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함께 살 계획은 없었다. 녀석의 곁에는 어미와 형제들이 있었다. 길 위의 삶이 버겁다고는 하나, 잘 적응하고 있다면 굳이 인간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다른 존재를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먹을 것을 챙겨주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단비와 나는 17개월째 동거 중이다.
발단은 달이의 죽음이었다. 달이는 단비의 네 형제 중 하나였다. 형제들의 어미인 춘장이는 내가 사료를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는데, 첫 만남 이후 한두 달이 지나자 새끼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왔다. 산이, 들이, 별이, 달이. 아이들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달이는 그해 봄이 끝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생후 3개월 즈음이었다. 사체를 수습하며 ‘두 번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게 식어서 뻣뻣하게 굳은 몸.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이번에는 별이가 아팠다. 눈꼽이 한가득 껴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고, 밥도 먹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별이까지 떠날까 겁이 났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구조를 결정했다.
구조 당시
구조 과정은 수월했다. 녀석은 ‘**츄르’에 영혼이라도 판 것처럼 제 발로 통덫에 들어갔다. 문제는 병원에서 발생했다. 수의사는 ‘치료비가 100만원까지 나올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제 자리에 풀어줘라’라는 말로 내 지갑 사정을 에둘러 물어봤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통덫 안에 있던 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너 어떻게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에게 묻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수의사는 우리를 남겨두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여기 소독해요’ 간호사에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이는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온 건데, 통덫의 문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병원을 나와 거리에 쭈그려 앉았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내가 포기하면, 별이는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당장은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어서 선택을 미루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자, 한 군데만 더’. 또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별이 구조 대소동’은 싱겁게 끝났다(싱거운 결말이 반가울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두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수의사는 그리 큰 병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별이는 3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이름처럼 별이 될까 봐 두려웠던 나는 단비라는 새 이름을 지어줬다. 시들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반가운 빗물처럼, 강한 생명력을 품은 아이가 되라고. 그리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스스로 단비 엄마를 자처했다.
단비는 엄청난 개냥이다. 집에 온 첫날부터 곁에서 잠을 잤고, 손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만 하고 각자 생활하면 될 줄 알았는데, 단비는 혼자서는 놀지도 자지도 않았다. 매 순간 엄마가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심심하다며 애옹애옹 떼를 쓰고 있다. 이럴 때 관심을 주지 않으면 가슴팍으로 뛰어올라 매달리듯 몸을 파묻는다.
녀석이 처음으로 품에 안겨서 고롱고롱 기분 좋은 소리를 내던 때를 기억한다. 골골송에 맞춰 내 가슴도 찌르르 울렸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때, 이상하게도 겁이 났다. 단비가 떠나면 어쩌지, 두려워졌다. 첫 만남부터 나를 펑펑 울리더니 기어이 또 눈물 맺히게 했다. 나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사랑은 두려움과 같이 시작된다는 것. 단비를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그 순간, 내가 이 작은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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