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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던지는 결투 신청용 ‘장갑’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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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온통 남성 예술가의 업적만으로 점철되어 있는 미술사에 던지는 결투 신청용 ‘장갑’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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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화가를 좋아하시나요? 미술사를 통틀어 명성을 얻고 후대에 길이 남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들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떠오를 거예요.

 

어디 그 뿐인가요. 해외 유명 미술관에 가보면 거장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까치발을 하고 인증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죠. 그런데 우리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예술가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사실, 눈치채셨나요? 우리가 보는 그림 속 인물은 분명 여성들이 많은데, 정작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대부분 남성들이라……. ‘왜 여자 화가들이 그린 남성 초상화나, 여성 인물화는 보이지 않는 거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의 저자 브리짓 퀸(Bridget Quinn)도 대학 시절, 미술사 수업의 교과서였던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던 중 방대한 미술사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여성 예술가가 고작 열여섯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800쪽에 이르는 책에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초 이탈리아 바로크 부분에 이르러서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미술사의 바이블로 통하는 잰슨의 책에서 여성 예술가가 등장한 것은 3판에 이르러서였다는 점입니다. 이전 판본에서는 “옷을 입은 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 의문을 처음 제기한 것은 1971년 페미니즘 미술사 연구의 선구자 역할을 한 린다 노클린이었습니다. 노클린은 과거에도 분명 훌륭하고 흥미로운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했지만 그들 중 미켈란젤로나, 렘브란트, 피카소 등에 필적할 예술가들이 탄생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단순히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 제도와 교육의 문제로 분석했어요. 한 마디로 과거 예술은 여성을 대상화의 존재로만 인식했을 뿐, 예술가라는 지위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당당히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하니, 이들이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온통 남성 예술가의 업적만으로 점철되어 있는 미술사에 던지는 결투 신청용 ‘장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은이는 오랜 세월 미술사에서 지워졌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을 추적하고 재발견해 새롭게 조명함과 동시에 그들의 삶과 예술이 어떻게 당시의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예술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치 가부장이라는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역사 속 익명들의 이름표를 하나씩 확인하는 것 같은 과정인 셈이지요.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2017년 봄입니다. 사실 책이 완성되기도 전인 2016년에 처음 책을 소개 받고 그 의미와 내용에 마음이 완전히 끌려서 바로 계약을 해버렸어요. 이후 미국에서 출간이 되었을 때 뜨겁게 반응하는 미국 독자들의 리뷰를 하나씩 읽어가며 작업을 병행했지요. 이 책을 작업하는 동안에는 몇 번이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무엇, 어떤 상태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예술서를 만들어왔는데 이처럼 감동을 준 책은 드물었던 것 같아요. 교정지를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던 시간들…… 한번은 제가 책이 너무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해 눈물이 난다고 했더니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교정지를 읽어본 다른 편집자도 눈물을 훔쳐야 했지요. 미술사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험 흔치 않은데, 책을 먼저 본 두 명의 편집자가 그 어려운 경험을 했습니다.

 

책은 기존의 어렵고 딱딱한 미술사 책과 달리 미술사, 전기, 회고록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어요. 지은이는 책에 실린 예술가들을 단순히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 혹은 우리 모두의 삶에 대입해, 왜 우리가 지금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들을 통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연관시키지요. 요컨대 지은이는 예술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것을 우리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극과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말해요. 그리고 맺는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요.

 

저메인 그리어는 신기원을 이룬 그녀의 저서 『장애물 경주』 에서 이렇게 썼다. “책은 유한하고,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사실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어느 지점에선가는 멈추어야 한다.” 화가 대신 ‘예술가’라는 말을 넣으면 이 책도 설명이 된다. 아니, 원하는 말은 무엇이든 넣어보라, 시인, 건축가, 영화감독, 배우, 뇌 전문 외과의사, 우주비행사, 다 같은 이야기다. 훌륭한 삶과 훌륭한 작품은 끝이 없다. 찾아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 스스로 창조도 해야 한다. 자,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아로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보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바로크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기나긴 미술사에서 15명의 여성 예술가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 레이스터르, 아델라이드 라비르귀아르, 마리 드니즈 빌레르, 로자 보뇌르, 에드모니아 루이스, 파울라 모데르존베커, 버네사 벨, 앨리스 닐, 리 크래스너, 루이즈 부르주아, 루스 아사와, 아나 멘디에타, 카라 워커, 수전 오말리.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브리짓 퀸, 리사 콩던 저/박찬원 역 | 아트북스
오랜 세월 미술사에서 지워졌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을 추적하고 재발견해 새롭게 조명함과 동시에 그들의 삶과 예술이 어떻게 당시의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예술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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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윤정(아트북스 편집자)

책이란 그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쓰게 됐고, 우연히 서점을 해본 적도 있고,지금은 읽고 쓰고 엮는 일을 하고 있다. 본업은 멍집사.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브리짓 퀸> 저/<리사 콩던> 역/<박찬원> 역16,200원(10% + 1%)

“대체로 역사 속 익명은 여성들이었다“ _버지니아 울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의 이야기는 미술사가이자 이 책의 지은이 브리짓 퀸이 대학 시절, 미술사 수업의 교과서였던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던 중 방대한 미술사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여성 예술가가 고작 열여섯 명밖에 없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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