔다.

 

한편, 시간이 지나도 전혀 해소될 기미가 없는 저성장 국면에 부의 분배는 갈수록 악화되는 ‘헬조선’의 한가운데를, ‘일인가족’으로 홀로 견뎌가고 있는 청년세대에서 삶의 새로운 윤리가 출현하는 중이다. 출세와 성공을 거부한 채 비혼과 저출산으로 저항하는 한편, 오직 ‘나만의 행복’을 중심 삼아 단순하고 소박하고 우아한 삶을 추구하는 ‘일인분 윤리학’이 나타났다. 한때, 기성세대로부터 절망세대니 하류지향이니 하고 비웃음당한 적도 있지만,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이제는 오히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한테 ‘행복의 문법’을 전수하는 역전이 일어난 기분도 든다.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놀),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도대체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예담),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책읽는고양이) 등을 읽으면서 우리는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행복의 여부를 재는 ‘지금 이 순간의 낙관주의’를 추구한다.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다산 3.0), 셰릴 린드버그의 『OPTION B 옵션 B』(와이즈베리), 마크 밴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갤리온) 등이 우리의 섬세한 마음을 돕는다.

 

세상의 변화는 여전히 격렬하다

 

만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Machine intelligence) 등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의 ICBM 미사일’은, 북한 핵 미사일 문제보다 우리에게 더 실체적 위협이었던 듯하다.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혁신의 속도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추월한 ‘미래의 충격’이 이어지면서, ‘알파고 쇼’ 등이 가져온 불필요한 패닉에서 벗어나서 초연결사회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려는 우리의 독서도 불이 붙었다. 캐빈 켈리의 『인에비터블』(청림출판), 이토 조이와 제프 하우의 『나인』(민음사) 등은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힘과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김재인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이종관의 『포스트휴먼이 온다』(사월의책),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바다출판사)은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지능의 본격적 반격’으로서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 학계의 인문적, 과학적 탐구의 높이와 깊이를 보여주었다.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수학무기』(흐름출판), 이광석의 『데이터 사회 비판』(책읽는수요일)은 빅데이터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경고로서, 데이터를 쥔 소수의 자본이 우리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 도서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명견만리』(인플루엔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의 인기 역시 초연결사회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얻으려는 우리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삶의 격렬한 변화가 계속되면서, 배우는 일 역시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평생 학습사회를 맞이하여 세계 전체가 ‘공부’와 ‘수업’의 그물망으로 덮여가는 기분이다. 이 분야에서 올해 새롭게 우리의 사랑을 받은 것은 ‘인문학 수업’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은 서구 문화의 원류를 형성하는 라틴어를 통해,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깊게 통찰했으며, 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1세기북스)는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빅 히스토리를 인문학적으로 풀어간 책으로, 이제 학습이 단순히 공부를 넘어서 인생 자체를 다루는 자리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한편, MBC 파업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민식 PD의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위즈덤하우스)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으며 고영성과 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로크미디어)이 인기를 독차지하는 등 전통적 스타일의 학습서적도 여전히 강세였다.

 

『마켓 4.0』(더퀘스트)에서 필립 코틀러는 “지금까지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는 연결성”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먼저 독자와 연결하고 출판은 나중에 하는, 즉 독자의 사랑(연결가치)을 확보한 후에 책을 출판하는 관행이 하나의 흐름으로 들어서면서, 무명의 저자가 돌풍을 일으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이 길을 연 자리에서, 문학에서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말글터)와 『말의 품격』(황소북스)가, 과학에서는 맹기완의 『야밤의 공대생 만화』(뿌리와이파리)가 또다시 찬란한 빛을 뿜었다. 출판의 새로운 서부지대로 떠올라 지각변동을 가져올 이 무진장한 광산에서 앞으로 어느 금맥이 또다시 떠오를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드라마, 예능, 영화,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에 노출된 서적이 대중의 거대한 주목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미디어셀러’ 현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알쓸신잡>이나 <차이나는 클라스> 등 이른바 ‘지적 예능’이 늘어나면서 인문학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다. 특히, 김영하의 경우, ‘알쓸신잡’에 이어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개봉하면서,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광고에도 출현하는 등 미디어스타가 되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대원씨아이), 김용택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 설민석의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세계사) 등도 미디어셀러로 독자들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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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은수(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민음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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