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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일까?
요즘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의 80%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서 왔다”고 말한다. 아래는 회사 임원인 한 중년 남성이 실적 압박, 경쟁, 부하직원 관리의 스트레스로 불면, 짜증을 견딜 수 없다고 찾아왔을 때 나눈 대화다.
“이러다가 사고를 칠 것 같아요. 다 그만두고 딱 1년만 아내와 해외여행을 가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스톡옵션 행사할 수 있는 그날, 사표 던지고 떠날 겁니다.”
지난 번 방문에 아내가 자신을 돈 버는 기계로 아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분이 해외여행을 같이 가겠다고?
“그럴까요? 해외여행 좋죠. 그런데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처음 가는 낯선 나라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좁은 호텔방에서 부인과 있는 것, 말할 상대는 부인 밖에 없는 것.”
그 남성의 얼굴은 바로 굳어졌다. 내 눈에는 해외여행은 일종의 회피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가고,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며칠 단위로 숙소를 옮겨 다니면서 밥을 사먹는 것은 회 사업무 이상의 스트레스 요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도망간다고 없어지는게 아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없애고 스트레스의 원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여기고,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만날 이런 말만 듣는 스트레스는 참으로 억울할 것 같다. 스트레스는 그저 존재하는 개념일 뿐, 맹독을 가진 코브라나 강한 이빨을 가진 굶주린 사자와 같은 위험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내외부 자극에 반응해서 존재하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생명체가 짧은 시간 체내의 자율신경계를 이용하여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스트레스는 일종의 부스터, 터보 차지로 작동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거나 너무 장기화될 때 문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왜냐면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타이밍의 대부분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닐 때이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책이 한 권 있다.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이 있다는 것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의 과학전문저널리스트 우르스 빌만이 쓴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는 스트레스에 대한 최신 의과학 연구를 적절히 인용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 스포츠, 곡예 비행가, 요리사의 삶에 대비해서 본 스트레스와 같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하며 스트레스가 잘만 하면 우리 삶을 더 괜찮게 만들어줄 무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트레스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저자는 소개한다. 먼저 스탠포드대학 다바르 교수가 2009년 발표한 연구다. 쥐에게 9번에 걸쳐 10분간 강한 자외선을 쏘이는 고문을 했는데, 총 60마리중 30마리 쥐에게는 자외선을 쏘기 전에 미리 2시간 반 안 좁은 플렉시 유리관에 가두는 스트레스를 줬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 기능이 떨어지고, 위궤양과 같은 신체질환이 생긴다. 그런데, 자외선을 쐰 결과로 쥐의 피부에 악성종양이 생겼는데, 유리관 스트레스를 받은 쥐의 암 발병 시점이 훨씬 늦고, 종양의 숫자도 적었다. 이에 대해 다바르는 ‘급성 스트레스가 유기체의 보호메커니즘을 깨운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다른 연구에서도 다바르는 ”단기 스트레스는 수술 중 혹은 감염 후의 면역 방어력을 높힌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실험은 쥐의 미로찾기다.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크리멘 샌디는 쥐를 물이 담긴 미로에 넣어서 미로를 찾게 했다. 그런데 아주 차가운 물에 넣은 쥐일수록 집중력을 발휘해서 미로를 통과해냈다. 스트레스가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이는 일반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에 의한 효과뿐 아니라 글루타메이트도 작용을 한 덕분이었다. 글루타메이트는 편도체에 경보를 보내서 각성 시키는데, 저자는 이를 전전두엽에서 분비하는 감미료와 같은 효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단기적 스트레스가 기억력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증거였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 로버트 새폴스키 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효과가 있는 단기 스트레스와 신체에 해로울 수 있는 장기적 스트레스를 구별하는 것이 일단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짧게 단기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에 대해 우리 몸은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나의 반응력을 높이고, 내 안의 자원 활용을 극대화해서 생존 능력을 강화한다. 그렇지만 스트레스 요인이 반복화되어 내 안의 자원이 고갈되고, 더 이상의 이전의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문제가 된다. 스트레스가 내면화되어 일상적인 반응패턴으로 굳어져버리면 뇌기능의 손상이 오고, 도리어 면역력은 떨어진다.
그러면 만성적 스트레스는 속절없이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에 뇌의 인지적 해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심리학자 리차드 라자러스는 스트레스의 객관적 크기보다 주관적 해석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을 했다. 위스콘신 매디신 대학 연구팀은 1998년 미국의 성인 2만 9,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고 8년후 이들의 사망신고서를 통계를 내보았다. 물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응답한 사람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3% 높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이는 건강에 해롭다’고 대답한 사람이었고,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의 사망률은 가장 낮아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낸다’라고 답한 사람들보다도 낮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인지적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고 믿는 것도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건강에 해롭다’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의학정보 뉴스에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해온 것이 도리어 사망률에 기여한 아이러니한 결과가 되어버렸다. 결국 이 믿음은 통계적으로 보정해보면 미국인 약 2만 명이 이 믿음으로 사망한 꼴이 되었고, 사망원인 15위로 꼽을 만한 것이 되었다. 고작 믿음이 사망원인 15위가 된 것이다.
더욱 스트레스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할 분명한 이유가 된다. 더욱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 것도 아니다. 코넬대학교의 신경학자 코너 리스턴 연구팀은 20명의 대학생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준 후 전전두엽에 기능 손상을 주었고 이를 심리테스트와 뇌 영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 다시 검사를 해보니 이전 상태로 회복이 되었다.
즉, 인간에게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자극제가 되어서 변화를 하도록 하고, 기민하게 외부에 반응하도록 돕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떨 때에는 적당한 스트레스를 평소에 받으며 사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나심 탈레브가 ‘안티 프레질’에서 “강건함으로 가는 출발점은 작은 손상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신체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능력을 믿을 필요가 있고, 지나치게 외부 자극이 없어서 평형 상태로만 지내면 고인 물이 썩듯이 건강에는 해로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이럴 때 스트레스는 작은 돌 하나가 던져져서 고여 있던 연못의 흐름을 다시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우리 몸을 일깨우고 다니고, 활력을 유지시키고, 면역력을 강화해 외부의 침입에 단단한 방어막을 쳐주는 역동적 역할의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스트레스의 순기능이고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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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우르스 빌만 저/장혜경 역 | 심심
그는 스트레스가 건강의 적이 아니라 질병을 막아주는 효율적인 방어선이라고 믿으며, 스트레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애써온 선구적 연구자다. 실험의 목적은 분명하다. “스트레스가 암을 부추길까, 혹은 예방할까?”를 알아보기 위한 것.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